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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52

내가 만난 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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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도기순

(향린교회 은퇴 장로)


먼저 안 선생이 예수 믿게 된 동기를 들은 대로 써야겠다. 안 선생은 1922년에 평남 신안주에서 태어나서 두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서 만주 간도 화룡현 달라재라는 동네로 이사해 살게 되었다. 이 동리에 와서 아이들하고 놀다가 어느 교회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거기에 어떤 사람이 달려 죽었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다른 동네로 갔는데 거기에 또 십자가가 있어 보고 또 물으니 역시 같은 말을 해서 호기심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왜 달려 죽었을까 알아보려고 교회에 찾아가서 열심히 주일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 정말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 된 것이다.
내가 안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안 선생이 용정에서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 때 은진학교 종교부에서 합성리라는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 나는 같은 계통의 학교인 명신학교 종교부장이었고 안 선생은 은진학교 종교부장이었다. 은진학교 종교부에서 우리 학교에 주일학교를 좀 도와달라는 교사 신청이 들어옴으로 그 때에 내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그 교회로 가서 안 선생을 알게 되었다. 그 때에 이 종교부장이라는 중학생이 설교를 하는데 놀라웠다. 사실 그 시대의 중학생이 지금의 대학생 수준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그 시절에 은진·명신 두 학교 가까운 곳에 동산교회라는 아주 큰 교회가 있었는데 매일 새벽기도에 백여 명의 학생들이 나와 기도했다. 당시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였다. 나 역시 눈물과 절규의 기도를 하였으니까. 이 새벽기도에서 만난 신앙의 동지들이 장하구, 안병무, 최봉삼, 장덕순 등이었고 동산교회 야학 선생들이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장하구, 안병무, 최봉삼은 일본 유학을 갔는데 몇년 후 일본학도병 때문에 도망쳐 만주로 나와서 흩어져 있는 동안에 안 선생은 용정과 연길 사이에 있는 모아산교회라는 개척교회에서(이 교회를 세운 분이 장덕순의 할아버지였다) 전도사로 목회를 했다. 이 때부터 안 선생은 목사 못지 않은 훌륭한 목회자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안 전도사에게 빠졌었다. 나는 연길에 있으면서 가끔 설교를 들으러 갔다. 설교며 기도며 정말 너무 감격스러운 눈물의 예배였다.
이 와중에 이 친구들의 중매로 최봉삼과 나는 연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학도병으로 숨어지낼 때였다. 결혼식 날 나의 집에서 이 친구들이 밤에 합숙을 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장하구, 안병무, 최봉삼, 장덕순 넷이 둘러 앉아서 나를 가운데 앉으라고 하더니 지금 새 신앙동지 한 사람을 환영한다면서 무릎꿇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아마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다 했던 것 같다. 얼마나 엄숙하고 진지한지 가슴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가 1944년 1월이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45년 8월 15일에 왜정 손에서 벗어나는 8·15해방의 날은 정말 가슴이 터질 정도로 환성을 올린 날이었다. 나는 이 때에 문득 남녀 학생들이 용정 동산교회에서 매일 새벽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하는 감격에 정말 ‘하나님,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듯 우리 민족을 왜정 압제의 손에서 해방케 하시는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다.
8 15 해방 후 만주에서 살 수 없어 국경을 넘어 남한 땅으로 흩어졌다. 안 선생은 8·15 해방 후 서울에서 6·25 전까지 감리교 일신교회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또 하셨다. 나와 최 장로는 옹진에서 살았는데 가끔 서울에 가면 꼭 일신교회에 가서 안 선생의 설교를 듣곤 했다. 시종일관 그의 설교는 감동적이었다. 이영환, 홍창의, 이 분들은 해방 후 서울에서 만난 신앙동지들이었다. 그러다가 6·25를 당해 피난길에 들었다. 안 선생은 전주, 우리는 부산, 장하구 선생은 대구로 갔다. 안 선생은 피난생활 중에 평신도교회 이상의 꿈을 실현하려고 53년에 서울로 와서는 남산 향린원에 정착하여 지금의 향린교회를 탄생시켰다. 누구보다도 피난 중에 안 선생은 동분서주하여 끝끝내는 53년 5월 17일(셋째 주일) 주일에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때에 잠깐 지내는 동안에 차차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에 수요 저녁예배 후 난롯가에 모여앉아 성경공부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안 선생이 맡아서 가르쳤다. 예배는 매주일 밤예배, 매수요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새벽예배도 드렸다. 안 선생은 저녁예배 시에는 531장을 많이 불렀다. 나는 지금도 이 찬송을 부를 때면 안 선생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찬송 부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에 나이가 우리 모두 30대였는데 ….

531장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찬송가사를 쓰겠다.

 

1.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2.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3.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4.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 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정말 너무 마음에 닿는 구절 구절들이다.
안 선생은 설교 후에 기도를 하는데 언제나 감격스러운 눈물이 넘치는 기도였다. 정말 다정다감한 신앙인이었다. 이때에 가정(어머니와 동생) 생활은 정말 가난했다. 보리밥에 된장찌개뿐이었지만 그러나 항상 안 선생 주위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안 선생의 성경말씀을 배우고 듣느라고 모여들었다. 그의 생활은 정말 검소했다. 어느 날 안 선생 집에 갔더니 누가 새 양복을 해 주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입고 나가느냐며 누가 며칠 입다가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봉삼이 형이 며칠 입다가 가져오라고 하기에 내가 “이제 보니까 안 선생님은 좀 바보스럽군요” 한 적이 있었다. 일생 사치라는 것을 모르고 사신 분이다. 예수님이 사신 생애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전 생애를 바쳤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져 안 선생은 오직 예수에게 미쳐 사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선생은 여러 친구들 중에도 특별히 보잘 것 없는 도기순과 최봉삼이를 끔직이 사랑해 주셨다.
안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남편 최 장로가 2년 전에 돌아갔다. 안 선생 돌아가셨을 때 정말 너무 슬펐다. 신앙의 스승이었고 사랑과 위로의 친구의 죽음이었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았는지 안 선생이 돌아가기 10개월 전 주일 설교가 마지막 유언의 설교가 되었다. 설교 끝부분에 간곡히 하신 “여러분 어쨌든 내 생명 다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은 놓지 마세요. 끝까지 이 십자가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하는 말씀을 의미깊게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향린교우들에게 부탁한 멋진 유언의 설교가 되었다. 정말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전 생애가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결국 민중신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겠는가?
안 선생은 죽기 전에 중국(만주) 간도 땅 고향인 산골짝 달라재, 용정, 해룡강 건너편 용강동 모아산교회에 꼭 가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따라 그곳에서 80세 할머니와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그 분은 “안 전도사님!” 하면서 달려왔고, 그 할머니 역시 죽기 전에 안 전도사를 만난 그 기쁨이 꿈만 같은 일이라 했다고 한다. 안 선생이 50년 전 자기의 발자취를 다시 밟아보고 돌아온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개무량한 큰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을 감당하기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점점 심장질환이 악화되어 일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다 돌아가기 며칠 전 꿈 속에서 자신이 하얀 옷을 입고 천사처럼 훨훨 날아서 하늘로 올라가다가 깼다면서 동생 병택 씨 보고 “야 참 기분 좋더라” 하셨단다. 언젠가는 가야 하는 인생길, 그는 이런 모습으로 영원히 세상을 떠나 가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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