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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42

신약학자 안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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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상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1. 예수사랑, 민중사랑


지난 시대를 살아간 선배 신학자들은 몸으로 신앙과 학문을 실천하면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구도자적 자세로 사신 분들이다. 그분들이 추구했던 신학과 신앙,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진솔한 삶의 족적은 우리 신학계에 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런 선배 신학자들 가운데 안병무 박사는 특별히 기억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예수만 생각하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정도로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성품의 소유자, 그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삶과 신학을 “살아간” 분이다.
그는 한 마디로 민중신학자이다. 기성교회에 대해서 맹렬한 비판을 가하곤 하였기 때문에 반교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실은 중학시절부터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청년시절에는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향린교회를 세웠으며, 말년에 세운 한백교회와 목포에 설립한 개신교 여자수도회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 깊은 애착을 보이셨다. 안 박사에게 예수에 대한 사랑은 곧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고, 민중의 자리가 없는 기존 교회나 교리는 진정한 기독공동체의 모습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였기에 기성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예수가 꿈꾼 공동체, 참 공동체의 비전을 추구한 신앙공동체인이라고 지칭될 수 있다.
안 박사가 신약학자로서 쓴 주옥과 같은 글들의 주제 역시 예수의 의미와 민중에 대한 고백적 탐구와 관련된다. 여기에서는 안병무 박사의 성서해석 방법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민중신학적 성서신학자로서 그의 학문적 공헌을 되새기고자 한다.


2. 민중현장과 성서해석


그는 우리 나라 신학자들 가운데 본격적으로 해외유학을 가서 학위를 취득한 첫 세대에 속한다. 사실 안병무 박사는 R. 불트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독일에서 그는 불트만의 입장을 비교적 충실하게 계승한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G. 보른캄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그의 영향으로 안병무 박사는 상당히 일찍부터 해석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조직신학이나 성서신학 등 전공의 구별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서해석에 있어서도 교리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던 60년대부터 이미 안 박사는 “해석하는 자에게 성서는 어떤 것인가?” 하는 성서와 해석자 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해석하는 자의 관심이나 전제가 없는 성서해석은 없다고 보았다. 이것은 불트만의 해석학적 입장과 통한다. 불트만은 전제 없는 주석,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주석이란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신학적으로도 무의미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서 실존론적 성서해석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병무 박사는 민중의 현장을 발견함으로써 불트만의 실존주의를 극복한다. 안 박사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공관복음서만을 연구했는데도 서재에서 연구하는 동안에는 예수운동의 민중성을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민중을 발견하기 전에는 성서는 예수의 민중사건에 대해 침묵했으나 그가 민중을 발견하고 민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복음서를 보자, 성서는 예수의 민중사건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민중이 비로소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고백한다.
민중현장을 신학의 자리로 삼은 그는 예수의 민중사건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초기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서 저자의 민중 현장, 예수의 민중 사건을 전한 전승자들의 민중적 상황을 추구해 들어갔다. “예수와 오클로스”,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라는 논문을 통해 그는 우선 마가복음서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규명한다.
마가복음의 삶의 자리는 “로마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땅에서 추방되어....이방 땅을 거지떼처럼 배회하는 현장”(안병무 편,『사회학적 성서해석』, 한국신학연구소, 1983, 206쪽)이었다. 그에 의하면 마가복음서는 유대인들의 반로마 투쟁이 패배하여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팔레스타인이 초토화되었던 70년 직후에 쓰여졌다.
여기에서 그는 ‘바울의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와 ‘마가의 역사적 예수’ 사이에 긴장과 대립을 부각시킨다. 그는 바울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사회적인 문제를 비역사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안병무,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민중과 성서』, 한길사, 1993, 46-7쪽). 마가는 바울의 케리그마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민중적인 이야기들을 당시의 밑바닥 민중에게 전하기 위해 복음서를 썼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서에서는 마가 자신의 민중 현장과 예수의 민중 현장이 겹쳐지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가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사흘 동안 굶고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는 무리를 불쌍히 여겼다고 하는데 이것은 40년 전 민중의 모습일 수 있지만 지금 마가가 서 있는 민중 현장의 모습인 것입니다.”
안 박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민중적 이야기들을 전승한 것도 역시 민중이라고 본다. “예수 사건의 전승 모체”라는 논문에서 그는 “박해를 받아야 하고 암흑 속에서 헤매야” 했던 민중이 바로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승했다고 주장한다. 안병무 박사는 이들이 전한 전승 속에 전승을 전하는 이들 자신의 민중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서의 예수 이야기에는 예수의 민중현장,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는 전승자들의 민중현장, 그리고 이 전승을 수집하여 엮은 마가 자신의 민중현장이 얽혀 있다. 이 민중현장은 또한 오늘날 성서를 해석하는 해석자 안병무의 민중 현장과도 통한다. 그의 성서해석에는 이 네 개의 민중현장이 겹쳐져 있다.
그에 의하면 성서의 본질은 성서의 민중사건에 있다. 따라서 안병무 박사의 성서 해석의 기본 동기는 오늘의 민중현실에 서서 성서의 민중사건을 확인하고 성서의 민중사건이 오늘의 민중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증언하려는 것이다.


3. 양식사 비평을 넘어서는 성서해석


안병무 박사가 전승 주체인 민중과 복음서 저자의 민중적 “삶의 자리”를 중시하고 성서의 편집구에서 복음서저자의 민중신학적 기조를 밝히려 한 것은 양식사와 편집사 연구 방법을 적용한 것이다.
1981년에 쓴 “예수와 해방”이라는 글에서 그는 양식사학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양식사 연구, 편집사 연구, 사회사적 고찰이 결합될 때 온전한 성서해석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1986, 76쪽). 그는 우리나라에서 성서비평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첫 세대에 속하며, 전승의 성립과 삶의 자리, 전승자, 편집자, 본문 해석의 문제 등 서구 성서신학, 특히 양식사학의 기본 주제들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서구의 신학자들이 가지지 못한 민중현장이라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서구의 신학적 방법론을 독창적으로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양식사와 편집사적 연구가 종교사적 범주에 머물러 교회공동체의 신앙생활(예배와 설교)과 복음서 저자의 신학에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사회학적 연구에로 나가지 못한 것을 비판하면서 사회사적 연구를 시도한다. 그는 갈릴리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예수 시대의 민중상황에 접근한다. 이 점에서 그는 한국 신약학계에 사회학적 성서해석을 도입하고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1983년에 『사회학적 성서해석』이라는 책을 편집, 출판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수와 예수 시대의 민중현장에 도달하기 위해 양식사학의 결론을 넘어선다. 불트만에 의하면 공관복음서는 확대된 케리그마이며 케리그마의 배후를 묻는 것은 오히려 불신앙에 속한다. 닷드는 불트만의 입장을 더욱 철저화하여 ‘태초에 케리그마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병무 박사는 태초에 예수 사건이 있었다고 함으로써 양식사학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예수사건에서 케리그마로 진전하는 것이 순서이며 그 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신약성서에는 케리그마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 후기에 속한다.
그는 예수 사건의 전승 가능성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그 사건의 의미를 증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격자로서 그 사건을 있었던 그대로 진술하는 것이다. 사건의 의미에 대한 증언은 주관적이며 변증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에 반해 그 사건의 진술자는 목격자로서의 충격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객관성을 유지한다. 안병무 박사는 전자, 곧 예수 사건의 의미에 대한 증언은 주로 교회공동체의 지도층이 담당하였고, 목격자로서의 사실 진술은 민중이 담당하였으며 이 두 증언이 성서에 공존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제도적 교회의 지도층이 형성한 케리그마는 예수 사건의 의미를 증언한 것으로서 예수 사건을 추상화한 반면, 예수 사건을 목격했던 민중은 예수와 동일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인 박해 속에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유언비어의 형태로 전했다는 것이다(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역사와 신학』, 121쪽 이하).
이렇게 역사적 예수 사건의 전승주체를 예수사건의 목격자이며 예수와 동일한 상황에 있었던 민중으로 봄으로써 안병무 박사는 양식사학자들의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깨뜨린다. 양식사학자들이 문학적인 양식의 추구만을 통하여 결론을 내리는 데 비하여 안병무는 정치적 박해 아래 있었던 민중은 전승 양식을 만들 겨를이 없었다고 본다. 비록 유언비어의 형태를 띠기는 하였지만, 목격자의 진술에 근거한 민중의 전승은 양식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있었다는 것이다(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역사와 신학』, 133쪽). 이렇게 그는 예수사건의 전승자를 그 사건의 목격자였던 민중으로 보고 전승양태를 유언비어라고 봄으로써 서구의 전통적 방법론을 벗어난다.
유언비어는 전승양식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전승의 성격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양식사 연구의 범주를 벗어난다. 더욱이 양식사 연구는 구전 전승 과정을 교회공동체의 삶의 자리에 비추어 탐구하는데, 안병무는 전승자가 예수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이며 “교회원이라는 의식을 가지기 이전의”(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역사와 신학』, 138쪽) 민중이었다고 함으로써 양식사 연구의 기본 전제들을 넘어선다. 후기로 올수록 안병무 박사는 서구의 전통적 해석 방법에 강한 불신을 나타내며 더욱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양식사학파가 전승양식에 집중하고 그 양식의 삶의 자리를 초대 교회의 설교로 봄으로써 그 이야기의 역사성을 묻지 않고 있다고 보았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안병무 박사의 민중신학적 성서해석에 있어서 일관된 것은 케리그마 중심의 양식사학으로 대변되는 서구 성서해석방법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다. 그는 예수전승과 케리그마 전승을 두 개의 독립된 전승갈래로 나누고, 이에 근거하여 예수운동과 바울의 교회를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민중현장과 제도적 교회를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도식에서 예수전승과 예수운동, 그리고 민중현장을 강조하며 그리로 회귀하고자 한다. 또한 이 예수전승과 예수운동, 민중현장을 기준으로 하여 제도적 교회와 바울, 그리고 케리그마 전승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이분법적 이해는 케리그마 중심적인 양식사학의 이분법적인 도식, 즉 역사와 의미,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를 이분화하는 이해를 그대로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분화된 도식에서 양식사학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취한 것이다. 케리그마와 제도적 교회를 역사적 예수운동로부터의 이탈로 보는 그의 신학적 틀은 오늘날 제도권 교회에 비판적인 충격과 자극을 줄 수 있으며, 동시에 제도권 교회를 부정해야 하는 한계성을 지닌다. 또한 역사와 의미, 역사적 예수 전승과 케리그마 전승의 분리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며 가설적이다. 실제로 초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양자는 불가분으로 하나를 이루고 역사와 신앙으로 융합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동시에 바울신학에 대한 이해와 평가 역시 자신의 신학적 틀에 얽매어 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안병무 박사의 성서해석은 민중의 현실과 상황에 대한 관심과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였듯이 무엇보다도 성서해석에 있어서 실존적인 경험과 해석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주었다. 그가 마가복음 저자의 삶의 자리를 로마에 의해 유대가 패망한 직후의 민중상황으로 파악한 것이나, 예수사건의 전승 주체를 교회 지도층과 대립되는 민중으로 보고 이 민중이 정치적 박해 속에서 예수 사건의 목격자로서 예수 사건을 유언비어 형태로 전했다고 본 것은 민중신학적 상상력에 힘입은 결론이다.
그의 성서해석은 성서본문에서 오늘의 상황에 이르거나 오늘의 상황에서 성서 본문에 이르는 어느 한 방향의 한 가지 방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성서(예수)를 통해 오늘의 민중상황을 보고 오늘의 상황의 빛에서 성서를 읽는 순환적 해석학적 현실을 인정한다. 안 박사가 몸담고 가꿔왔던 한국신학연구소의 방대한 『국제성서주석』 번역 출판 작업이 보여주듯이 그는 서구 성서신학 전통을 한국에 소개하고 비판적 성서해석이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섰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창조적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신약학자로서 그의 족적은 한국신학계에 풍요로운 유산으로 길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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