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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6.30 04:25

안병무 선생님과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조회 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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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1. 들어가는 말

 

우리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가 태동할 때에 우리에게 산파 역할을 해주신 안 선생님과 함께 보낸 그 많은 추억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습니다. 선생님은 일년에도 몇 차례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성서연구를 비롯해서 공동체 전반에 대한 일들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 주셨습니다. 또 멀리 떨어져 계실 때에는 처음 교회를 염려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와 같은 글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글은 먼저 선생님의 공동체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자매회 자체에서 발행한 디아코니아지 1-5호의 내용을 간추림), 처음 공동체를 시작할 때부터 그 후에 들어온 자매들에게 이르기까지 공동체 앞으로 또 개인 앞으로 주신 글들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2. 선생님의 공동체 구상

 

안병무 선생님은 해방 전부터 일부일처제로 된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사유재산제도가 없어지거나 그 제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셨습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초기에 결혼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을 굳히셨고, 그 의식은 기독교의 예수와 사도 바울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으셨고, 또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받은 영향도 컸습니다. 그 후 해방이 되어 민족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교회가 민족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여서, 그 대안으로 강력한 신앙동지운동을 전개하여 공동체를 이룸으로 생활과 사상으로 개혁의 모델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뜻을 모은 <공동체 구성>의 성격은 평신도목회와 입체적 목회로 집약되는데, 이는 여전히 교회내에 있으면서 교회체제를 개혁한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은 재산의 공유화 과정에서 유일하게 미혼이었던 선생님은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정이라는 암초에 걸려 실패하고 말았는데, 선생님은 그 이유를 가정은 이기주의의 단위라는 단정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가정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공동체형성 과정에 가담시키지 않은 탓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형성에 실패한 선생님은 도망가다시피 구라파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예수를 학문적으로 철저히 밝히고, 독일 교회의 실제적인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보고자 하셨습니다. 결국은 기독교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아무 사려없이 관습화된 것을 보면서 “구라파에서 교회는 죽었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선생님은 일반 교회 아닌 어떤 공동체를 찾음으로 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 곳은 선생님이 살았던 곳에서 가까운 작은 도시에 있는 공동체인데, 그들의 일은 바로 고독해 가는 사회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품이 되고 부드러운 손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정해진 일정한 기간이 아닌 일생을 이렇게 계속 생활하는 것이며, 그 이상의 다른 의미와 고귀함을 지니는 삶입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해도 지치지 않고 보람을 느끼는 힘을 어디서 공급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공동체를 방문해서 더불어 사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구상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일찍부터 오늘의 가족제도가 경제체제와 함께 붕괴될 것이라는 예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 대안으로 어떤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하는 지속적인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귀국한 때의 한국은 뒤늦게 산업화 사회로 달리고 있습니다. 산업화는 대가족제도를 깨고 핵가족제도로 몰고 가면서 여자들도 산업화의 일원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던 유교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사회활동을 하게 된 여성들은 가정만이 아닌 이웃과 사회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며 다른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그 당시 모인 여성들의 관심이 모여서 주기적인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1980년 5월 1일 현재의 장소에서 개신교 여성수도공동체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의 창립예배를 드리고 시작하였습니다.
1년 후에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간소한 생활 규율도 제정했으며, 기존의 건물도 개조하고 또 그 중의 몇 명은 가톨릭, 불교의 수도 전통들을 배우도록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은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라고 했는데, 디아코니아는 희랍말로서 섬김, 봉사라는 뜻입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호칭은 ‘언님’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어진님’, ‘좋은 님’이란 뜻을 가진 순 우리말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간호사, 목사, 전도사, 회사원 등의 다양한 직종뿐 아니라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다양한 개신교 교파에서 모여 이루어졌기에 회원들의 공동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삶의 목표에서 최고를 선택한 공동체 회원들은 선악이 섞여 있는 현실에서 선한 방향으로 결단했으나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악과의 투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목표는 사람이 제 모습으로 살고 상실한 자기를 회복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마음껏 전개하는 데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그늘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전선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줄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로서만 실천할 수 있는 것인데, 평범한 우리를 역사 전선에 내세운 하나님의 뜻,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줄 때에만 우리의 갈 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선생님께서 주신 글

 

<글 1>은 공동체 창립 회원들이 초기에 공동체 삶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종신회원을 앞두고 10개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며 자기 자신의 삶의 리듬을 바꾸고 공동체 삶을 훈련하며 결단을 준비하는 언님들에게 주신 글입니다.
<글 1>
언님들,
내 마음을 가장 점유한 것이 디아코니아 공동체와 이미 그곳에 속해 있는 여러분인데, 그래서 되도록 자주 가고 싶어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면 여러 날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틈낼 수 있었을 터인데 …
내 머리에는 언제나 쉬지 않고 여러분의 장래(그것이 곧 그 공동체의 운명이니)를 생각했습니다. 걱정과 대견함이 언제나 함께 합니다. 여러분이 약하면 나도 약해지고 여러분이 강한 면을 보이면 나도 힘이 납니다. 여러분은 나의 거울이며, 나 또한 여러분의 거울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도 여러분이 내디딘 일이 결코 우연이거나 여러분의 자의적 결정에 따라 된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공동체는 내 생의 기도 제목이었지만 그래서 된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숨은 손이 있습니다. 나와 여러분이 만나고 여러분과 여 선생님을 만나게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형제들과 결합시킨 이는 따로 있습니다. 그 어느 하나가 동의하지 않았어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우연일 수 없습니다. 나는 독어와 영어로 된 우리의 고백이 담긴 소개서를 읽고 홀로 이름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분의 일생은 결정되었습니다. 그것은 연습도 아니요, 해 보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에 내맡긴 일입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십시오. 더욱이 이미 정해 놓은 오는 10개월을 총집결해서 여러분의 생을 총 청산하여 새로 탄생할 각오를 하고 매진하며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결단을 서로 밀고 밀리면서 고지를 점령하는 자세로 나가십시오.
그 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밝히니 착오 없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일생을 수련하는 자세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바탕이 될 수 있는 수련기간을 정했습니다. 때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때가 차야 한다는 뜻은 성서에서 중요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하루 빛이 새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해진 수련기간을 최선을 다해 살려고 총집중하십시오. 무엇보다 자기를 완전히 뜯어고칠 각오를 하십시오. 적어도 공동체 시작 이전에 자기 나름의 삶의 리듬에서 완전히 풀려 나와야 합니다. 이 기간은 수련기간이기 때문에 무슨 일도 수련의 범위 안에서 가치를 두시오. 만일 무슨 과제라도 지금의 공동수련을 방해하면 그런 일은 그만두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약속한 대로 질서를 지키고 기도와 공동작업, 그 중 기도는 절대로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 수련>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오. 혼자하는 일은 백(百)을 해도 <공동의 일>을 소홀히 하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단, 학습방법은 여러 가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꼭 학술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생각하고 비판하고 어떤 확인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 >라는 사실만은 절대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 호흡하고 사랑이 그 무엇보다 위에 있는 삶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는 되도록 빨리 그리고 여러 날 가 있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1982년)


<글 2>는 우리의 자립대책으로 농사, 축산, 양봉과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공동체 생활의 틀이 잡혀가는 시기에 언님들에게 주신 글입니다.
<글 2>
모두 예상 이상으로 정진하는 소식을 듣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 동안 언님들을 위해 얼마나 마음 썼는지!
벌써 벌통, 칠면조 그리고 채소 등 사업이 많군요. 더욱 요양원을 돌보는 일만도 큰 일이니 너무 일을 벌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삶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더욱 지금 언님들의 길은, <해 보는 일이 아니고> 일생을 건 것이니 자중할 것입니다. 홀로는 못 사는 삶, 더불어 힘 되어 사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주의 종의 모습을 창조해 나가기를 참 마음으로 바라고 여러분의 힘 이상으로 주님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 그럴 바에야 철저히 살아야지요. 밀고 밀리고 끌고 끌리면서 실족하는 일이 없이 나가며, 자기를 확립하여 주의 부르는 방향으로 정진하며 더욱이 후진을 받을 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살다보면 삶은 이끌려 가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서로 현미경적으로 보아 잘 모르나 여러분은 아주 잘 있습니다.
나는 사람 하나하나의 문제로 가슴 아파하고 염려하는 생활에 한 걸음 한 걸음 저도 모르게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생의 마지막 제자이며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꼭 지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시작하신 이가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되도록 빨리 가고 싶으나 내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요.
(1982년)


<글 3>은 선생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 틀을 형성하는 정신적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종신서원을 하고 정회원이 되어 공동체 주인으로 자리잡은 언님들에게 부단히 자기를 비우고 닦는 훈련을 강조하시며 주신 글입니다.
<글 3>
나는 여러분의 내적 갈망을 구체화하는 데 산파의 역할을 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 같은 삶의 길을 택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나는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 정도라는 말입니다. 내가 만일 여러분과 같은 처지에서 같은 길을 간다면 훨씬 많은 요구도 밀고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많은 생각을 억제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는 구체적인 몇 가지 나의 충고를 듣고 함께 반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하면 기쁨과 걱정이 따릅니다. 여러분의 가장 귀중한 삶의 결단을 한 현재의 삶은 연습도 아니고 과도기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자신을 고발하며서 진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는 명실공히 주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각오가 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제는 떳떳이 자신의 생활을 내세워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내적 싸움은 일생 계속해야 해요. 완전은 죽음과 함께만 가능해요 … 여러분은 자기 나름의 능력이 있고 마음 쓰는 것이나 자세에서 그리스도의 종의 길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요. 단지 개신교의 큰 흠인 개인주의적 성향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이 이기적인 요소를 극복하자는 것이 공동체 생활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을 주님께서 선구자로 선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주님의 뜻을 엄숙하게 받았습니다. 이제는 부족하더라도, 쓰든 달든 당신이 정하신 길로 가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새로운 삶의 길이 있다”고 기치를 들고 나섰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삶을 이 땅에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아직 주님의 뜻은 부분적으로만 알려졌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조금씩만 자신을 계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깨어서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부분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주님밖에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느 누구도 언님들의 길을 판단할 수 없어요. 그것은 여러분의 삶이 주님의 뜻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큰 공헌을 한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나 미시적으로 보면 허물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의 자취를 높여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언님들의 길이 그렇게 되리라 믿어요.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크게 예속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쁨이 그리고 평화가 나의 기쁨이 되고 평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기도가 날로 여러분을 생각하는 분량이 많아져 가고 있어요. 내게 큰 기쁨이 있다면 여러분이 자신들의 삶에 흡족해지는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시기를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사이에 항상 지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나의 구체적 희망입니다.
그럼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1983년)


<글 4>는 나중에 입회한 언님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선생님께 드린 편지에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답장을 해주신 글입니다.
<글 4-1>
언님의 글을 받았어.
만났을 때에는 조용한데, 글에서 마음에 일고 있는 파문을 읽을 수 있어. 원래 결벽증이라고 하리만큼 결벽한 성격에서 마음이 거울을 연상케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중적 얼굴을 못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순박한 사람이 그렇듯이!
이러한 맑은 성격이 관계를 어렵게 할 수 있지. 특히 공동체 생활이란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면 전체에 영향을 끼쳐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내니까! 그거야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도 꼭같지. 그래서 입산해서 암자에서 단독으로 살지 않는 한 더불어의 삶에서도 바다의 파문처럼 어느 누군가 웃게 되면 그것이 전체에 잔잔히 퍼지고 바람처럼 한 쪽에서 불기 시작하면 그 안의 모두의 자락이 함께 흔들리 듯 그게 되야 해! 그래서 바람이 불 듯 물 흐르듯 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개인에게는 웃고 싶지 않은 웃음도 울음도 함께 하게 되지. 그러므로 홀로의 고립에서 지쳐 기력을 잃을 때 공동체의 어느 쪽에서 시작되든 새로운 힘을 받게 하는 일이 안에서 또는 밖에서부터 옴으로 느슨했던 내 걸음이 빨라지고 축 늘어졌던 얼굴이 생기가 돌지. 말하자면 서로 기를 받으며 사는 거야.
문제가 없으면 죽은 삶이오. 문제나 고민은 삶을 이어가게 하는 불에 던져지는 장작과 같은 것. 남의 기대와 반응이 다르다는 고민은 죽는 날까지 해야 하오. 그것을 버릴 수도 없거니와(어떤 생활 양식으로도) 버리는 것은 몸에 박힌 화살을 뽑은 순간 죽어버리는 것과 같으오. 화살이 박힌 한 긴장해서 사나 그것을 뽑는 순간 긴장이 풀려 죽지. 00 언님은 우리 주님의 손 안에 있오.

 

<글 4-2>
공동체에서 ‘나를 버린다’는 말에서 ‘나로써 산다’는 말로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거야. ‘나를 버린다’는 초보이고, ‘나로써 산다’는 성숙한 단계에 있는 자의 인식일게야. 피해자의 의식은 초보자의 것이고, ‘너’를 위하지 못했다가 그 다음 그리고 최후 단계는 ‘나’ ‘너’의 한계가 잊혀지는 것. 해지는 데! 으레 해지는 데 힘이 드는 일도 있겠으나 ‘수고’는 아니니. ‘오늘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하다’라는 경우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때! 일은 많은데(추수할 것) 일꾼이 없구나!라고 누가 한탄했던가! 그런 한탄을 지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한탄한 첫 분을 닮아 가는 증거지. 삶은 고통스러운 것, 더불어 살아야 하고, 바로 그게 의지도 되고 고통도 주는 것, 그러나 사람에게 그리워할 자유를 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자유를 주고 미워할 자유 그리고 그렇지 말아야 할 자유를 주었으니 복잡할 때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글 4-3>
나는 사람들에게 정상을 향해 가기를 바라오. 정상이란 바로 자기가 선 자리에서의 최선의 길을 의미하오. 장사꾼의 정상이 다르고, 공부꾼의 정상이 다르지. 그처럼 언님의 위치에서의 정상이 다르지.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하면 그 길의 끝을 가보는 것! 그것이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것이며 거기에 감격이 있소.

 

<글 4-4>
네가 지금 있는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다. 네가 당하는 ‘고생’은 가장 가벼운 것이다. 매번 나 나름으로는 더 참을 수 없어 주님께 하소연하면 받던 소리였오. 그럴 때마다 원망스러웠오. 그러나 그 때를 지나서 언젠가는 그 말씀은 참 옳았구나 하고 고백하곤 하오. 그런데 그것은 매번 그 고비를 넘은 다음이었오.
나를 스스로 비하도 하게 하지 않고 그렇다고 성취감에 뿌듯함을 주지도 않는 관계는 죽은 관계더군. 어떤 형태로나 날 <편안>히 놔두지 않는 사람과 지낸 날이 내게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해지곤 하더군. 베드로가 배신하지 않고 가룟 유다가 팔지 않고 재판이 법대로 진행되고 로마 병정이 무죄라고 선포했다면 고독, 십자가 아닌 예수도 있을 수 없겠지. 또 그 고통을 나눈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의 고통을 통한 승리를 증언할 사람이 없었겠지.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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