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33돌을 맞으면서 언론계가 가치관문제를 들먹거린다. 기술사회로 돌입하면서 낡은 가치관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금에는 가치관 자체가 묵살되어가는 상태이다.
가치관이 성립되려면 먼저 '의미'를 물어야 살 수 있는 자세가 서야 한다. "왜 사느냐?" 하는 따위의 질문이 바로 가치추구의 고민인데, 이전에는 옳은 대답을 못 찾아 목숨을 끊는 젊은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때는 가치관이 우선의 과제가 된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은 우선 조소의 대상이다. "왜 살긴? 사는 거지 뭐." 이쯤 된 풍자이고 보면 가치관 운운하는 것도 그런 조소의 대상이 되는 수밖에 없다.
과거의 가치관은 피라밋형으로 형성됐다. 그 꼭대기에 어떤 '절대적인 것'이 자리한다. '절대적'이란 이미 물음의 대상이 아니다. 철학에서는 가령 제일원리, 최고선, 영원의 법칙 따위의 중성적(中性的)인 개념을 '절대'라고 내세운다. 그것은 원래 규정할 수 없는 것이나, 바로 그러한 추상성 때문에 그런 '절대'라는 그늘 밑에서 당대의 지배층이 자기 기득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가치체계를 '절대'의 이름으로 조작할 수도 있었다.
종교도 그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차이가 있다면 그 절대의 자리에 중성적인 것이 아니라 품격적 실재(品格的 實在)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품격적'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인간과 묻고 대답할 수 있는 대상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주관에 빠질 수 있으며 그 신의 이름은 권자(權者)에 의해 도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는 각기 경전이 있으므로 송두리째 사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매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경전의 해석권을 빼앗겨버리는 경우이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는 일찍 경전을 확정했기에 빨리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하고 낡은 세계에 대한 도전에 매진하여 마침내 그것을 거꾸러뜨리기에 이르렀다. 로마 대제국을 거꾸러뜨린 그리스도교의 사건은 들쥐가 성곽을 허물어뜨린 만큼이나 기적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권좌에 앉게 됨으로써 가부장적 권력구조화와 성서해석권 독점이 병행되어갔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는 성서와는 다른 하나의 세력집단아 되었으며, 글자 그대로 서구의 중세기를 천년 암흑시대로 만든 장본인이 되었던 것이다. 성서해석권은 법왕에게만 있고 민중에게는 그 해석에 복종할 의무만 있었다. 그러니 결국 예수 또는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니라 교조(敎條)를 믿었을 따름이다.
이런 교권에 의한 중세 암흑시대에 항거한 것이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은 성서의 대중화를 위한 성서번역권과 성서해석권을 법왕에게서 민중에게로 돌려주었다는 사실이 그 핵심이요, 그런 뜻에서 큰 사건이다. 따라서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큰 혼란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결과 성서해석의 자유가 주관적 아집으로 만연되어 그 해석에 따라 무수한 교파적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은 성서에서 모든 권위를 제거하고 과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절대의 자리는 없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어버려 피라밋적인 가치체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신의 자리가 흔들리고 그리스도론이 사분오열되는 마당에 어떤 것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어떤 권위도 우리에게 가치를 지정할 수 없으며, 어떤 명목적 개념도 우리의 가치가 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권위로 제기되든, 그노시스(gnosis, 앎)의 대상이 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통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며, 그것도 주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이며 보편성을 담보한 것이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