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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39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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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도여수

(Lutz Drescher | 전 주한 독일선교사)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내가 민중신학을 만든 것이 아니라, 민중이 나를 민중신학을 만들도록 하였다”라고 몇 해 전 당시 71세의 안병무 교수는 어느 한 글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더 나아가 그는 “나는 일생동안 예수에 대해 알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민중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 무시당하는 사람들, 소외된 자들, 노동자들, 농민들 그리고 빈민촌의 사람들, 또한 정치적으로 억눌린 자들 즉 해직 교사들, 금지된 문필가들, 또는 정치적 죄수들이 민중인 것이다.
민중은 예수와 어떤 관계인가, 반대로 예수는 민중과 어떤 관계인가 이것이 안병무 박사와 다른 신학자들을 고민하게 했던 의문들이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민중과 예수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고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 민중 그리고 그들의 고난, 이것에 대한 숙고에서,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을 핵으로 하는 민중신학이 생겨났다. 민중신학에서 “현장”, 즉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중신학이 생긴 장소는 책상이 아니라 고난의 경험들로부터였다. 이 민중신학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아니라,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가 적용된다. 사건들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사건들에 대해 숙고하고 그리고 사건들을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그리고 어느 젊은 목사님이 표현한 것처럼 “현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시도에서 이 신학이 생겨났다. 이 신학은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 부터”의 신학이요, 연역적이고 계통적인 신학이 아닌 귀납적인 “사건들의 신학”이다.


고뇌하는 민중- 현실의 체험


현실은 어떠한 처지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그 처지에 그 관점이 있고 또한 그에 따라 인지도 달라지며, 그 인지자는 다른 깨달음에 이른다. 책상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감방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여진다. 안병무 박사는 70년대 독재 정치에 반대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감옥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현실을 새롭고 다르게 인식하는 것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새로운 안목으로 성경을 읽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피부 가까이 민중과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에 이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범죄자가 아닌, 역시 체제의 희생자임을 깨달았고, 또한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무엇보다도 죄인이 아닌, “사람들이 그들을 정죄한” 구조적인 죄와 권력의 희생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더 나아가 이 사람들이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초월해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자신에게 닥치는 불이익과 고난을 참아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그는 “한국의 간디”로 불리웠던 철학가이자 퀘이커 교도인 함석헌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다.
과거에 외부 침략에 대해 저항했고, 현재까지 안으로 독재 정치와 싸워온 것은 방어력 없는 민중이었다. 지배계층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동안, 민중은 종종 희생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달게 받으며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고난을 당하면서 둘 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다. 이것이 민중신학에서 그러한 고난의 경험들이 해석되어지는 방법이다. 민중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예수의 고난은 민중의 고난, … 예수의 고난을 볼 때, 우리는 개인 한 사람을 보지 않고 인간 자체의 고난을 본다”(안병무 박사의 잡지Mission과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 1988. 2. p. 89).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고난은 마지막엔 구제하고 해방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마찬가지로, 민중의 고난에 대한 각오 역시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것은 두 가지 예에서 명확해진다. 첫째, 1970년 노동자의 권리박탈과 억압에 대한 투쟁으로 몸을 불태워 자살한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조합운동의 소생과 대대적인 노동운동으로 이끌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그 당시 안병무 박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으며, 그는 거듭하여 그것을 암암리에 언급하였다.
둘째, 1987년 대통령 직선과 민주 개혁으로 이끈 민중운동은 다만 수천 명의 무죄의 정치 수감자들의 고난의 경험들과 연관하여 이해될 수 있다. 무죄한 사람들의 체포를 통해 그 체제는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으며, 양심수의 가족들은 공식적으로 독재 정치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들의 활동력을 위축시키고 벙어리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어날 수 있는, 움직일 수 있는, 공식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그들의 고난(또는 “恨”)은 분노와 생명력으로 변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이 약한자 안에서 능력이 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늘날에도 세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을 느낄 수가 있다.
이 부분에서 왜 민중신학이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으로서 불리워지는지 명확해진다. 이유는 민중신학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고난을 당하게 하는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항상 생각하게 하는 신학이기 때문이다.
고난과 십자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측면에서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학으로 증명된다. 안병무 박사는 민중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대신” 고난받는 사건을 “예수 사건”이라고 부르며, 김용복 박사는 그것을 “민중의 메시아화”라고 말한다. 그러한 문장들은 서양인의 귀에는 아주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여기서 민중의 존재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 언어로 쓰려면) 본체론적 증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설명한 사건들의 현상과 성과에 대한 현상적 진술을 다루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할 수 있다.
민중신학자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총괄적으로 요약 정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즉, 고난받는 민중 가운데, 이러한 사건들 가운데, 그 갈등들 가운데 예수가 살아 있고, 현존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욱이 함께 고난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구제자와 해방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예수―성서적 이해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은 또한 성서를 읽음으로써 알 수 있다. 여기서 다시금 성서가 읽혀지는 장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어느 독일 목사님의 따뜻한 서재에서 일어나는 것과, 아니면 찬 감방에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랑”이 있으며, 그것은 성서의 이해를 방해한다. 성서는 먼저 “아래로부터 조망”할 때만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성서적 단어들인 해방, 진리, 공평은 정치수감자, 검열 그리고 빈부의 큰 차이가 있는 나라에서는 다르게 들린다. 한국에는 감옥에서 처음으로 성서와의 만남을 가진 젊은이들이 몇몇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를 가까이 경험했고, 그것을 통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서에 기재된 사건들이 단지 옛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날의 일들을 다룬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경험을 역시 안병무 박사도 하였다. 민중신학이 생기기 오래 전 그는 “역사적”―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질적”―예수를 찾는 중에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갔고 거기서 그는 불트만의 영향을 받아 박사 논문을 썼다. 그러나 그는 끝내 “실재하는” 예수를 책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민중운동에 참가함으로써 그리고 감옥 안에서 함께 고난받으면서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또한 이론에 앞서 실습과 경험이 우선임을 알 수 있다.
그후에 그는 신약성서 연구를 하면서 (그는 오랫동안 한신대 교수로 지냈다.)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한 가지는 그리스도 선포(Christusverkundigung)의 발전은 케리그마화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은 사람들의 도전이 되었고, 또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 확신을 가졌으나, 역사가 흐를수록 그 확신은 희미해져 갔다. 기독교는 점점 “예수 없는 기독교”가 되버렸고, 까다로운 예수에 대해서는 말을 안한다(참고. 눅 11:34; 16:14; 19:45). 그 결과 예수님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내세적이고, 무해하고, “무력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바로 이 “무해하고” 저편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 때문에 혹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효과 없고” “비현실적”으로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안병무 박사는 거듭해서 서양에서 온 방문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곤 하였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그는 무엇보다 마가복음의 해석을 통해 그리고 마침내 그의 저서 『갈릴래아의 예수』(1992년 한국에서 출판)에서, 예수와 성서적 민중(그리스어 ochlos)과의 관계가 깊다는 것을 밝히길 노력했다. 민중은 예수라는 무대의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주인공이 성공적으로 연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엑스트라도 아니다. 민중은 스스로 한 역할을 담당하며, 예수 사건을 진행해 가는 힘이요, 초연자이다.
여기서 명확하게 생기는 주체와 객체의 극복은 이미 전체적이고 함축적인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무엇보다 민중문화에서 스스로 기초가 닦여져 있었다. 한국말에는 “나, 너 대신 우리”가 더 많이 사용된다. 옛날부터 지배계층을 비평하는 전통적인 탈춤을 출 때, 그리고 무엇보다 무당이 굿을 할 때는 원래 구경꾼은 아무도 없으며, 모두가 거기에 참석하여 관계를 하게 된다.
안병무 박사는 그의 저서 제목에서도 암시했듯이 예수의 활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예수는 생전에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을 하였다. 갈릴리는 당시 권력중심지부터 멀었으며, 천하고 빼앗기고 억눌리고 “죽음의 그늘”(마 4:15)에서 저항하는 민중들이 살았던 곳이다. 거기서 신의 육신화가 일어났고, 그리고 그후 예수는 인간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예수는 갈릴리의 민중과 결부되었고 그리고 거기서 그는 부활자로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기이하게도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에는 갈릴리에서 부활자와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막 16:7).
위에 언급한 경험들을 통해 이 구절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데, 즉 예수님은 신분이 낮거나 천한 사람들 가운데, 민중 가운데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심을 성서의 이해를 통하여 확실히 알수가 있다.


바닥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민중교회


그리스도가 있는 장소는 교회가 있어야 하는 장소이다.
많은 젊은 목사님들이 말씀하시길 도시에는 빈민자 및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있고 또한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마을들이 인구의 반 정도가 떠나간 곳이다.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에서 그들은 민중 가운데 “민중공동체”로 불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8년도 한민련(민중공동체연합) 안에 40개의 공동체가 연합되었다. 그 사이 그들의 숫자가 세 배가 되었다. 이 공동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경험들을 보는 것은 민중신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찰하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예수와 가깝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예수는 가난하게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우리 중 하나이다.” 이것은 서울 어느 빈민촌 교회에 다니는 한 성도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농부시다.” 시골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이 예수에 대해 배우는 내용 중 하나이다(요 15:1 참조). 그리고 이것을 크게 써서 그들의 작은 교회 안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붙인다.
“노동자로서의 예수의 삶” 이것은 젊은 노동자들이 어느 노동자 교회에서 상연하는 성탄절 연극의 제목이다. 이 작품에서 노동자들의 삶, 무엇보다도 고난은 예수의 삶, 고난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에게 예수는 구름 위 어느 높은 곳, 옥좌에 앉아계시는 분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현실에서 함께 하시는 분이다.
모든 이 교회들은 아주 밀접하게 노동자운동, 농민운동을 위해 함께 일한다. 또한 비기독교인들도 이 공동체 안에 가끔씩 참여하는데, 어떤 때는 일요일에 “거리에서의 예배(막 11:1-10, 예루살렘 입성)”로 불리우는 시위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활동은 교회 위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회지나 시골에서도, 들판이나 공장에서도 현존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 있다.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생겨나서, 이 교회 내지 모임에서 신학하는 방법들에 중요하고 새로운 자극이 되어 민중신학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부가적으로, 한민련(민중교회연합)은 1992년 9월에 “민중교회의 신학과 민중신학의 교회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을 열었다. 처음에 사건을 통해 민중신학이 생겼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민중신학은 너무 “사건”만 의지한다고 젊은 목사들이 비판한다. 민중교회에서의 평일은 종종 “사건 없이” 진행되고 그리고 빈민촌, 노동촌 그리고 농촌에서 살고 있는 민중은 부분적으로 민중신학이 나타내는 표상에 일치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일상생활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 요구된다. 현장을 체험하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마침내 이것이 안병무 박사에 의해 설립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제목이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다.


서양에 있는 우리에게 주는 도전


“70년대의 아픈 역사는 민중신학을 낳게 했다”고 안병무 박사는 말한다. 이 신학은 군사독재정치에 투쟁해 온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졌고,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
안병무 박사의 이러한 신학적 깨달음은 단지 특수한 지역에만 적용되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는가?
아직 부유한 산업국가의 관점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에 대해 제안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는 2/3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관찰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에게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하다면, 민중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볼 수 있고,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와 성서를 보는 데 우리는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민중 가운데 있는 안병무 박사는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신가?” 우리는 그를 단지 하늘에만 계신다고 간주하고(그래서 우리는 “신이 없는” 지구에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그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의 까다로운 면을 받아들이는가? 그의 거침없는 말들을 들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가 부활자로서 아직도 십자가의 상처를 몸에 지니고 계신 것을, 오늘도 고뇌하는, 고난의 동참자임을 알고 있는가? 이것을 통해 예수님이 현재에 고난받는 사람을 보여주시지 않는가? 우리는 마침내 작은 사람들 가운데, 소외된 자 가운데, 약탈당한 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고난에 동참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돌의 두려움을 극복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갈등 가운데 예수님이 살아계심과 실재함을 정말 바라면서, 예수님에 관한 문제를 검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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