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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집

2017.07.04 00:53

실마리를 아브라함에게서 - 안병무의 공헌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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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동환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시작하는 말


실천신학을 하는 자에게 있어서 마음에 드는 신학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실천신학 이론을 한 정리된 신학의 터전 위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신학에서 눈을 돌려 우리의 신학을 찾게 되면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는 나의 감옥 동지인 안병무와 서남동이다. 안병무는 우리 신학의 초점이 되는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역할을 했고, 서남동은 성서의 전통과 우리 한국 민중사를 통해 흘러내린 한민족의 얼을 합류시키는 데 길잡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의 신학을 터전으로 교육이론을 세우려고 했을 때 두 가지의 문제에 부닥친다. 첫째는 저들은 저들의 신학이 관념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체계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동시에 저들은 민중 사건들을 주시하면서 거기에서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에 전념을 하면서 그와 같은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성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것은 교육 과정을 창출해 보려는 나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육이론을 세우기 위해서는 신학이 어느 정도는 체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중사건들의 생성 과정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민중들로 하여금 성숙한 하느님의 동역자가 되도록 생성되는 과정을 돕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나로서는 민중사건의 생성 과정과 이를 통해서 터득하는 깨달음을 체계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글에서는 안병무가 나에게 깨우쳐 준 신학내용을 정리한 뒤 그것을 출발점으로 내가 깨닫게 된 생각들을 첨가해 볼 것이다. 먼저 안병무의 예수사건 이해의 기점을 지적하고 그와 같은 사건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필자가 생각하는 대로 제시해 보겠다. 나의 생각은 신에게 부름을 받은 수멜문화 출신이 아브람에게서 시작이 된다.


1. 안병무의 예수 이해와 아브라함


안병무의 예수 이해는 갈릴래아의 민중에게서 시작이 된다. 특히 당시 로마와 유대교가 한 패거리가 된 예루살렘 중심의 사탄의 세력에 여지없이 수탈을 당하고 있는 갈릴래아에서 놀라운 생명운동을 일으킨 예수가 그의 관심의 초점이었다. 예수는 경제적인 빈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소외로 말미암아 영과 육이 아울러 병들대로 병들어 아우성을 치는 갈릴래아의 민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안병무는 본다. 그는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나이 30이 되기까지 그들과 더불어 고난을 나누면서 살다가 그들 사이에서 득도하고 그들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서 생성이 되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확산하는 일에 모두를 바쳤다. 그는 이 생명공동체운동을 육성 확산하는 일에 신명을 기울이는 동시에 이 운동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세력과 대결해서 싸우다가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교육을 받은 것도 없다.
그는 세례가 요한의 때가 이르렀다는 회개운동이 선풍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구원의 손이 역사 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그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그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정치범으로 잡히게 되자 예수는 갈릴래아로 가서 그의 뒤를 이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민중들에게 자신을 다 주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놀라운 치유의 기적이 나타난다. 동시에 그들 사이에 하느님의 뜻이 지배하는 새 공동체가 탄생한다. 예수는 그것을 하느님의 나라라고 깨우치신다.
예수는 이와 같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민중들의 믿음들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는 이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온 몸으로 체득해서 그들에게 전하고 깨우치는 대행자의 역할을 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삶과 말씀에는 모세를 능가하는 놀라운 권위가 있는 것이다.
그 예수는 민중을 향해서는 철저한 사랑과 이해와 섬김의 삶을 사셨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민중들의 죄를 지적한 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민중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에 가깝다고 하시면서 가진 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서 민중 속으로 뛰어들라고 말하신다.
반면에 그는 내노라고 하는 기득권자들을 향해서는 가차 없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율법을 무기로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서는 회칠한 무덤과도 같은, 음부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고 지적하신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사리고 앉아서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대사제의 무리들을 향해서는 강도의 무리들이라고 질책하면서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신다. 그러다가 그는 로마와 종교지도자들의 합작한 세력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상에서 정치범으로 처형을 당하신다.
그러나 이 예수의 생명운동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의 부활경험으로 다시 요원의 불처럼 일어났다는 것이다. 안병무는 이 부활경험을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계시는 예수와 더불어 사는 제자들의 부활경험으로 본다. 이 부활 경험을 가지게 된 제자들이 예수의 생명운동을 지중해 연변에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병무는 이 새로운 생명운동은 갈릴래아에서 본격적으로 재활된 것이라고 본다. 예루살렘교회는 예수는 다윗의 후예로서 부활하신 후 하느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다시 재림하셔서 다윗왕국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고 배신한 유다 대신 맛디아를 사도직에 보완하는 일까지 했다는 것이다. 안병무는 부활하신 예수는 다시 갈릴래아의 민중 속으로 돌아가신 것이요 예수의 제자들은 고난받는 갈릴래아로 돌아가서 그와 더불어 하느님 나라 운동을 확산해야 했다는 것이다.
안병무는 이렇게 갈릴래아를 예루살렘과 철저히 대치시킨다. 예루살렘은 가나안 평등공동체 전통을 배신한 다윗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오도된 이념인 메시아 사상을 부추기는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죄악의 도성이라고 본다. 반면에 갈릴래아야 말로 가나안 땅의 평등공동체 정신을 유지시켜온 출애굽 전통에 올바르게 선 공동체로 본다. 따라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란 출애굽 공동체가 가나안 땅에서 이룩했던 평등공동체에 그 근원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갈릴래아의 농민공동체가 그 정신을 보존하고 다시 활성화시킨 것으로 본다.
여기에서 필자의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야기의 시작이 가나안의 평등공동체가 아니라 두루 헤매던 하비루들의 재출발을 이야기 하는 것이요. 이 하비루들의 삶의 정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브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까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상징적으로 불러왔지 한 역사적인 뿌리와 문화를 가진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애굽을 한 노예들의 선조가 되는 아브람, 혹은 하비루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주체였다. 어떤 특수한 주체가 있는 하비루가 두루 방황하면서 그들 나름의 주체를 가지고 그들에게 부닥쳐온 도전에 응했던 것이다. 출애굽 사건도 그런 응전의 한 모습이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 성서로 주어진 히브리 민중사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아브람’이라고 불리는 하비루들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가진 무리들이 어떻게 부닥치는 도전들에 응전하면서 예수에게까지 이르렀는지 하는 그 과정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것을 밝혀보려는 시도이다. 물론 필자는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기에 수멜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연구에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교육을 전공하는 자로서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한 하느님 이해가 어떻게 예수에게까지 심화되었느냐 하는 그 과정을 내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한도 안에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이 어느 정도 정곡을 찌르는 것이라면 우리 한민족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브람이 호흡하면서 자라난 수멜문화와 우리 선조들의 종교의 세계에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그것까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2. 아브라함의 정체


아브람은 수멜문화를 호흡하면서 성장한 것에 틀림이 없다. 그의 아버지 데라가 제3수멜제국의 수도인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아브람은 우르에서 장가까지 들었다는 것이니 그 역시 수멜문화를 철저히 몸에 익혔던 것이다.
그런 저들은 일찍 그곳을 떠나야 했다. 우르가 광야에서 쳐들어온 야만족들에게 패망당한 것이 주전 1750년경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아브람 이야기를 주전 1600-1700경의 것이라고 보기에 그 때가 맞아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저들은 고향땅에서 쫓겨난 유랑민이었던 것이다. 하란에 와서도 아브람은 정착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피치 못할 사정 없이 친척과 친지들을 등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에 차 있는 아브람에게 하느님이 나타나서 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브람과 그의 신과는 서로 계약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된다.
그런데 아브람과 계약을 맺은 이 신은 누구인가? 이 신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아브람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그를 ‘야훼’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다. 야훼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신다. 하란 땅에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신이 야훼일 수가 없다. 이 신은 ‘엘’일 수도 없다. ‘엘’은 가나안 만신전의 수좌에 앉아 계시는 창조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신은 누구일까? 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우르의 수호신 이난나(Innana)이거나 아니면 데라의 가문을 지켜주는 가족의 신이거나 아니면 수멜의 만신전의 수좌에 앉아 계시는 ‘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신이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인류사적인 의미를 가진다. 아브람에게 비옥한 땅과 창성하는 종족을 약속하신 다음 그 종족을 통해서 민족들이 서로 축복을 하면서 사는 세상을 이룩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와 인류를 한 품에 껴안는 우주적인 신이다. 그러기에 이 신은 틀림없이 ‘안’이었다고 봐야 한다.
‘안’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여러 가지 신들까지를 태어나게 하신 수멜 문화의 원초적인 신이시다. 그래서 그는 만신전의 수좌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수멜민족이 비옥한 바벨론 광야에 와서 화려한 농경문화를 창출하고 도시국가들을 이룩해서 강대하게 됨에 따라서 ‘안’에게서 파생된 여러 다른 신들이 모든 것을 주관하게 되고 ‘안’은 후선에 물러 앉은 것이다. 실제 힘을 발휘하는 신들이란 ‘엔릴’(Enlil)이라는 대기 혹은 바람의 신, 엔키(Enki)라는 지신 혹은 수신, 닌헐삭(Ninhursag)이라는 땅의 신, 나나(Nana)라는 월신, 우투(Utu)라는 태양의 신, 이난나(Inanna)라는 애정의 신 등이 주된 신들이었다. 저들은 이 신들은 산상에 거하신다고 믿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는 허허벌판이기에 저들은 지구라트라는 높은 탑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세워 저들을 섬겼던 것이다.
이 신들은 대체로 생명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수멜문화의 가치의 핵심이란 ‘생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도시 국가를 형성해서 서로 분립된 신을 섬기게 되면서 저들 사이에는 긴장이 조장이 되고 서로 힘의 투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신들이 힘과 결부되면서 사람을 취급하는 것도 퇴화되었다. 저들은 사람은 신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람의 기본 임무란 신전을 짓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신에 대한 제사란 저들이 기른 동물이나 곡물을 드리는 것이 상례이나 긴급할 때에는 그들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기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이따금식 이유 없는 폭행을 자행한다고 믿었다. 지진을 일으켜서 도성을 파괴하고 홍수를 퍼부어서 사람들을 수장해 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약자로서 힘의 횡포에 밀려서 고향땅을 떠나야 하는 아브람의 심중에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심정이 더욱 간절해지는 동시에 힘의 횡포에 대한 반발심이 강하게 성장하게 됐음에 틀림이 없다. 이와 같은 아브람은 틀림없이 생명을 창조하시고 이를 생성시키는 ‘안’을 그리면서 그에게 살 길을 열어달라고 기원했다고 봄은 억지가 아니다. 그 아브람에게 ‘안’은 나타나서 비옥한 땅과 창성하는 후손 공동체를 약속하신다. 땅과 서로 위하고 아끼는 공동체란 생명을 육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기본 조건이다. 약자인 아브람은 이 기본 조건이 다 박탈이 된 것이다. 따라서 아브람은 ‘안’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생명의 창조주는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안’은 이 두 가지 기본 조건을 약속하시는 동시에 앞으로 그의 자손을 통해서 모든 종족들이 힘의 쟁탈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축복을 하면서 사는 평화공동체를 이룩할 것이라는 그의 경륜을 말씀하신다. 약자인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귀가 번쩍 뜨이는 약속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강자들이 힘의 쟁탈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축복하면서 살게 되는 평화의 세계가 온다면야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굳건히 붙잡고 생명을 아끼는 평화의 삶을 산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이란 철저히 평화애호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고향의 퇴화된 하느님 이해에도 도전을 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절하시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이에 항거한다. 도시를 멸절하는 신들의 횡포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악한 자들을 징계하시고 약자들을 살리시는 정의의 하느님으로 승화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다가 그의 신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 육성하시는 분이지 이를 제물로 바치라는 포악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그는 퇴화된 고향의 신관에서 해방이 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은 그의 당대에는 성사되지 않는다.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녀를 묻을 땅도 없었다. 아들이란 이삭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신의 약속을 철저히 믿고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그 약속 없이는 삶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와서 살면서 그의 신을 ‘엘’이라고 부른다. 엘 신 역시 가나안인들의 만신전의 수좌에 앉아 계신 신으로 생명을 창조하시고 이를 생성시키는 신이셨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그곳 주민들이 부르는 대로 그의 신을 엘이라고 부른다. 그는 신을 엘 샤따이라고도 부른다. 샤따이란 말은 수멜의 샤뚜(산)에서 나온 말이다. 혹은 엘로힘이라고 복수를 쓰기도 한다. 여럿이면서도 사실은 한 신이라는 존칭어이다. 다 수멜문화의 흔적이다. 이름은 다르나 그 내포하는 의미가 같기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아브라함의 정체란 철저히 ‘안 신’과의 관계에서 설정이 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생명이요 그의 삶의 목표란 안 신과 더불어 생명을 살리는 평화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 땅을 골고루 소유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위하고 아끼는 공동체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들 사이에 힘의 경쟁이 종식이 되고 서로 축복하는 관계가 이룩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미래를 위해서 ‘안신’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은 철저히 평화의 원칙으로 살았고 퇴화된 그의 종족의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로 섰다. 그는 그가 더불어 계약을 맺은 ‘안’이라고 하는 신의 이름에 고착하지도 않는다. 이름이 어떻든지 그 신이 생명을 생성시키는 신이라면 그가 섬기던 신과 같은 신이라고 보아 그가 가나안 땅에 갔을 때는 그곳 주민들과 같이 그의 신을 엘이라고 불렀다. 아브라함은 ‘안’과의 계약을 철저히 믿고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되는 상황에서도 그 믿음을 고수했다.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의 정체성이란 1)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 2) 땅을 골고루 나누어 가질 뿐만 아니라 민족들까지도 서로 축복하면서 사는 인류사회를 이룩하는 일 3) 이를 위해서는 생명을 창출하시고 이를 계속 살리시는 하느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으면서 끝까지 평화적으로 살 것, 4)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록 이름이 다르더라도 생명을 창출하시고 이를 계속 생성시키시는 신이신 경우 같은 하느님으로 알아 더불어 예배드리고 그 하느님의 뜻을 이룩하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3. 바로의 도전과 아브라함의 후예들


“과부, 고아, 나그네들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시는 하느님을 몸과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 사랑하듯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노예가 된 아브라함의 후예를 해방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자신을 야훼라고 계시하신다. 출애굽기 6장 2-3절에 하느님은 모세에게 “나는 야훼다.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전능하신 신(El Shaddai)으로 나를 드러낸 일은 있지만 야훼란 이름으로 나를 알린 일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안’이 ‘엘’이 되더니 이젠 ‘야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야훼란 이름을 요즘 구약학자들은 사역격 삼인칭으로 해석해서 나는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자”라고 번역한다. 다시 말해서 노예를 해방시키시고 그가 원하는 평등공동체를 이룩하시는 해방의 신, 역사 창조의 신이라는 말이 된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안’의 성품에 이와 같은 요소가 벌써부터 있은 것이다.
그 후 이 야훼를 섬기는 출애굽 공동체는 가나안 땅을 주관하는 도시국가들에 항거해서 싸우는 ‘엘’ 신을 섬기는 농민혁명군들과 합심해서 혁명운동을 성사시키고 왕이 없는 해방의 신만을 섬기는 평등공동체를 이룩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그들의 신을 “이스라엘의 하느님(El-Shaddai) 야훼”(수 24:2)라고 부른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신은 ‘엘-야훼’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의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신의 성품과 하시는 일이 중요하다는 아브라함의 자세가 다시 재연되는 것을 본다.


4. 악순환과 아브라함의 믿음


출애굽공동체와 가나안 땅의 농민혁명군이 합세하여 이룩한 평등공동체는 곧 큰 난관에 부닥쳤다. 주변에 있는 왕국들이 거듭 침공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철기를 가진 블레셋 족속들이 잘 훈련이 된 병사들을 이끌고 도전해 오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왕도 상비군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으로 된 무기를 가지고 항거하려니 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결과를 가져온 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중대한 책임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이 평등공동체를 이룩하는 데 무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들에게 도전을 받은 주변 왕들은 다시 무력으로 항거해오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저들은 아브라함이 꿈꾼 새 내일 창출에 전력을 다 했으나 그 방법이 민족들로 하여금 서로 축복을 하면서 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저들은 진퇴 양난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달려드는 적에게 제대로 항거하려면 저들도 상비병을 거느리는 임금제도를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정신에 위배된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적인 해결방도를 구하자고 하니 이제 때가 늦은 것이다. 이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생각해낸 것이 사무엘의 왕과 예언자를 병립시키는 제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를 선택해서 기름 부어 왕으로 삼되 그는 주로 외적을 막는 일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계약정신에 철저히 선 예언자를 세워 그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다윗 왕에서부터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다윗은 본래 가나안 농민혁명군 출신으로 출애굽과 시내 산 계약을 몸으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는 힘과 왕권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의 주변에 있은 예언자 나단도 예루살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자로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탈취했을 때 이를 꾸중하기는 했으나 그 벌로 애매한 아기만 죽게 하고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는 그냥 인정해 줄 뿐만 아니라 밧세바와 그에게서 난 솔로몬 편을 들어서 이스라엘 전통에는 있지도 않은 세습제도까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사실 이 세습제도야말로 하느님의 뜻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궁중에서 태어나서 자란 세자가 어떻게 고난받는 민중들의 서러움을 알 수 가 있겠는가. 민중의 서러움을 알지 못하는 자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저들의 삶이란 일신의 영화의 향락에 심취해서 가진 권세를 오용하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다윗보다 솔로몬이 더 타락하고 솔로몬보다 르호보암이 더 권력에 심취해서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갈라져 나온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의 영향력이 왕들에게 좀더 강력하게 미쳤으나 그만큼 왕조들이 기를 펴고 자랄 수가 없었다. 본래 왕들이 하려는 것이란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들인데 예언자들이 계속 이에 관여하니 왕조가 강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북왕조가 먼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망하고 만 것이다.
남왕국 유다는 견고한 다윗 왕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왕권이 비교적으로 견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방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이스라엘이 막아 주었기 때문에 왕권이 주전 586년까지 지탱할 수가 있었다. 왕권의 배신과 타락은 북쪽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말로는 야훼를 섬긴다고 하면서 하는 짓이란 이방 나라의 왕들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은 역겨운 짓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의 말들이란 어떤 것이었나? 저들의 결론은 꼭 같은 “망한다!”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 덮친다는 것이다. 엘리아에게서부터 예레미야, 에스겔에까지 꼭 같았다. 이사야의 경우 부름받는 순간부터 할 일이란 백성들의 눈을 더 어둡게 하고 귀를 더 멀게 하고 마음을 더 굳게 해서 빨리 망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권력제도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예언자들의 마음에 권력의 횡포에 반발하면서 평화의 세계를 찾은 아브라함의 얼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하느님에게 대한 믿음이란 좌절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성실하셔서 그의 뜻을 기어이 이룩하시고야 말 것이라고 저들은 확신했다. 반석과도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성취될 것이냐 하는 데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었다. 다윗을 높이 추앙하는 예루살렘 전통에서는 다윗의 뿌리에서 정의로운 통치자가 나타나서 야훼의 뜻을 이룩하는 선한 정치를 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이 높이 떠받들리게 될 것이요, 만방들이 그 밑에 와서 야훼의 말씀을 받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이 중심이 될 것이요. 구원은 정의로운 왕을 통해서 위에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전통과 호흡하는 예언자들이 내다보는 꿈은 이와는 다르다. 저들은 백성들이 숱한 고생을 한 뒤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함을 받아 돌 같은 마음이 도려내지고 살 같은 마음이 주어질 때 하느님은 저들의 마음에 새 계약을 새겨 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저들은 하느님의 뜻을 스스로 깨달아 그대로 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구원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한 민중에게서부터 솟아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바벨론에 잡혀간 무리들 중에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고생을 한 무리들 사이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들은 의를 위해서 고생을 겪는 과정을 통해서 생명을 사랑하여 아끼게 되고, 날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비결을 체득하게 되고, 이와 같은 삶을 대망하는 자들이 이방 땅 바다 끝까지 널려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렇게 공생하게 되는 것을 오히려 고마움으로 여기면서 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을 묵묵히 받는 무리들을 통해서 많은 무리들이 삶의 길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도 몸소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네 편의 고난의 종의 노래(이사 42:1-9, 49:16, 50:4-9, 52:13-53:12)에 감격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두 흐름의 깨달음 중 아브라함의 믿음은 확실히 두번째 흐름에 잇대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아브라함은 확실히 구원은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을 통해서 마음이 새로워진 무리들을 통해서 온다고 봤다. 이스라엘을 절정으로 하는 제국주의적인 방법으로 구원이 만방에 전해지는 것이란 다윗왕조의 얼을 이어받은 사고요 생명을 아껴서 서로 통하고 이해하는 기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원이 만방에 퍼진다는 것은 서로 이해하면서 평화롭게 살려고 한 아브라함의 전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후 유대인들의 구체적인 삶에서도 이 두 흐름이 명확히 드러 난다. 예루살렘 수복을 서둘러서 이룩하려고 한 즈룹빠벨이나 일시 독립을 전취해봤던 하스몬 왕가의 행태가 전자를 대표하는 흐름이다. 예수 당시 열혈당은 물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다윗의 후예에서 메시아가 나온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중심으로 생명운동을 일으킨 갈릴래아의 무리들의 삶의 자세는 확실히 후자에 속한다. 저들의 얼은 확실히 출애굽공동체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에게 그 뿌리를 두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5. 예수와 아브라함


이제 아브라함의 얼이 어떻게 예수 중심의 생명문화공동체에서 이룩되었느냐를 보기로 하자.
1)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기존의 가치란 생명이었다. 그는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서서 그가 속했던 수멜문화, 그리고 그 신관까지도 비판했던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있어서 생명이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인류로 하여금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이 얻게 하는 것을 그 삶의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그는 착한 목자처럼 잃어버린 한 마리 양까지도 찾아가셨다.
2) 아브라함은 땅의 공유와 서로 위하고 섬기고 아끼는 관계에서 생명이 살아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삶의 정신이었다. 그는 삶을 갈구하는 자들에게 물질은 물론 자기 자신을 다 나누어 주셨다. 그가 가르치신 기도문에도 “일용할 양식”과 “서로 용서하는 공동체”를 하느님 나라라고 명확히 밝히셨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그가 가는 곳마다 생명이 차 넘치는 생명공동체가 탄생했다.
3) 아브라함은 종족을 넘어서서 생명의 창조주를 믿으면서 생명 살리기를 갈망하는 자들은 다 한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받아들였다. 예수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더 간절히 대망하는 자들을 발견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오히려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하면서 그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비판하시면서 하느님은 돌들을 들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4) 아브라함은 권력자들이야말로 하느님을 조작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게 하는 반역자들이라고 보아 이에 항거하였다. 예수 역시 하느님을 반역하는 사탄의 무리들이란 예루살렘에 집결해 있는 권력자들이라고 봤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을 빙자해 가면서 자기의 탐욕만을 채우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누구보다도 비판했다.
5) 아브라함은 이 악의 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만을 믿는 평화주의자였다. 때가 이르면 하느님이 그가 택하시는 방법으로 이를 이룩하실 것을 끝까지 믿으셨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후손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고생을 한 뒤 선악을 명확하게 분별하게 되고 생명을 살리는 평등공동체를 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이룩되었다. 예수님의 경우 마찬가지다. 그는 무력으로 사탄의 왕국이 퇴치될 것이라고 보시지 않았다. 억눌린 무리들이 선악을 명확히 볼 뿐만 아니라 악을 거부하고 선을 갈구할 때 새 역사 창출이 이룩된다는 것을 믿으셨다. 그리고 억눌린 무리들이 하느님이 통치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는 것을 보시면서 그들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를 초래한다고 언명하셨다.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기어히 이룩되실 것을 믿으시면서 자신을 십자가의 처형에 던짐으로 모두로 하여금 선과 악을 명확하게 보게 하여 신천지를 창출하신 것이다.
6) 아브라함은 생명을 창조하시고 생성시키는 ‘안’을 믿는 자로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서러운 떠돌이의 삶을 살므로 하느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길을 깊이 터득하였다. 예수에게 있어서도 그러했다. 그는 농터에서 쫓겨나 떠돌이가 된 한맺힌 갈릴래아의 민중들과 더불어 살면서 아브람에게서 시작되어 가나안의 평등공동체에서 꽃폈다가 시들어진 그러면서도 고난받는 민중들 사이에서 외친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수된 생명의 하느님의 기운을 온 몸에 받은 온 인류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의 길을 개척해 주셨다. 이 평화의 복음이 지중해 연변에 확산되어 저 강대한 로마제국을 뒤엎고 온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맺는 말


수멜민족의 기원을 크레머는 저들의 인체구조나 언어의 유사성으로 봐서 우랄 알타이 족에서 본다. 우리들의 선조와 뿌리를 같이 하는 몽고 족과 통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저들이 섬긴 ‘안’은 우리 선조들이 섬긴 ‘한’과 통한다. ‘안’에서 파생이 된 대기의 신, 지신, 그리고 신을 섬기기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란 우리 선조들의 천신, 지신, 인신과 통한다. 생명을 지상의 가치로 알고 평화를 삶의 원칙으로 삼은 것도 우리들의 조상과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속에도 아브라함이 지녔던 얼이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선조들의 얼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런 관점에서 재 평가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독교 이해도 이런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민족이 인류 역사 안에서 이룩해야 하는 과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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