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중신학은 연구실 책상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한국의 고난의 역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의 우리 역사의 슬픈 산물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정치적 고난이 닥쳤고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정권에 의해서 이 수난에 참여함으로 한국에 있는 수난 당하는 계층들과 간격없는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고난이 우리를 연대시켰다는 뜻입니다.
2. 민중신학을 추구하고 있는 우리는 민중이 무엇이냐 또는 민중이 누구냐라는 물음에 쉽게 반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까닭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려는 사이에 쉽게 하나의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는 쉽게 우리로 하여금 서구적인 논리의 도식으로 우리를 몰아넣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민중을 하나의 관조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며 내가 개입되지 않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참여하지 않은 관조적 대상을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지 그 정의는 현실적인 민중의 허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우리는 민중을 그 자체로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들의 눈 이 되고, 그들의 귀가 되며 입이 되는 역할을 우리의 과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민중의 이야기는 민중 자신에게만 또는 적어도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 내게는 독일의 신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리고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불트만이 사랑에 대해서 한 말이 떠오릅니다.
누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미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거나 아니면 그는 절대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 민중신학은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을 전제로 합니다. 하느님의 선교 신학은 우리가 이해하는 조직화된 교회의 자기 주장에 대해서 의식적인 거리를 두는 신학입니다. 하느님의 선교 신학은 하느님이 그의 선교를 오직 교회 안에서나 교회와 더불어만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또는 역사 안에서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에서의 야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대상이 되어버렸거나 라삐적 유다교회 교리에 사로잡히기 이전에 원래적인 야훼는 바로 그의 활동무대가 이 세계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느님 말씀의 신학', 특히 변증신학이 대표하는 신학과도 의식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하느님은 결코 말 또는 입으로 하는 설교를 통해서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나는 의도적으로 '말씀의 신학'에 대해서 '사건의 신학'(Theology of Event)이라고 합니다.
필립비서 1장은 이런 이해에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바울로는 거기에서 그의 경험을 통한 신념을 과시하는데, 그것은 그가 체포되었다가 투옥된 사건을 통해서 '복음이 전진한다'라는 사실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건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 민중신학 전개의 한 초석입니다.
4. '사건의 신학'은 우리에게 민중의 고난과 절규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건, 같은 현장에서 민중을 만남과 동시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5. 우리는 신학한다는 일(Theologizie rung)은 바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물음으로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결국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물음의 신학'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민중의 사건을 만남으로써 민중의 참모습과 민중의 진실된 현실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 속에서 우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마태오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심판의 비유와 또는 히브리서 13장에 서술된 내용 등이 우리의 이런 이해를 힘있게 뒷받침해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의 한 구절을 읽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이 제단 위에 놓였던 것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몸은 성문 밖에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께 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가 당한 수치를 걸머지고 영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갑시다(히브 13, 10~13).
"그러므로 우리도 그가 당한 수치를 걸머지고 영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갑시다"에서 우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소외된 자로 서, 즉 성문 밖으로 추방된 자로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로 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민중 자신을 발견합니다. 성문 밖으로 '쫓겨난다" "추방된다"라는 이 말에서 우리는 민중을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예수는 민중 속에서 현존한다고 단언합니다.
6. 이같은 민중을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그의 삶의 현장을 진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먼저 저는 우리의 민중의 질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한 개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말로 '한'(恨)이라고 합니다. '한'이란 한문으로도 씌어지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도 사용하지만 그 뜻은 우리 민중들의 상황에 의해서 고유한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구의 어떤 말로도 번역할 수 없습니다. 글쎄요, '한'이란 그 본질상 사회심리학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이 개념은 우리의 고유한 고난사에 의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역시 정확히 일치되는 말을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구약 중에 특별히 시편에는 개개인들의 또는 민족으로서의 집단의 고난을 표시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우리는 구약학자들이 이름지은 '한탄의 노래'(Klagelieder)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한탄의 노래는 '한의 노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까닭은 '한탄의 노래'라는 말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원망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만 '한'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한 합에 찬 민중은 그로 인한 고통은 가슴에 지니고 있으나 어떤 돌출구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표현도 불가능합니다. '한탄의 노래'는 원망함으로 어떤 의미에서 응어리진 가슴을 풀 수 있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인데 반하여, 한은 가슴에 뭉쳐 있는 억울한 응어리를 의미하지만 그것을 표시하지도 못한 채 그저 가슴에 잠재된 고통입니다. 비록 입은 있으나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손은 갖고 있으나 그것을 글로 쓸 수는 없습니다. 그 아픔을 의식화하여 어떤 형태로나 서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은 어떤 시각에서 보면 키에르케고르가 서술한 것처럼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 당하는 비극과 견주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역사적으로 '상놈'이라는 하류계층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역사를 통해서 부패된 왕을 중심으로 한 집권체제 밑에서 착취당하고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 계층은 긴 세월 동안 이런 대우에 젖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저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외의 다른 길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내적으로는 엄연히 그들 안에는 그것 때문에 갈등이 존재했으며, 불만이 배태하여 삶을 잠식하는 병이 되었는데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그저 시름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갔습니다. 그 고통, 그 억울함은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상놈은 언제나 아무런 희망이 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진하여 또는 강요된 상태에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모든 짐과 의무를 그들의 어깨에 짊어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역사의 담지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역할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내적인 '한'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가부장제도 아래서 아무런 발언권도 저항도 없이 끝없이 일만 계속하면서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우리를 오래 지배해 온 유교도덕은 긴 세월 동안 여자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모든 것을 감수하도록 강요해왔습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해왔어도 여자들은 어떤 억울한 요구에 대해서도 말없이 수행했던 것입니다. 여자들은 실상 가정에서 모든 어려운,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그 어깨에 다 짊어진 가정의 기둥 역할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귀신이야기에서도 나타나는 여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복수를 갈망하는 화신으로 나타납니다. 왜 그들이 그런 모양으로 나타날까? 이것은 남성들에 의해서 끝없이 당해 온 저들의 고통,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표시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있던 한을 이런 형태로 노출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비유에서 제가 밝히려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즉 민중을 말하려면 언제나 한에 찬 이런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이란 말은 우리가 비록 정의는 못하지만 이미 우리의 공통인 식의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에는 특별히 강조되어왔습니다. 특히 문학이나 민족학을 다루는 사람들이 이것을 표현하려고 애를 써왔는데, 신학자로서는 나의 동료인 서남동이 민중신학의 전개에 있어서 한의 문제를 신학계에 끌어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