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데 민중은 우매하다고 하나? 그것은 무력하고 무분별하고 무사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왜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다시 보면 민심만큼 재빨리 분명한 방향에서 통일되는 것도 없다. 저들은 알알이 흩어진 모래알 같으나 뜻밖에도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가령 민요 같은 것이 순식간에 전국에 퍼지는 예가 그렇다. 옛날에 아직 매스컴이란 것이 없을 때 나랏일에 어떤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든지 어떤 불길한 암운이 비밀리에 진행될 때에도 암시적 이야기가 담간 몇 곡조의 간단한 민요가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서 길거리의 어린애들까지 일제히 불렀다. 그런데 그 민요를 누가, 어디서 퍼뜨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옛날 신문도 라디오도, 그렇다고 국민운동본부 같은 것도 없는 시대에 그 노래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처럼 재빠르게 퍼져갔으며, 지도자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모두 침묵하고 그중 누구도 갈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민중이 그 고난의 시점 속에서 그 가락만으로 어떻게 한뜻이 될 수 있었나?
저들은 어떤 지적 도구나 또는 어떤 체계적 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마치 특수한 영감을 지닌 듯이, 이 역사의 자취를 재빨리 포착하는 안테나처럼 예민하다. 그렇다면 이 예민함은 어디서 올까?
어떻게 보면 저들의 무사상, 저들의 무전제가 바로 저들을 예민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상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저들은 사상화 이전의 리얼리티를 순수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뜻에서 민심은 바로 천심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계몽시대에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일면만을 나타낸 말이다. 오히려 너무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무력하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대중은 무식하다. 그러므로 우매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무식함이 저들의 중추신경 이 건전한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둔한 것이 범을 잡는다'는 격언처럼 우둔한 저들은 합리적 계산법을 비웃는 기적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