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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41

오클로스의 신학

조회 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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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재정

(성공회대학교 총장)


요즘 부쩍 안병무 박사님이 그립다. 시원스럽고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해답을 주는 그의 신학이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의 우리의 상황이야말로 지혜의 신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전환의 문턱에서 우리는 정말 그의 뜨거운 열정과 빛나는 예지가 그리운 것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는 한 마디로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있다. 새 정부는 분명히 건국 50년을 그야말로 분단 50년으로 끝내지 않고 제2의 건국을 내다볼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로서 우리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몰아 넣고 있는 경제대란이나 70-80년만에 기록을 세우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대홍수는 우리를 갈등과 어려움 속에 몰아 넣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내다보아야 할 새로운 세계는 시간의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일 뿐이다. 위기는 언제나 우리가 풍요와 여유 속에서 정신적인 타락과 함께 우리를 엄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로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그때인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제2 건국의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병무는 이 시대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말해 주었을까.
그의 신학은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서 시작하고 있다.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고 갈등과 투쟁이 있고 그리고 한숨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숨’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그 숨은 어둠 속을 비추어 주는 빛이며 절망 가운데 다시 솟아오르는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숨이 생명인가. 그 숨은 오클로스 즉 무리들에게 새 생명을 입혀서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병무는 바로 그 숨과 오클로스와 역사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된 창조의 세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 예수와 함께 예수를 따르며 역사의 현장을 열어갔던 그 오클로스는 역사의 생명이며 역사의 힘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역사를 열어 보여주면서 그 역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이런 관점에서 오클로스의 삶의 양식은 라오스 즉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라오스가 종교적이었다면 오클로스는 역사적이었고, 라오스가 자신의 구원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오클로스는 역사의 구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라오스가 교조적인 율법주의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클로스는 합리적인 미래를 열어주고 있다. 라오스가 땅에 집착했다면 오클로스는 하늘을 열어 준 것이다. 오클로스는 예수의 동행자이었으며 예수는 오클로스의 동반자이었다. 오클로스는 예수의 현존을 대변하는 역사의 실체이었으며 예수는 오클로스를 통하여 새 역사의 생명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병무는 우리에게 역사의 숨을 밝히는 오클로스의 신학을 가르쳐 주었다.
민중신학회를 창립하던 날 안병무는 서대문 선교교육원에서 민중신학이 가야 할 역사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당시에 그가 꿈꾸던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실체를 밝혀내려던 것이었다. 민중신학회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민중신학회의 회원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민중신학회가 과연 아직도 유효한가 등의 회의론이 한구석에서 제기될 때 안병무는 역사의 생명 역사의 부활을 말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정권교체의 새 역사였으며, 제2의 건국의 새 역사를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안병무에게 있어서 민중신학회는 누구에 의하여 조직되고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민중신학회가 과연 이 역사의 생명 또는 생명의 역사를 어떻게 밝혀내느냐는 것이 관심사였다.
지금 우리는 몸서리치는 온갖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 재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난 건국 50년 동안 분단 50년을 이어 오면서 역사의 숨을 끊고 죽음의 세계를 살아 온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일제 식민통치의 철저한 역사 청산도 군부독재의 엄청난 억압에 대한 역사적인 성찰도 하지 못한 채 우리의 역사는 군화발 아래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곧 오클로스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목졸림의 뒤에는 분단이 몰고 온 분단구조가 있었다. 분단구조는 역사에서 오클로스를 밀어내고 가진 자의 세계를 만들어 갔으며, 가진 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오클로스의 숨을 마구 눌러 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역사의 죽음까지도 몰고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우리의 역사에서 배워 왔다. 그래서 분단은 곧 민족의 원죄가 되었으며 우리는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원수에 대한 증오에 치를 떨며 원수의 가슴에 총칼을 들여 대고 있으면서 어찌 역사를 올바르게 볼 수 있겠는가. 분단이 죄다. 분단이야말로 우리를 죽이고 역사의 숨마저도 끊어버리는 마귀의 세력인 것이다. 그러기에 지난 50년간 우리는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친구마저도 서로에게 등을 지고 눈을 부릅뜬 채 고함을 치며 분노와 미움 속에 살아왔다. 이것은 혼돈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하나님도 창조의 질서도 그리고 생명도 없는 죽음의 골짜기로서 음침한 바람 속에 마른 뼈들만 뒹굴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지나간 과거 50년의 역사였다. 그 끝에서 우리는 온갖 재난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오클로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새 역사의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클로스의 눈은 그 폭풍우 너머로 다가오고 있는 생명의 새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안병무가 그립다. 그의 날카로운 신학이 우리를 흔들어 깨워 깊은 죽음의 잠에서 일어나 이 역사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잘 보라. 그의 신학은 그의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학은 살아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숨으로 움직이고 있다. 저기 저 역사 속에서 안병무의 신학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남북을 넘나들고 있는 새 기운이 통일의 길을 열면서 역사의 숨을 몰아 오고 있지 않은가. 그의 신학은 책 속에 머물어 있을 수 없다. 그의 신학은 강의실에서 이어질 수는 없다. 그의 신학은 학문적인 토론의 자료가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은 역사의 숨 그 자체이기 때문이며 오클로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제2 건국의 길을 열어 가고 있다. 골짜기에 늘어져 있었던 뼈들이 다시 이어져서 새 생명으로 되살아 오고 있다. 거의 숨이 끊겼던 오클로스들이 새 모습으로 담을 넘어 강을 건너 하늘을 날아 역사에 생명을 주고 있다.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다시 살려 그 숨을 돌려 주는 것이며 그것이 통일의 첫 단계인 것이다. 통일은 죽은 역사를 살려내는 것이다. 바로 안병무는 이러한 신학적인 과제를 민중신학회에 넘겨주었다. 그는 지금 역사의 숨 속에 살아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그 숨을 보아야 한다. 그 숨은 우리 민족의 생명이며 통일의 새 역사를 이루어 갈 힘이다. 그것은 마침내 이 땅의 오클로스를 살려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마침내 되살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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