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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이제 우리의 현장으로 돌아와보자.

예수의 십자가사건은 그의 민중에 의해서 계속 연쇄폭발현상을 일으키면서 팔레스틴을 넘어 세계의 제국인 로마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 과정은 순교자의 피로 점철되었다. 그것은 세계를 위해 흘리는 그리스도의 피였다.

중세기 이후는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전통에 반역한 역사였다. 그것은 세계를 위한 자기희생이 아니라 교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살인의 역사였다. 이단자의 피를 쏟게 하고 십자군, 그리고 나아가서는 식민주의 세력에 앞장서서 폭력으로 수없이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교권은 교회가 그리스도 현존의 유일한 장이라고 주장했으나 교회내에서 십자가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리스도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그리스도의 현재의 장은 교회가 아니었다. 이미 자기희생을 잊어버린 한국 교회는 최대한으로 돈을 긁어모아 자기 사육을 채우는 데에만 몰두한 집단이었다. 물론 거기에 그리스도 십자가사건이 현재할 까닭이 없었다. 그곳은 이미 순교의 장일 수 없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라는 젊은 청년의 분신자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전태일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나 기성교회에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동대문시장아 그가 선 자리였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노동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투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성교회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백안시되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김상진, 송광영, 김 세진, 이재호 등 여러 학생들과 김경숙, 김종태, 박영진, 박종만 등 많은 노조원들이 계속 뒤를 이어 자신을 폭파했다.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피살이었다. 그러나 산 제물로 자신을 내바칠 의지가 앞섰다.

십자가의 사건이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린 사건이라면, 십자가사건이 자기초월의 사건아라면, 이같은 연쇄폭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기점으로 한 화산맥의 연쇄폭발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아름으로 일어났건 아니건 상관없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교회 안의 사건은 물론 아니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 인류를 위한 복음인 것은 예수의 민중들의 증언에 의해서였다.

한국의 그리스도교회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죽음의 사건들을 수용하여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의 현재화임을 증언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사건이 된다.

이러한 엄청난 사건들의 과정에 하느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은 무소부재한 하느님이 아니다. 또한 우리들이 이런 죽음의 사건들을 외면하고, '보고 또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그 현존의 그리스도를 만날 길은 없다.

십자가사건은 그 자체로 보면 약자가 강자에 의해서 짓밟힌 사건이다. 만일 부활사건이 없었더라면 그것은 그렇게 힘없이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사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의 살해와 더불어 패배의식으로 빠져들었던 예수의 민중들이 봉기했다. 봉기한 저들은 '예수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고 증언했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이겼다'고 증언했으며, '그는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경험을 우리는 지금하고 있다. 한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송광영군의 분신자살의 현장을 문익환 목사는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그것을 읽고,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듯한 부활경험을 했다. 그 한 부분을 읽겠다.

당신의 어머니는 이제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몸부림도 치지 않습니다. 고요히 어린 손자를 안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이상히여 눈만 감으면 광영이 뛰여다니는 게 여기도 저기도 보이니,
저게 다 내 아들이 아닌개비여!
뜨거운 불길이 여기저기 치솟는 것이 보이는구만!
저 아우성이 모두 광영이 아닌개비여!

오 자유! 오 자유!
저 노래는 또 뭐여! 저것도 광영이구만

어쩌면 어쩌면
그렇습니다. 광영이는 겨레입니다.
한맺힌 휴전선입니다……
민주주의의 깃발입니다.

민주주의인지 뭔지 난 무식해서 모른당께
광영이 마음이사 아시겠지요?
내 속에서 나온 내 새끼의 마음이사 알지라우.
그러면 됐습니다. 광영이 마음이 바로 민주주의랍니다.
내 치마자락에 매달려 펄럭이는 광영이 마음이
민주주의라면, 민주주의 만세,
광영아, 내 아들 광영아!

세상이 죽은 내 아들 광영이를 왜 이리도
무서워한당가?
광영이는 이제 말도못하는데 말이요.

제 몸에 불을 지르고 인제는 뛰지도 못하는데
어찌자고 이리들 지랄이요.
왜들 겹겹이 둘러싸고 문상도 못 오게 막는당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디 그게 정말인개비여……

광영이 몸이사 인제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 맴이사 어디 식겄서.
어림 반푼없는 소리여!
이 에미 가슴 이리도 불붙는디
그 맵이 어찌 식겄서 그 맵이 식는다면
당신네들이 떠들어 쌌는 조국이고 민주주의고
다 거짓말이여, 거짓말!

내 아들이사 대학교 졸업장 못 받아보고
장개도 못 가보고 땅 속에 들어가 썩어버리겠지만
제 똥 구린 줄이라도 안다무니야 광영인 백 번이라도
제 몸에 불 싸지를 꺼구먼

이것이 부활사건이 아닌가? 이 고난의 역사에 참여한 문익환 목사는 부활을 경험한 것이다. 예수운동에 참여했던 자들만 예수의 부활을 경험했듯이! 광영이는 그 어머니에게 부활하여 그 어머니는 그렇게 죽은 한 광영이가 수백, 수천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있으며, 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라면 자기 자식을 몇백 번이라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고 절규하는 무섭고 엄숙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 하나의 예는 김세진의 경우이다.

나는 세진이를 직접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그의 부모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수많은 부활한 세진이를 통해서 그를 만났다. 세진이 어머니는 그의 돌연한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첫 깨달음은 "내 아들의 아픔, 또 이를 당해야 했던 나의 아픔이 결코 내 가족만의 고통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 아들의 죽음을 자기 품으로부터 한국 역사의 현장으로 내어놓았다. 마침내 그 어머니는 '세진이의 어머니'를 넘어선다. 그 어머니는 사람들이 세진이에 대해서 묻는 것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세진이가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외쳐야 했던 사실을 외면한 채 세진이 개인에 대한 이야기만 부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간 가끔 초청을 받아 여러 모임에 참석해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모임의 성격이 달랐고 또 나에게 주는 느낌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똑같은 것은 젊은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나는 꼭 세진이를 만나는 느낌입니다. 가두장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교회 집회에서, 특히 지난 4월 19일 수유리에 있었던 4월혁명 기념식장에서 나는 세진이를 보았고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하나하나에서 주님과 세진이를 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렇게 세진이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마침내 그 어머니는 이렇게 증언한다.

여러분! 고통받는 땅에서 고난받는 자에게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며 이 땅에는 이미 부활한 많은 작은 예수님들이 감옥에서, 길거리에서, 노동현장에서, 많은 고난받는 이들 사이에서 계십니다.

수십 년 성서연구를 하면서도 못 내리던 결론을 이 한 수난자 어머니의 아픈 마음은 일순에 다다랐다.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가슴에 지닌 그 어머니는 지난 2월 18일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종철이 어머니는 불교신자인데 그리스도교 신자인 세진이 어머니는 그를 만나자 부둥켜안고 운다. 여기 종철이와 세진이의 죽음을 부활로 체험하는 두 어머니의 만남의 장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담은 헐리고 예수와 석가가 만난다. 이 두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문득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엄마와 예수를 잉태한 엄마의 만남을 연상했다. 새로 잉태한 생명이 배에서 뛰는 순간!!

우리는 지난 7월 9일 이한열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 국민의 열기를 보았다. 그 흔한 죽음의 하나일 따름인데, 애도하는 사람들은 이한열군이 대학생이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저 둘은 이한열군만을 애도한 것이 아니다. 저들은 이한열군의 사체를 따르면서 무참하게 죽어간 광주의 수많은 영령들을 위해 울었다. 저들은 저들에게 50여 개의 육탄이 던져짐으로써 마침내 공포의 잠에서 깨어나, 지난 27년간의 군사독재 밑에서 고난을 받고 죽어간 그들을 한꺼번에 애도한 것이다.

아니! 그들의 육탄이 채찍이 되어 체념과 이기심의 굴 속에 칩거하고 있는 저들을 밖으로, 밖으로 내몬 것이다.

아니! 그것은 죽은 자를 슬퍼하는 행렬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장엄한 민족축제의 행렬이었다. 그러므로 울기만 하지는 않았다. 환호, 환호, 그것이었다. 그 대열은 바로 민족부활을 경험케 하는 대열이었다. 나는 그 대행진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동시에 만났다.

끝으로 생각되는 문제가 있다. 사건들은 개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연쇄폭발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하나라도 뒤바뀌었다면 이 민족부활의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만일 박종철군의 죽음이 앞서지 않고 이한열군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같은 대행렬이 가능했을까? 박종철군의 사건은 너무도 우발적으로 꼬리가 잡혔지만, 만일 그전에 꼬리를 잡을 수는 없었으나 고문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심증을 굳힌 110여 명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숨김없이 민족적 분노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 그 죽음들은 그 어느 하나도 뺄 수 없을 만큼 유기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인렇게 전략적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나?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분신을 지휘하지도 않았으며, 전략적으로 고문하거나 직격탄을 쏜 것은 아니다. 모두 뜻밖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뜻밖의 일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이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사건의 현재이다. 바로 지금, 한국땅에서 말이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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