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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35

역사와 증언을 깨우쳐 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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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재웅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이야기 한 토막


나는 70년대를 학생기독교운동의 실무자로 몽땅 바쳤다. 유신체제가 기승을 부릴때라서 많은 사람들이 값진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소위 민주화 운동이라든가 인권운동에 가담했던 인사들은 당국의 미행과 가택연금을 당하기 일쑤였다. 당국은 소위 문제인물들을 예고없이 가택수색 하거나 수사당국으로 끌고가 고문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많은 민주인사들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수형생활을 하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시달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심지어는 유명을 달리한 인사들도 쉽게 꼽을 수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기독교 계통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당국의 미움과 감시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런 와중에서 나는 부지런히 모임을 주선하였고 열심히 학생들을 모았다. 나는 수원에 있는 “내일의 집”에서 기독학생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했다. 안병무 교수님을 강사로 모시고 “역사와 증언”에 관해서 인상적인 강의를 들었다. 물론 『역사와 증언』이란 책은 「현대신서」라는 조그만 문고로 출판되어 당시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판을 거듭하던 때였다.
나는 이 모임에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이 가맹되어 있는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아시아·태평양 총무 나엘 코르테스(Nael Cortez)를 초청해서 안병무 교수님 등 몇몇 강사분들과 어울려 커다란 온돌방에서 며칠간 지냈다. 이렇게 생활하는 것을 눈여겨 본 안 교수님은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나엘 코르테스 총무가 그만두고 나면 네가 그 자리로 가서 일하는 게 좋겠다. 국제기구를 장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요지의 말씀을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불쑥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감옥을 네 차례나 들락거린 전과자요, 형집행 정지에다 자격정지까지 받은 처지라서 감히 이런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안 교수님은 거두절미하고 코르테스 총무와 지내는 나를 지켜본 후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고나 할까? 나는 얼마 전 안 교수님의 저서 『너는 가능성이다』라는 표제의 책을 보면서 남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안 교수님의 말대로 코르테스 총무의 후임이 되어 홍콩 사무국에서 6년간 일을 한 바 있다.
나는 직책상 자주 출장을 다니게 되었다. 마침 독일에 가게 되었는데 김용복 총장께서(당시 기사연 부원장) 스투트가르트에 들러 독일복음교회선교부(EMW) 장학금 관계 책임자와 만나 이종원 교수(당시 기사연 연구원)의 장학금을 교섭하도록 부탁받았다. 물론 김용복 총장이 사전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나는 독일학생기독교운동(ESG) 책임자와 함께 스투트가르트를 찾게 되었고 장학 관계자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장학 책임자는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내가 홍콩에서 왔다는 것과, 한국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하고 김용복 총장께서 부탁한 장학생에 관한 교섭차 들렀다는 방문 취지를 곁들여 말해 주었다. 게다가 한술 더떠 내가 “안병무 교수님의 아들”이라면서 더욱 반갑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나는 안 교수님이 독일통이고 이분의 친지들이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아들로 둔갑해서 환영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나의 해명은 한바탕 좌중을 웃음판으로 뒤바꿔 놓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잘되어서 이종원 씨는 토오쿄오의 국제기독교대학(ICU)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후 동경대학에서 사까모도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와 센다이대학 등에서 가르치다가 지금은 릿교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나는 앞서 일했던 기구에서 임기를 마치고 신학공부를 할 요량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장로교의 장학금을 받게 된 덕택에 처음에는 에모리로 갔다가 가족이 늦게 합류하게 되자 아이들 교육 문제로 부득이 보스톤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학교도 하버드로 옮기게 되었고 그후 공부를 마친후 다시 홍콩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농촌선교국(URM) 책임을 맡아 일하게 되었다. 하루는 안 교수님께서 변선환 교수님과 함께 홍콩을 방문하였다. 이분들은 태국의 칭마이에서 CCA가 주최한 신학관련 회의를 마치고 귀국길에 홍콩을 들르셨다. 나는 이분들을 모시고 홍콩의 야경은 물론 광동식 중국요리를 기분좋게 즐겼다. 말마다 농담으로 이어지는 두 분의 덕담을 들으면서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안 교수님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난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직제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던 경험과 이번 CCA의 신학관련 모임에 참석해 본 결론은 “이제 한국의 신학이 세계신학의 조류에 맞물려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는 사실이라면서 마침 한국의 민중신학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 때이고 한국의 민중신학의 창시자의 한 분인 안 교수님의 입장이고 보면 이분의 판단이 얼마나 자신만만했던가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안 교수님은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의 경우 이미 서구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신학의 틀을 충분히 섭렵하였고 우리 나름대로의 신학적 토대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까지 겹쳐 한국신학의 가능성이 더욱 확고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생각이 떠오른다.


‘역사와 증언’에 관하여


70년대를 산 젊은이들은 소위 “이념서적”을 탐독한 세대이다. 이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불어 넣은 사람들의 이름을 우리는 쉽게 꼽을 수 있다. 안 교수님은 신학자로서 많은 전문서적을 출간하였다. 하지만 70년대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는 책으로는 아마도 『역사와 증언』이 대표적이 아닐까 한다. 안 교수님의 이 책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바른 세계관을 갖게 하고 바른 역사관과 지혜는 성서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의도에서 쓰여진 『역사와 증언』은 오늘도 불티나게 20여 판을 거듭하는 베스트셀러로 우리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물론 70년대에 읽었을 때와는 다소 거리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이 책을 가끔 들여다 보곤 한다. 안 교수님은 이렇게 요약한다. 성서에 기록된 여러 가지 내용들을 분석해 볼 때 성서는 하나의 귀중한 고전과 같은 경전 정도이며 구약의 경우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특수 민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개입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사랑과 증오를 속속들이 터득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약의 내용 역시 산상설교처럼 윤리적 측면이 강조되는가 하면 바울의 교리적 가르침을 배울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성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를 통해 인간들에게 보여 준 사건이므로 결국 기독교의 원리와 교리를 뛰어 넘게 한다는 내용으로 집약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성서의 특징은 인간들의 완전무결함을 늘어 놓는 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인간상을 소개함으로써 그 안에서 나를 보고 내 안에서 성서 안의 인간상을 보게 한다고 명쾌하게 지적한 바 있다. 안 교수님은 성서 안의 인간상이 수천 년 전에 생겼던 어떤 사건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안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것과 공동 운명체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란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어떤 의지 또는 손길을 경험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이 대목이 바로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역사의식을 똑바로 터득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안 교수님은 성서를 통해서 역사의 증인으로 책임있게 사는 신앙의 확신을 얻도록 새로운 시각을 젊은이들에게 제시하였다고 본다. 안 교수님은 성서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영의 눈으로 또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서를 성서가 가진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아직도 영의 눈이나 믿음의 눈이 밝지 않은 터이지만 순수한 눈으로 성서의 기사를 읽게 되면 내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말을 던져 주고 있다. 70년대의 젊은이들은 어려운 군사 독재체제를 성서의 사건과 관련시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눈을 성서로 돌리게 되었다. 결국 과감하게 역사현장의 증인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역할을 이 책이 했다는 데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고 있다. 성서 자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눈을 가져야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성서는 사람의 글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려면 분석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의 고유성은 성서비판 연구과정을 통해서 성서의 중요성이 돋보이게 된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성서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해야 하고 성서가 진리라고 믿는다면 비판을 무서워할 것이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70년대의 역사는 많은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유신체제로 대표되는 군사독재정권은 사건을 조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70년대를 판치던 이념서적의 저자들은 논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본을 보여 줌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이 이들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안 교수님 자신도 소위 3·1 민주구국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곤욕을 몸소 이겨낸 분이다. 이런 역사의 삶을 바탕으로 일궈낸 신학적 작업이 바로 민중신학의 토대가 되었고 당시 민중과 더불어 일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70년대는 참과 거짓이 싸우는 역사의 현실로 우리는 파악하였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놓고 역사적 결단을 요구받던 때였다. 몸을 아낀 사람들은 조용한 다수와 함께 대세에 따라 살았고 빛과 소금이 되고자 역사의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던 증인들은 온갖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안 교수님은 바로 이런 역사에 증인이 되기 위해서 젊은이들에게 성서의 참 뜻을 신·구약의 사건을 통해서 꿰뚫어 보게 하였고 말과 글로는 부족했기에 몸으로 이를 실천했던 분이다. 이분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도 역사의 증인이 되고자 애쓰는 많은 후배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는 가능성이다”라고 외친 안 교수님의 판단은 옳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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