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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중신학의 축

민중신학의 동기는 한마디로 말하면 수난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점유당한 동안 함석헌은 한국 역사에 대해서 중요한 책을 써냈습니다. 거기서 그는 우리가 당한 한국 역사에 있어서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 대답으로 이사야서 53장의 '수난의 종의 노래'를 내세웠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 선택됐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런 의미를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후로 그의 사고는 민중(씨알)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직접 낸 잡지를 『씨알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 잡지를 내면서 그리고 우리 역사를 해석하면서 일본의 점유하에 있는 우리 민족의 수난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정치적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마 수만 아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벌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체포되어 옥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어떤 범법 때문에 감옥에 끌려갔다고 생각지 않으며, 사실상 많은 사람은 고난자에 대한 연대의식 때문에 끌려갔습니다. 수감자들 중에서는 자기가 당하는 고난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기쁨에 차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렇게 선택된 데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공동체적 수난'이라는 분명한 사상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상의 예수의 죽임당함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제물로서의 '어린양'이라는 상상과 결부시켜 교리를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단지 종교적인 행위로, 예수의 수난을 단지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하나 이러한 사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처음 그리스도 공동체가 예수의 수난을 이사야서 53장의 수난의 종의 죽음으로 설명한 것은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수난의 종은 결코 개인이 아니라 한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십자가가 예수 개인의 수난이 아니라 직접 민중의 수난과 관계가 없을까요? 십자가상에서의 예수의 행위에 있어서처럼 '현재' 수난당하는 민중도 그러합니다. 고독함,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어떤 영웅의 죽음과는 너무도 다른 처참한 죽임, 영웅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닌 그저 맥없이 죽음에 내맡겨진 그 모습! 십자가상의 민중은 예수처럼 그렇게 수난을 당하면서도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발이 있어도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즉 우리는 민중의 고난 속에서 고난받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민중으로부터 이 시대의 죄를 도말하도록 선택받았습니다.

 

2.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에 대한 물음이 어쩔 수 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마르코복음의 수난사 전체에서 놀리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마르코복음에는 예루살렘 입성으로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혀 종교적인 색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떠한 기적도 없고 약육강식의 냉엄한 현실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 부재의 현실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유신론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떤 기적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직 침묵만이 흐를 따름입니다. 그 현장은 분노와 고발, 죽이는 자와 죽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잔인한 처형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는 절규했으나 하느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것은 이런 종교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그처럼 비종교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전승자는 하느님의 실재를 부정하려고 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승자는 이 같은 서술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을까?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에서는 매일같이 닥쳐오는 수난 때문에 수 없이 기도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감옥에 갔고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과 더불어 고난을 같이하면서 마치 거지와 같이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들은 쉬지 않고 하느님에게 기도해왔습니다. 홀로 또는 공동적으로.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일요일마다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른바 성령파 교회들은 주로 이기적인 기도를 하는데도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하느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었고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폭력과 탄압만을 체험했으며, 그 결과로는 희생과 주검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즉 신 부재 현실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정말 우리를 위해 죽은 것일까? 하느님은 단지 부유한 자의 하느님이요, 행복하고 웃는 자의 하느님일 뿐, 고난받고 우는 자의 하느님은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물음을 계속하는 동안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장면이 우리에게 새로운 신호처럼 다가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예수의 수난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바로 이 사건 속에서만 하느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죽임당함에서 하느님 자신이 처형 됐습니다. 이와 꼭 같은 대답을 우리는 민중의 수난 속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이같은 수난 바깥에서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 바로 민중의 수난 속에서만 우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경험합니다.

 

3. 여러분은 정의와 불의, 악의 나라와 하느님의 나라, 폭력과 사랑의 갈등으로서의 역사적 현실에서 십자가적 사건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예수는 이런 갈등 속에서 패한 패배자가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단지 하느님이 인간의 죄를 말살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켰다거나 또는 하느님의 사랑의 결과라는 설명으로 충분합니까? 이러한 대답이 비극적인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은 당신이 십자가의 현재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문제는 아직도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습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집회에서, 평화적 시위에서 그리고 무엇 보다도 공동기도회에서 불의에 대한 싸움을 시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지배자와 억눌림을 받는 자 사이의 큰 충돌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폭력이 난무하게 됩니다. 우리도 증오와 복수심에 차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은 가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랑을 설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국 불의에 대한 체념 또는 항복으로 들리지 않을까요? 군중은 이런 경우에는 폭력으로 휘몰립니다. 이런 군중의 폭력이야말로 불의와 날로 증대되는 고난의 종식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정당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이러한 자세는 '이는 이로, 칼은 칼로'라는 악순환을 절대로 종결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십자가의 사건에서 대답을 찾았습니다. 그의 귀신 쫓는 행위(exorcism) 그리고 그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은 불의를 추방하려는 투쟁의 행위, 즉 악마 또는 원수와의 투쟁행위인 것입니다. 즉 칼이나 폭력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써 싸운 것입니다. 물론 불의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승자는 그의 죽음이 불의를 영원히 추방했다고, 그는 이 악순환을 쨌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상에서의 그의 죽음은 사랑을 완수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다음의 사실들에서 강조됩니다.

첫째로 비록 예수가 박해를 받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끝까지 이 사람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마치 하느님 자신이 그를 죽이는 것처럼 그에게만 매달렸습니다. 이 근본적인 자세는 이 악순환을 제거하는 신비한 열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의 사람들, 즉 민중들이 한때 모두 비접해지고 예수를 버렸지만, 부활의 경험을 얻음으로써 새로 살아나 그들의 주님을 위해서 마치 초인처럼 싸웠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아무것도, 죽음까지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예루살렘에 진격해서 그들의 주님을 죽인 원수들에 대항해서 싸우려는 증오와 분노의 흔적은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 위해서 새로 난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새로운 역사'로 전진하려는 목적만을 위해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첫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우리도 알아야 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해했음을 증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 1988년 독일 교육자모임에서 한 강연을 옮긴 글.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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