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성이라는 것이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그중에도 재래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영웅주의가 그런 것입니다. 과거에는 역사를 한 영웅이 만들어낸다고 확신했습니다. 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할 때 실제로 싸운 것은 졸병들이오, 그들의 피를 대가로 얻은 것인데, 그 전쟁을 유발한 한 영웅이 홀로 싸워 승리한 것 같은 표현과 역사 서술을 해왔습니다. 이게 바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받는다"라는 말의 실질적 동의어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버릇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중심인물에게만 모든 관심을 쏟고 이른바 '주변'의 사람들이라든지 역사적 혹은 자연적 조건들은 아주 무시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책을 읽거나 사물을 보는 데에 있어서도 바로 그런 연유로 주변적인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버릇이 습성화되어 애당초에 그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편견이 생겨버리지요. 나는 오랫동안 예수에게만 집중하고 그가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과 여러 조건 들은 모두 예수를 부각시키는 도구 정도로 무시해왔지요. 그러나 민중을 만나고부터는 복음서를 보면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서부터는 훨씬 더 구체적이며 입체저인 예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주의말고도 어떤 책에나 이야기에서도 그 큰 줄거리에만 관심하고 그 줄거리를 형성하는 주변적인 것으로써 보이는 사실을 완전 무시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일종의 주제주의(主題主義)라고 할까요? 그래서 가끔은 바로 이 주제에서 소외된 사실에 주목함으로 한 시대의 상황이나 혹은 한 인물의 본질적 문제들의 일단을 문제로 삼아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