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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40

민중의 투쟁 속에 있는 희망 -안병무와의 우정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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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위르겐 몰트만

(Juergen Moltmann | 튀빙엔대학교 교수)


1975년 3월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 가서 한국신학대학의 안병무 교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도쿄의 도시산업선교대회를 위해서 “민중의 투쟁 속에 있는 희망”에 대한 강연을 준비했다. 이 강연에서 나는 1945년에서 1948년까지 3년간 감옥에서 포로되고 억압된 민중의 지체로서의 내 개인적인 경험을 정치신학적인 개념과 결합시켰다. 이것은 요한 메츠(Johann Baptist Metz)와 내가 1960년대 기독교-맑스주의 대화에서 발전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교회와 민중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자극받은 것은 신약학자 안병무 교수의 “마가복음의 예수와 오클로스”라는 논문에서였다.
내가 서울에 왔을 때, 한국신학대학의 일군의 교수와 목사들로부터 아주 친절한 대접을 받고 연세대학교의 손님방에서 머물렀다. 거기서 나는 한국민중신학을 함께 정초한 서남동을 만났다. 나는 처음 한국신학대학에서 강연하고 그 다음 다른 신학대학과 대학교에서 했었고, 한국중앙정보부(KCIA)의 아주 불친절함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정보원들이, 나와 나의 주제 그리고 나를 초대한 이유 등을 알아 내기 위해서, 신학교까지 와서 내 앞에 나타나거나 나를 따라 다녔다.
한국은 그 당시 군사독재 아래 있었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감옥에 내던져졌다. 어머니들은 검은 목도리를 하고 항의했다. 나의 주제는 정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박해받고 억압당한 민중운동과 민중신학의 근본사상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신학대학의 청중들 중에는 머리를 삭발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감옥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사진에는 그들 가운데 안병무 교수가 중앙에 앉고 그의 왼쪽에는, 소위 북한과의 접촉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고 재판에서 나의 『희망의 신학』을 증거로 끌어들였던 불행한 학생이 앉았다. 나는 자주 그를 위해서 중재에 나섰지만 그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사형 감방에는 그 당시 역시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그의 시와 편지는 독일어로 번역되고 출판되었다―도 앉아 있었다. 안병무 교수와 나는 곧 서로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 다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항상 그를 방문했고, 그는 의학적인 치료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후에는 나의 제자이며 친구인, 박종화 교수를 보기 위해서, 자주 튀빙엔에 왔다. 1984년 나는 귄터 바움(Gunter Baum)과 박종화 교수와 함께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김용복 그리고 다른 한국 민중신학자의 가장 중요한 논문을 하나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것의 제목은 『민중. 남한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의 신학』(Minjung. Theologie des Volkes Gottes in S웓korea)이며, 노이키르흐너 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이것이 독일에서의 민중신학에 대한 첫번째 소개였으며, 매우 환영을 받았다.
안 교수가 지난 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독일에 있는 우리는 매우 비탄해 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에게 신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많은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의 하나의 발견이 공동체 운동으로 새로운 신학으로 흐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로마서 3장 28절에서 마틴 루터의 하나님의 의의 발견과 교회와 사회에서의 뒤따르는 종교개혁적인 운동 이후에 그런 것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안병무 교수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귄터 보른캄에게서 신약을 연구할 때 비슷한 것을 발견했고 한국에서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마가복음에서 “민중”(오클로스)은 예수의 출현과 메시아적인 사명에 어떤 부차적인 엑스트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학문적인 주석가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것처럼, 오히려 갈릴래아에서 그의 첫 번째 출현 후부터 예루살렘의 로마 점령군에게 십자가 형을 당하기까지 예수와 민중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상호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마가복음에는 36번 이상 오클로스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라오스”(laos)로 지칭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시 이방 백성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방 백성은 항상 “에트노스”(ethnos)로 지칭되기 때문이다. 오클로스는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민중, 집단―polloi―혹은 희망없는 사람들의 군중, 갈릴래아의 가진 것 없는 시골노동자를 의미한다. 이같은 고난당하는 민중이 예수의 복음과 그의 구원하며 일으키는 영향의 수신자다. 그들이 그의 “가정”이다. 그들이 그의 “제자”다. 그들은 “그를 따른다.” 그리고 예수가 이 민중과 함께 공동체를 찾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선언은 그들에게 해당하며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미래가 이 무법적인 세상에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민중에 대한 예수 사랑의 사건과 민중에 대한 예수의 동일화 속에 계시된다”고 안 박사는 말했다(위의 책, 132).
마가와 바울의 비교에서 안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밝혔다. 즉 예수는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민중(오클로스)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삶 자체도 마가에 의하면, 개인적인 전기가 아니라, “사회전기”의 형태 안에서(위의 책 161) 묘사된다. 민중과 함께 하는 예수의 역사와 예수와 함께 하는 민중의 역사는 단지 같은 역사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다: “예수가 있는 곳에 항상 민중이 역시 있다; 민중이 있는 곳에 항상 예수가 역시 있다”(같은 책, 165). 마가는 “그 시대 민중의 고난사를 예수의 수난사를 가지고 설명한다. 그리고 반대로 예수의 고난은 마가 시대의 민중의 운명 속에 현재화 된다”(같은 책, 167).
안 박사는 우리에게 이같은 놀랄 만한 관점을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사고와 집단적인 사고의 차이점을 가지고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시아의 단체적인 사고를 가지고서 설명했다. 아시아에는 “인격”(Pers쉗lichkeit)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각 인간은 보다 큰 공동체의 지체들이다. 그것은 히브리적인 사고에서도 역시 비슷하다. 다니엘 7장에 인자의 아들의 지배와 거룩한 백성의 지배는 똑같은 사건의 두 가지 면을 표시한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구원” 같은 알려진 그리스도 표제는 배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단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수는 먼저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 다음 많은 사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의 대표자로서 고난을 당했다. 나는 예수와 민중 사이의 이 같은 단체적인 단일성의 견해를, “예수 생애”에 대한 개인의 서구적인 투사를 극복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고 도움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안 교수와 다른 민중신학자들과 서광선 교수의 집 지하에서 가졌던 매우 활발한 토론을 기억한다. 거기서 안 박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민중을 세상의 구원자로 설명했다. “너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자”를 우리는 예배에서 노래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죄, 폭행, 굴욕, 착취, 병 그리고 죽음을, 실제적으로 가난하고 병들며 고난당하는 민중이 아니면 누가 지는가? 오늘날 민중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당하는 종”이 아닌가? 나에게 이같은 메시아적이고 구원하는 민중에 대한 견해는 전혀 잘못된 것이거나 어려운 것이어서 나는 매우 격렬하게 반응했고, 우리는 하나의 적절한, 그러나 좋은 신학적인 논쟁에 빠졌다. 나는 두 가지를 고려했다:
1. 민중이 그의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한다면, 그 다음 누가 민중을 구원할 것인가? 민중 자신이 구원자라면, 그 다음 민중은 자신을 위해서 어떤 구원자도 갖지 않으며 역시 가질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민중은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위해서, 이미 구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물음은 이미 주석적으로 이사야 53장에 대한 “고난당하는 종”의 집단적인 주석에 드러난다. 나는 고난 당하는 종이 집단적인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모세”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모세가 첫 번째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2. 민중이 그의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의 고난을 신성시해서는 안 되며, 그리고 민중은 그의 증오스러운 고통을 가능한 대로 빨리 극복하고자 한 반면에, 우리는 그것을 신학적으로 필연적으로 만들지 않는가?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함께 겪어야 하는 고난은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이 극복되어야 한다. 만일 신학자들이 나의 고난을 “구원하는 고난으로” 신성시 해서 내가 계속해서 대표하면서 고난을 당해야 한다면, 고난당하는 민중의 지체로서 나는 그것을 거절할 것이다.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서 똑 같은 문제를 겪는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인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이며 그를 뒤이어 교회의 선택이지 결코 가난한 자들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선적인 선택은 가난, 질병 그리고 착취가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의 삶을 통해서 극복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가톨릭 친구인 엘살바도르의 소브리노(Jon Sobrino)와 비판적으로 토론했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연대 속에 실재하는 “십자가에 처형된 민중”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어떠한 구원를 대표하는 고난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고난으로부터 구원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광선 교수의 집 지하에서 우리의 토론은 그 당시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아마도 안 박사의 단체적인 사고방식에 무언가를 이해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숙고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민중신학자의 이 회고의 책에 그것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다. 그는 정직함과 직접적인 공명정대함을 높이 평가했고, 그는 그것을 지금 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안병무는 나에게 항상 죽은 다음에도 현재하며 그리고 나는 그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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