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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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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다른 편의 반응 :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렇게 해석된다면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철저히 봉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만찬회의 주체(주인)의 흔들릴 수 없는 권위를 확실히 하여야 하며, 또 그 만찬회의 성격도 분명히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의 초청자를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대신 '어떤 임금'으로 바꾸고, '만찬 '대신 '임금의 아들 결혼잔치'로 정정, 보완한다. 이로써 앞에서 했던 그런 식의 위험한 생각이 봉쇄될 수 있다.

임금은 절대군주이다. 그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반역죄이다. 그는 베푸는 위치에 있고, 부름받은 자는 권리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주어진 것을 은총으로 받는 것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없다. 그 잔치는 왕자의 결혼잔치이다. 그러니 초청된 자는 어디까지나 축하객일 따름이다. 그 축하의 주인공은 그 왕과 왕자이다. 손님들은 그저 저들의 기쁨을 더해주는 일시적 도구에 불과 하다. 이 이야기에서 초청을 거부한 자들과 이에 응한 자들은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계층적 차이가 아니다. 사회신분적 차이가 아닌 도덕 또는 윤리적으로 악한 자와 악하지 않은 자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심판은 초청에 임하는 태도에서 갈라진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명령에 불복한 자와 복종한 자의 구별이다. 그러므로 처음 초대된 자들이 단순히 초대를 거부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반역자로 굳히기 위해서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폭행하고 죽였다"라고 수정가필하여 그들의 죄를 무겁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초청에 응한 자들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묘사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불렀다고 고치자. 이와 더불어 권위에 불복하고 나아가서 반역한 자들에 대한 그 임금님의 응징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 주인의 권위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존엄한 자리임을 밝히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버렸다"라고 첨가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임금이다. 그가 초청하면 무조건 응해야 하고 응하지 않으면 응징되어야 한다. 누구 명령이라고! 반면에 초청에 응한 자들은 만찬장에 들어왔으면 그 주인의 뜻에 따라야 한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자리는 왕궁이다. 왕궁에 초대된 자는 왕궁의 기존의 예의와 질서를 지켜야하고, 부른 뜻에 부응해야 한다. 궁궐 밖의 그들과 안에 들어온 그들은 이미 그 의무에서 달라진다. 또 부를 때는 악한 자나 선한 자를 분별하지 않았으나 일단 들어오면 사정이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그 임금이 만찬회에 또 한 번 등장해야 한다. 끝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임금이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2, 1~13)라고 종들에게 분부했다.

이로써 이야기는 끝났다. 왕의 권위가 튼튼히 섰음이 시위되었고, 그 왕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질서이며, 그 밖의 인간은 모두 그를 위해 있고 필요하면 징집되고 동원되며, 일이 끝나면 내몰리는, 달면 먹고 쓰면 뱉는 소외자로 있게 된다. 기존체제는 영구불변이어야 한다는 '진리'가 재확인된 셈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두 편의 반응 중에 어느 편이 옳은가? 시비를 가리기 전에 이야기 자체를 따져보자. 그리고 시비해보자.

먼저 후자의 경우를 좀더 따져보자. 후자의 경우에 먼저 지적할 것은 이 이야기의 맥락이 이야기 바깥의 요건에 의해 거듭 잘림으로써 죽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민중언어라고 하는데, 민중언어가 원초적인 것일수록 어떤 상층구조를 형성한 가치관에 매이지 않는다. 삶에서 나온 것이면 그런 것일수록 물 흐르듯이 숨쉬듯이 단조로우나 순리롭다. 그런데 후자 식으로 풀이한다면 오히려 이 이야기의 궤도에 거듭 제동을 가하는 꼴이고, 결국은 이 이야기 자체를 토막내어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본래 의미와는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만다.

임금이 그의 아들의 결혼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을 초청했다면 그것은 경축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한껏 기쁨과 즐거운 일로 일관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중간에 계속 끼여들고 또 덧붙여짐으로 이야기를 망치고 있다. 그러므로 내용도 함께 망친다. 초청받은 자들이 그에 응하지 못하면 미안하다는 말은 못할망정 아주 묵살하고 게다가 그 뜻을 전하는 이까지 학살하다니! 도무지 이야기가 안되지 않나?

이런 터무니없는 반응에 대해 임금 또한 '터무니없음'으로 상응할 수밖에 없다. 임금의 권위를 묵살한 데 그치지 않고 그 뜻의 전달자들을 학살로 응했으니, 임금의 권위를 살리려면 그보다 더 심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종들을 죽인 자들을 죽임으로 응징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군대를 풀어 그 동리를 다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것도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실은 이것이 역사에서는 다반사지만) 왜 죄 없는 동리 사람들의 재산까지 불질러야 하나? 그래 그게 민(民)을 위한 임금인가, 아니면 칼 차고 남의 집 빼앗고 주인 노릇하는 강도인가! 이 무슨 불상사인가! 이야기가 틀리지 않은가! 일반 만찬회를 왕자의 결혼잔치로 바꾼 것이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를 먹칠한 것이 아닌가? 아니, 그 경사스러운 날 피를 흘리게 하고,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풀어 살육하고, 양민의 동리에 불을 질렀으니 그의 십기가 편할 수 있는가? 또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떻게 축하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임금을 높이려다 오히려 임금을 망신만 시키는 결과를 빚어내지 않았나?

이야기가 틀렸어! 그것에 한술 더 떠서 임금이 느닷없이 나타나 가객들을 둘러보고 한 초청객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억지를 쓰면서 추방하라고 불호령을 내리되, 그냥 쫓으라는 것이 아니라 "손발을 묶어 어두운 바깥에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가! 내던져진 그의 울분이 가득한 원성이 그 잔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장가가는 신랑이나 신부 그리고 그 집안 사람들이 악몽없이 그 밤을 넘길 수 있을까? 도대체 이것은 경우가 없어도 유만부동이 아닌가! 그러고도 임금인가! 이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 양민을 도살하고 그 울분을 연쇄돌발시키는 산적의 두목이 아닌가!

미리 초청된 것도 아닌 사람들을 마구 불러들였는데 연회장에 들어선 임금이 느닷없이 도대체 예복은 또 무슨 예복인가? 저들이 예복을 갖춰 입을 겨를이 있었겠는가? 한 사람만 예복을 안 입어? 급작스레 초청된 모두가 같은 상태였을 텐데, 도대체 이야기가 틀리지 않나? 도대체 그 자리가 초청을 거부해도 죽이고 받아들여도 죽일 수 있는 왕권 시위의 자리인가? 참새가 '짹'한다고 해도 죽이고, '짹' 안 해도 죽인다는 왕권 시위를 이 이야기의 주제로 할 작정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상황설정이 틀렸어. 왜 하필 결혼잔치야! 차라리 재판소라고 하지!

이 이야기는 하느님 나라 이야기이다. 이렇게 무리하게 변조하는 후자도 이것을 하느님 나라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풀이해도 정말 하느님 나라 이야기일 수 있는가? 하느님 나라는 강제 수용소 같은 곳인가? 왕의 권위를 시위하고 그 밑에서 충성만이 아니라 어떤 횡포에도 복종해야 하는 현장이 하느님 나라인가? 이야기가 틀리지 않나? 그러면 왜 이 이야기의 맥을 이렇게 절단해야 하나? 무엇이 그렇게 하나?

'텃 세'라는 것이 있다. 어떤 집단이든 연륜을 쌓게 되면 텃세를 부린다. 한 가족에서도 가부장은 물론이고 밖에서 들어온 며느리까지도 들어온 연륜의 길이가 바로 텃세의 높이가 된다. 군대사회는 그것을 표시하여 계급으로 나타내고 복종을 지상의 '예복'으로 한다. 음 지에서 사는 깡패들도 그 안에 엄연한 규율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으며, 그것도 연륜과 힘에 의한 업적과 직결되어 있다. 심지어 감옥에서도 감방마다 위계질서가 있고, 불문율의 권리와 의무규정아 있다. 그러므로 신입죄수의 시집살이는 대단하여 자는 자리에서 밥그릇 받는 순서에까지 요구되는 '예복'이 있다. 그런데 '예복'은 예의없이 기득권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다스리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푸에블로호가 파선되었다. 그런데 구조정의 수용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재빠른 사람들은 먼저 구조선에 올랐다. 잠깐 사이에 구조선은 만원이 됐다. 그런데 이미 배에 오른 사람들은 그 구조선이 위험 수위에 오름에 따라 기득권의 수호권을 재빨리 발동한다. 헤엄쳐 구 조선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도로 바다에 처넣기 위해 그 기득권자들은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리고 손만 닿으면 떠밀어버리거나 뱃가에 닿는 손들을 구듯발로 밟아버렸다. 그러나 타려는 자들이 점점 결사 적이 되어서 좀처럼 떼어버릴 수 없게 되자 몸에 지닌 칼로 뱃가를 잡은 손가락을 마구 자르기 시작하여 피바다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자에게도 변(辯)이 있다. 즉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침몰해서 다 죽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이 사건의 생존자의 목격담을 둘은 앙드레 지드는 백인인 자신이 바로 그 구조선에 먼저 탄 사람이라는 자책에서 한동안 공산당에 가담했으나 거기서도 똑같은 기득권자들의 횡포를 목격하고 실망하여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그렇지 않은가?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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