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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54

안병무 박사님

조회 수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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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용길

(한빛교회 은퇴장로/통일의 집 관장)


안병무 박사 하면 먼저 4·19가 생각난다. 문 목사와 안 박사는 4·19가 돌아오면 두 분이 만나서 못하는 술을 들고는 손목을 잡고 거리를 헤매며 못다핀 학생,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하였다고 한다.
우리 3·1 민주구국선언자 가족들은 4·19날 새벽에 같이 모여 꽃다발을 만들어서는 4·19 묘지를 찾아 희생자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곤 하였다. 얼마 후에 가보면 그 꽃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는 하였다.
우리는 참배가 끝나면 안 박사님 댁에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수유리 안 박사 댁은 집도 마당도 넓어서 모임 장소로 적당한 데다가, 사모님 박영숙 선생이 손님접대를 잘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손님이 수십 명, 어떤 때는 수백 명씩 오셔도 능숙하게 대접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는데, 특히 평안도식 녹두지짐이 일품이어서, 우리 가족들은 무슨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 댁에서 모이곤 하였다. 송년모임, 신년모임, 4·19 모임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고은 선생님 결혼식까지 안 박사님 댁 마당에서 치루었던 것이다. 그날 가족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환하게 웃으면서 정성을 다해 혼례준비를 하였는데, 우리의 정성이 모아져서 치러진 혼례는 퍽이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은 선생님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 정성의 열매인지도 모르겠다.
안 박사님 댁이 우면동으로 이사간 후에는 우리는 그런 즐거운 자리를 좀처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4·19날 아침을 어디서 해야 하나 걱정들을 하시지만 나는 수유리에 살면서도 그분들을 잘 모실 자신이 없다. 나는 박영숙 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 박사님은 그런 자리에서 재미있는 농담을 잘 하셔서 모이기만 하면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리며 즐거워하였다. 심장이 좋지 않으셨던 그분, 미국에서 대수술을 받고 돌아오셔서는, ‘심장을 꺼내서 냉수에 씻어 다시 넣고 왔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는 정말 열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 분은 늘 몸이 좋지 않으셨다. 그런 몸으로 창작 활동과 후진 양성 사업을 무궁무진 왕성하게 하셔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그분이 쓰신 글들이라니, 그 중요한 글들을 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켜 주시고 위험한 고비마다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 목사는 그래서 옥중에서도 늘 안 박사의 건강을 염려하고 언제나 기도 제목으로 정하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문 목사가 덜컥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 … 1996년 4월 19일, 안 박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해마다 문 목사와 같이 지내시던 4·19를 상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날 교회여성연합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내가 말씀을 하기로 하였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보니 4·19 묘지에 그분이 와 계신 것이 아닌가? 나의 전화를 받으시고는 갑자기 수유리 가시겠다며 먼 길을 나서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희 통일의 집에 들러가시지요, 해서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다. 목사님 영정 앞에서 한참 묵념을 하시고 난 후, 나는 문 목사가 좋아하던 현미시루떡을 한 접시 대접했는데, 이것이 안 박사님의 마지막 4·19 묘지 참배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다.
돌이켜 보면, 70평생을 사시면서 많은 일을 하시고, 저서도 많이 남기시며 보람있게 사신 분이다. 천주교 식의 수녀원을 신교에도 세우셔서 봉사활동을 하게 하시고, 한국신학연구소도 만드시고, 많은 후학들도 기르시고 …
평소에 늘 부인에게, 내 생각은 말고 자기의 앞길을 개척하라고 하셨다는데, 박영숙 선생은 아들 재권이와 함께 살면서 환경운동에서 큰 몫을 하고 계시니, 다정다감하셨던 안병무 박사님, 아무 걱정마시고 주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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