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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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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허상과 실상

도대체 사람이란 언제나 무엇을 인식할 때에는 구상화(具像化)를 한다. 가령 처음 만나서 불과 몇 가지밖에 못 보고 못 느꼈는데도 그런 몇 가지 요소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상을 만든다. 독일어의 '아인빌둥'(Einbildung)은 '상상'이란 뜻으로서, 실상과는 거리가 있으나 하여간 상을 만든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첫인상이니 무어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하찮은 근거에서 세운 상을 깨는 데는 의외로 많은 시간과 다른 실증(實證)이 필요하다. 가령 목소리, 눈매, 억양, 또는 걸음걸이 따위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데 거기에다 그의 고향 또는 출신학교, 전공 정도쯤까지 더 알게 되었다면 그런 것을 종합해 그의 인간성을 판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남의 눈을 조심하게 되는데, 그 남의 눈이란 것이 의외로 피상적임을 간파하지 못하면, 외적 매너랄지 거울을 자주 마주하는 것같은 소갈머리 없는 외식(外飾)에만 매달리는 자기가 되고 만다. 그따 위의 일반 평가에 부심하다가는 제 볼 일 볼 새 없다. 그 따위로 평가하는 눈들은 멸시해버려도 된다. 오히려 그런 평가를 재빨리 다시 평가해버려서 그 와중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실리적이다. 그런 평가들은 실제로 과녁을 찾지도 못했고,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해치거나, 또 돕는다고 말해도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일류나 최고급품 따위만 찾는 버릇은 대부분 이 따위 것 때문에 걸린 병인 것이다.

이같은 병이 걸렸던 20대에 나는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던 그에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코르사르(Korsar)사건'이다. 『코르사르』는 그때 코펜하겐에서 발간되던 주간신문으로 풍자와 악의로 남을 괴롭힘으로써 한몫 보는 악덕 신문이었다. 그런데 이 신문이 어떤 계기로 키에르케고르를 비난하는 데 열을 울려 거의 매주마다 키에르케고르의 희화(戱畫)를 게재하고, 그의 저서와 사생활을 조소하고 폭로하였다. 이것에 대해서 키에르케고르는 분연히 대항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은 그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관객적(觀客的) 흥미에 들떠서 양쪽을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사회라는 것에 눈을 떴으나 곧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눈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려버렸다. 그때 쓴글이 「현대의 비판」인데, 그 논술의 초점은 바로 대중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기서 그는 무엇아나 새것 또는 싼 것을 그대로 소화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비창조적인 것을 '대중성'이라고 해부했는데, 결론은 '대중은 허위이다'라는 것이다. 저들은 키에르케고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거듭하는 호소마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이해를 기대할 수 없는 무리라는 것이다.

나는 대중성에 이러한 일면이 있음을 잘 안다. 그러므로 '대중의 눈에 비친 나'에 고민하는 정도의 '나'에 해당하는 범위에서는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본다. 하여간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 과감한 결론으로 인해 '남'이야 어떻게 보든 내 소신과 양심에 족하면 된다는 자리에나 자신을 정착시키는 것은 도움을 받은 셈이다. 그런 결단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나!'라는 우리의 속담으로 잘 표현된다고 생각된다. 그럼 정말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가? 내 양심에 떳떳하면 되는가? 다른 말로 하면 '남이야 어쩌든'이란 말을 할 수 있는가?

내 양심상 떳떳하다고 해서 양심을 최후의 교두보처럼 내세우나 그것은 상대적이다. 양심이란 '더불어 안다'라는 유럽 고어(古語)의 원뜻에서 보듯 어떤 것과 자신을 관련시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기존질서 또는 지배하는가치관을 전제로 할 때, 나는 양심상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 하는 경우, 나는 법이나 현존윤리가 인정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았으며 의무를 완수했다는 뜻이 되리라. 그러나 기존질서 자체가 바로 비인간적이고 오늘의 가치관이 집권자의 불의한 욕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확실한 경우에는 오히려 위에서 말하는 양심에 안주하는 것은 실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할 수 없는 비겁함을 정당화하는 악덕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술취한 놈이 자동차 핸들을 잡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있는 현장에서 난 저렇지 않으니 부끄러울 게 없다고 떳떳할 수 있을까? 단순히 힘없다는 이유로 인권이 유린되고 자본주의 횡포 앞에 자기가 일한 대가를 못 받고 배를 꿇고 있는 현장에서 나는 그런 기업주가 아니니 양심에 부담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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