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들은 오랫동안 다스리는 사람의 편에서 역사를 보아왔다. 한국의 역사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려진 한국의 역사는 한국 '민'의 역사가 아니라 지배자와 졸개들의 역사였다. 어떤 이는 그 지배자들이 곧 한국민의 얼굴이 아니냐고 항변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치 않은 말이다.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한 국민의 얼굴로 뽑힌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민의 참모습을 찾으려면 눈먼 역사가들이 역적의 무리로서 다루어 매장해버린 백성(민중)들의 저항운동의 역사에 눈길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운동이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비록 제대로 개발되지 못해서 그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민'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으려고 꿈틀거린 거기에서 우리의 민의 참모습과 얼을 찾아볼 수 있겠다.
그 가운데에 세계역사에 내놓아서 크게 자랑할 만한 사건은 바로 동학의 농민봉기에서 나타난 그 뜻과 용기이다. 그들이 내세운 가치가 곧 '인내천'이었다. 사람과 하늘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커다란 선언이다. 하나는 민으로서의 자부심인데 인간이 휘두르는 어떤 권력에도 더는 굴하지 않겠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다스리는 자들은 민을 신을 섬기듯이 하라는 선언인 것이다. 그들이 인심은 바로 천심이라는 주장을 함께 한 것은 민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거스르면 마침내 천을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대로 하면 바로 천을 섬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니 이만큼 분명한 민권선언을 한 민은 세계 역사속에 별로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폭력을 썼기 때문에 난민이라고 깎아내리지만 그들에게 폭력을 쓰도록 한 것이 누구냐? 그들은 오히려 폭력을 증오하여 폭력을 제거함으로써 백성을 건지고 나라를 지켜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기치를 높이 들고 나섰던 게 아니냐? 아무튼 그들은 백성이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뜻을 매겨놓았다. 백성은 나라가 있기에 앞서서 존재한다.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있어야 나라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내천 정신이다. 그러므로 비록 나라를 들먹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백성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이라고 한 것은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로서 나라의 주인은 곧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다스리는 대상이 아니라 받들어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동학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뜻을 매긴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한두 해 앞선 때의 것이 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70년쯤이 지난 때의 선언이요 투쟁이었다.
우리는 흔히 '찬란한 반만년 역사'라는 구름 잡는 듯한 찬사에 젖어 있다가 막상 역사책을 읽으면 놀라 자빠져서 오히려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이 민족의 사기를 돋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제 때에 이광수 같은 사람이 우리의 민족성에 대하여 비관하고 한때는 이른바 민족개조론을 떠벌렸는데, 그런 것들은 어떤 이들의 말처럼 일본정책에 아무- 생각 없이 놀아난 자학이었다고 꾸짖을 수만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때를 지배하던 가치관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보지 못하고 이른바 강대국 민, 이를테면 일본 민의 강점을 기준으로 한 평가라는 비판을 면치는 못할 것이다.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의 침략근성을 우리가 꼭 배워야 했을 것이냐 말이다. 최남선 같은 이는 이와 반대로 한국민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31년에 쓴 「역사를 통하여서 보는 조선인」이란 글에서 "용하게 이만한 국가 역사를 유지한 것이 조선이다"라고 했는데 그렇게할 수 있었던 힘은 결코 집권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백성이라든가 민이라든가하는 것은 다스리는 사람이나 벼슬아치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충을 일컫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와 같은 계층을 한데 묶어서 좋다 나쁘다, 또는 살았다 죽었다고 할 수는 없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백성은 우민이나 오합지졸이라는 혹평도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백성이라고 불리는 민중이 그와 같은 양면성을 실제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가지의 측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나는 전체적으로 방향을 잘못 선택하여서 제 능력이 오용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방향은 옳으나 의식화되지 못했거나 끈기가 모자라서 가야 할 길을 못 가고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이다.
물론 민이라고 해서 도매금으로 한데 묶어서 평가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민심을 집약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주도권층을 대표로 보고 싸잡아서 평가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므로 백성론을 민족의 차원에서 평가하여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