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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중과 예수

어떤 체제이돈지 그것이 체제인 한, 거기에는 위계질서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체제의 가치관의 반영이다. 그런 가치관이 뒷받침될 때만이 그 체제에서 각 계급의 신분이 인정된다.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세계급으로 분류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마르크스에 와서 가장 밑바닥의 계급을 '프롤레타리아'라고 하고, 그들이 주권을 잡은 혁명을 주창해서 공산주의체제를 낳게 했다. 그것은 가치관의 혁명이다. '프롤레타리아'라면 눌리고 착취당하는 가난한 계층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착취당해서 가난하다는 것에 초점을 둔 것 같다. 물질분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유물론에 입각한 그로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당연한 결과안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그가 프롤레타리아 계급 자체의 미래를 어느 정도 진지하게 생각했는지는 의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내세운 것은 혁명의욕을 자극하는 것은 될지언정 실현 가능성은 애당초 없었다. 그 까닭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선동하여 혁명을 이룩하는 계급은 프롤레타리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러시아 공산혁명의 주역은 지식인 계급이었다. 그들은 이 혁명을 성취하기 위해 무산계급의 증오심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권력이 프롤레타리아에게 넘어간 일은 없다. 경제적 재분배로 경제차원에서 눌린 계급에게 혁명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반면에 그들은 다시 소수집단의 권력독점에 이용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피압박자의 위치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됐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권력욕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온 치명적 허점이다. 권력욕이 그가 바로 비판경계한 현실, 곧 인간(프롤레타리아)을 물화(物化)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예수가 철두철미 민중의 편에 섰다는 것은 현금에 와서는 흔들릴 수 없는 정론이 되었다. 마르코는 이 민중을 나타내는 데 '오클로스'(ὄχλος)라는 단어를 골라 썼는데, 그는 의식적으로 그와 유사한 단 어인 '라오스'(λαός)나 '플레토스'(πλήθος)와는 구별하여 사용한다. '라오스'는 오늘의 '국민'에 해당되는 말로서 소속이 분명한 대중을 말하는 데 비해, '오클로스'는 소속이 없는 소외된 '무리'이다. 마르코복음에서 예수가 몰려오는 오클로스를 보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불쌍히 여겼다"(마르 6, 34)고 한 것은 오클로스에 대한 이러한 일면을 보여준다.

오클로스가 당시 지배층에 의해 경멸받고 소외되어 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데가 마르코 2장 13절 이하이다. 많은 민중이 예수에게 나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13절). 레위 집에 많은 "세리와 죄인"이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참여했다고 한 것은 민중의 성분을 밝히려는 마르코 기자의 의도적 편집이다. 저들이 어느 정도 소외당하고 있었는지는 바리사이파들의 비난인, "왜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하는가"라는 말에서 충분히 노출된다.

예수가 이르는 곳마다 그를 무조건 환영하는 것은 바로 이 이름없는 민중이었다. 또한 예수가 무조건, 아무런 비판 없이 맞아들이는 것도 바로 이 민중이었다. 바리사이파와 사제계급은 물론 '제자'들 마저도 사정없이 비판하는 장면이 많은데, 이 무리—유다 사회에서는 죄인—들을 책망하거나 비판한 장면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저들을 어떤 가치관에 의해서 평가한 일도 없다. 예수는 결코 저들에게 윤리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저들의 주권행사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저들의 '위치'를 선언한다. '민중'이 그를 "둘러앉았을 때 ", 예수의 혈연의 가족이 그를 찾았다. 그때 그는 자기를 둘러앉은 민중을 둘러보시며 "보라, 여기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다"(마르 3, 34)고 선언한다. 예수는 자신과 민중이 함께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임을 선언한 것이다. 다른 장면에서 이 민중에게 그럴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인정하는 암시도 없다. 가치가 있다면 바로 '민중'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세리와 죄인들을 지배층의 비판에 대해 옹호하면서 "나는 의안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왔다"고 할 때도 '……하기 때문에'라는 단서는 없다. 단서가 있다면 죄인, 말하자면 당대의 체제에서 소외됐다는 것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존체제에서 무가치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이유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예수의 어린이들에 대한 자세가 중요한 열쇠를 쥐여 준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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