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전승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길이고(口傳), 또 하나는 문서로 전하는 길이다. 민중의 언어는 구전적인 것이 특징이다.
구전적 언어의 특징은 이야기형식이다. 이른바 민담(民譯)이 그것이다. 민담은 논리적 전개를 하거나 개념과 개념을 점철하는 따위의 말이 아니라 삶의, 그리고 삶에서 나온 언어이다. 그것은 삶에서 생긴 일 또는 삶에서 느껴진 일을 그대로 서술하되 논리 따위의 틀에 매이지 않는다. 민담은 체험적이지 사변적이 아니다.
혹자는 이야기를 객관화하여 머리, 중심, 꼬리로 가려내기도 하지만(이른바 학자들이하는 작업이 이런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 또 전승하는 주체는 그중의 어느 부분에만 초점을 두려는 의도가 없고, 그 이야기를 전체로서 전승한다. 그것은 마치 삶 자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경우, 핵심과 준비적인 단계, 부수적인 면 따위로 가려내볼 수도 있으나 삶은 연속적인 것이기에 그렇게 끊어내거나 경중을 두어 다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이야기 자체도 그와 같이 유기적인 것으로서 통째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삶에 직결되어 있는 것일수록 원형이다. 이런 전제에서 볼 때 가장 순수한 언어는 태아의 첫 울음소리일 것이다. 이 어린것의 첫 울음소리는 원천적 자기표현이다. 그 다음에는 공기의 온도, 몸에 접촉되는 물질의 적합성, 어머니의 체온 따위의 상황과 그리고 본능이 요구하는 것의 적응도에 따라 울거나 웃게 된다. 그 발성은 상황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것으로써 경험세계의 표출을 의미한다. 이런 어린이가 돌이 될 무렵이면 한마디씩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젖만 먹는 동안은 'ㅁ' 발음의 엄마를, 이가 생겨 약간 딱딱한 것을 먹기 시작하면 'ㅂ' 발음의 아빠를 위시해서 점차 순수하게 체험한 것을 기존언어에 맞추기 시작한다. 물론 어른들이 엄마라는 아름에서 아는 내용과 아기가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아기에게는 그 느낌이 주요, 그 말은 보완적인 비중 이상일 수 없다.
어린이의 말은 단조롭다. '그리고' '그러니까' 따위의 접속사가 없다. 그런 접속사가 없을수록 그 말은 순수하다. 순수하다는 말은 삶에 직결된 표현이란 뜻이다. 외마디 소리일수록 '자유로운 표현'이다. 이 말은 그것 자체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은 '발언'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적이며, 독립적이다. '그리고'나 '그러니까' 따위가 구사되기 시작되면 벌써 '그리고' 다음의 말은 그전의 것에 매여버리며, 더욱이 '그러니까'가 사용되면 '그러니까' 이후의 말의 내용은 그전의 것에 완전히 의존해 있기 때문에 벌써 구속을 받고 있고, 그만큼 경험적 현실과는 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으로 말은 삶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삶과 거리가 생긴 언어가 기존문화를 이루어서, 어린것이 커갈수록 그를 완전 포위해버리므로 그의 말은 그의 삶에서 점점 멀 어지기에 이른다. 이래서 문화적 상황 여하가 그의 말의 성격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의 언어란 삶의 최단거리에 있는 언어를 말한다. 즉 그 이야기체의 구전적인 상태가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