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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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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중과 더불어

그러나 이 역사적 현실이 제시하는 지표는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이 '민족의 주체'에로 향하고 있다. 즉 그것은 이 민족사를 짊어지고 다음의 길을 갈 주인은 바로 '민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오늘의 역사의 실체는 바로 민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체적으로는 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할 민중과 더불어 그 앞에 서 있다.

우리의 근대사(어찌 근대사뿐이랴만)에는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 이 말은 우리의 근대사는 집권자들이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민족의 실체인 민중을 탄압하고 고혈을 빤 역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결국 민족도 없고 집권자만이 있어왔다. 민족의 실체인 민중에게는 오늘날에 와서도 민족적 중대문제를 결정하는 마당에는 접근할 권리가 없다. 역사적 현실은 우리의 민중만이 우리 민족 문제의 운명을 떠메어왔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저들은 주역은 고사하고 민족적 중대문제를 들을 수도 없게 소외되고 있다.

이 마당에 역사는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는 "이 역사적 시점의 우리 민중은 무능하고 힘이 없었다" 또는 "나는 이 민중을 억압했거나 착취한 일이 없다" 따위의 말로써 이 역사의 심판에서 제외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가령 악덕 기업주에게 당하는 노동자들이 참다 못하여 궐기하나힘의 한계에 부딪혀 앓고 있는 것을 보는 오늘에 사는 사람이 그 기업주의 악덕이나 규정하는 것으로 제 할 일 다했다고 하거나, 나는 그중의 어느 누구도 아니니 나는 그것과 무관하다고 빌라도처럼 자신의 깨끗함을 입증하기 위해 대야에 물을 떠다가 손이나 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미 그도 역사의 죄인이다. 그가 양심을 운운하려면 그런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 자기를 부끄러워 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주제자체가 문제다. 엄밀히 말해서 이런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이런 질문 안에는 해야 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너무 벅차서 도피하려는 속셈이 언제나 작용한다.

사르트르에게 한 청년이, 혼자 기동도 못하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레지스탕스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 청년은 이미 갈 길을 정했으나(레지스탕스에 가담하지 않는 방향으로) 어쩐지 마음이 꺼림칙해서 사르트르에게서 자신이 결정한 일의 핑계를 정당화할 단서를 찾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 그것이 도학자적 질문이 아닌 한 언제나 구체적 역사현실에서의 결단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질문하기 이전에 대체로 무엇이라 답해야 하는 것인지 자명하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주제 앞에서 거울 앞에 세운 나, 남의 눈에 비친 나, 양심 앞에 세워본나, 그리고 역사 앞에 세운 나, 그 역사를 구체화해서 우리의 문제로서 민족사를 보고 결국 오늘에 와서는 민중 앞에 세운 나로서 대답은 자명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이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되도록 자기 도피의 길을 막아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진실하면 대답은 자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뜻을 총괄해서 두 마디로 요약하고 나의 할 일을 묻는다. 그것은 '역사 앞에 민중(이웃)과 더불어'이다. '역사'라고 쓴 말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으로 나를 비추어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역사 앞에'라는 것은 역사적 현실에서 나에게 명령하는 바를 회피할 도피구는 없다는 신앙을 총체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민중은 물론 바로 '역사'의 실체다. 그러므로 민십은 나를 비추는가장 구체적인 거울일 것이다. '민중과 더불어'는 그런 뜻에서 '역사 앞에'와 '나는' 동의어일 수 있으나 '앞에서'와 '더불어'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주객의 어느 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고, 역사적 연대성과 책임성에서 '나'라는 달팽이집 같은 것에 칩거해버릴 수 없고, 오직 행동만이 있는 숙명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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