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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55

가볼까가 무슨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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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여성숙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상무이사)


사람은 자기 된 만큼밖에는 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 왔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말이 점점 실감되어지고 있다.
안 선생을 생각하면서 40년을 거슬러 가본다. 그 때에 안 선생에 대한 내 이해와 지금 와서의 이해는 엄청 다른 것을 느낀다. 거긴 안 선생 자신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 많이는 내 눈의 보는 힘에 따라서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이라고 해서 안 선생을 다 알고 잘 이해하고 있다고는 못하나 나름대로 그때와 지금의 안 선생에 대해 내게 맺혀진 상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40여 년 전 그 때 안 선생은 겉으로 판단되어지는 대로 패기가 넘치고 있었다. 판단은 예리했고 표현은 직설적인 편이었다.
나와 내 친구가 병아리 의사쯤 되어 있을 때였다. 한번은 우리가 앞으로 소록도로 가서 나환자 의사가 되든지, 마산 결핵요양원으로 가서 결핵 의사가 될까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가볼까가 무슨 소리냐고 그리로 놀러가서 그 사람들과 장난하겠다는 거냐고부터 시작해서 ‘거기 가려거든 그 병에 걸려도 좋다 하는 결단이 서기 전에는 가지 말아요. 그런 결단도 없으면서 가볼까가 무슨 소리요. 뭐 이 따위들이 있어’ 하고 퍼부어 대는 데는 둘 다 뼈가 노글노글하게 얻어맞고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말았다. 실은 우리 상태가 가볼까 … 하는 정도였던 것을 스스로들 알고 있었기에 더 발을 내디디지도 못하고 움츠러들고 말았다.
가끔 호되게 나무람 하다가도 ‘나도 편해서 이러는 건 아니오. 받는 사람만큼이나 나도 아프답니다’ 하고는 큰숨 한 번 내쉰다.
‘고독이 무언지나 알아요? 괜히 고독한 척 모양내지 말아요. 나는 얘기가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요. 예수와 나뿐이에요’ 하는 그 얼굴에서 절규가 엿보였다.
‘그는 왜 남달리 자기를 괴롭히면서 살고 있을까?’ 하고 보면서 그건 그분의 괴로움이요, 내 것은 아니다 하고 넘겨버리고 말았다.
한번은 초라한 내 꼴을 보면서 고백처럼 물었다.
‘이렇게 믿음성도 없는 나를 왜 오래 친구로 여겨 주시는가요?’ 했더니 얼른 ‘여 선생 때문이 아니오. 내가 내 믿음 때문이죠’ 하는 데는 모자를 벗고 말았다. 너 때문이 아니고 내가 가진 내 신뢰 때문이라고 사람과의 관계의 바탕을 얘기하는 데는 덧붙일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분의 생각은 얼른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졌다. 이것인가 하고 집으면 벌써 저기에 가 있고, 이것이다 하고 잡아보면 저기로 가서는 아니오 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안다고 했다가는 늘 헛짚고 마는 꼴이 되고 만다.
어떤 때는 아는 양하고 있으면 ‘알기는 뭘 알아요. 쥐뿔이나 알아요. 자기 깍대기 속에 쏙 들어가 앉아가지고는 아는 양 모양만 내고 있어요. 언제면 그 자기 깍대기를 깨고 나올 거요.’
호통인지 탄식인지를 들으면서도 나는 거기서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껍질을 깰 용기도 없기도 하거니와 그 자리에 안주하고 편안하고 싶은 생각이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안 선생 자신의 문제로 몹시 힘이 들고 있었을 때라고 생각된다. 자기 문제에 몹시 시달리다가 ‘나는 내 생명을 반납하고 싶어요. 이것이 풀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하며 몸부림치던 그였는데 향린교회에서 하는 마지막 설교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얘기를 거듭하는 것을 보며서 그런 고뇌가 있었기에 저런 행복이 찾아졌나보다 해서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고 싶구나 해보다가 고뇌를 피해가며 안일만을 바라고 있는 내 주제에 행복을 바라다니 하면서 염치없는 욕심이 부끄러워졌다.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으로 몸부림치던 안 선생의 상과 ‘나는 행복한 사람이오’ 하며 환희에 찬 두 상을 조금은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겨진 것 같다. 옆에 있을 때 알아보지 못했던 안 선생의 상이, 가시고 난 다음 점점 커지고 뚜렷해져 가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내 눈이 좀 밝아져가기 때문일까?
아마 안 선생은 거기 있는데 … 내가 왔다갔다 했고 내 눈이 흐렸다 밝아졌다 한 탓이라고 여긴다.
“네가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스며온다. 이렇게 민망히 여기고 있는 오늘의 나는 안 선생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내가 오늘 되어진 만큼만 그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안 선생이 역사 속으로 들어간 지 벌써 2년이다. 그는 가까이에 다가와서 전에 알아듣지 못하고 건성으로 넘겼던 이야기들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고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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