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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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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의 경우

마태오의 산상설교의 첫 선언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5, 3)로 되어 있다. 한편 그것과 같은 근원을 가진 루가의 '들의 설교'에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느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다"(6, 20)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둘 중에 마태오의 "마음이"는 첨가된 부분이라는 것이 정론으로 되어 있다. 이 한 구절의 첨부로써 종교윤리적 덕목이 되었다. 이처럼 마태오는 "의에 주리고"(5, 6), "의를 위하여"(5, 10) 등을 첨가해서 같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것이 의도 적임은 그의의 루가복음에는 없는 축복의 내용이 모두 "자비한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평화를 위하는 자" "애통하는 자"(종교적) 등 종교윤리적인 것임을 감안할 때 분명하며(5, 3~12), 이 축복은 이미 교회의 덕목으로 내세워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루가의 것을 원형이라고보는 것이다.

'가난한 자'란 글자 그대로 사회적인 한 계층을 말한다. 그들은 지금 굶주린 자, 지금 슬피 우는 자, 지금 미움받고 배척받고 욕먹고 억울한 누명(공정한 재판을 못 받는 자)을 쓴 자이다. 이들은 무엇을 한어떤 계층인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자 때문에"라는 한 구절을 제외하면, 왜 저들이 슬피 울며 박해와 멸시를 받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루가복음 6장 22~23절은 원래 위의 세 가지 축복과 연관이 없는 독립된 것이며, 그중에도특히 "인자 때문에"는 첨가된 부분이다.

한편 '가난한 자'란구체적으로 '지금' 굶주린 자, 지금 슬피 우는 자이다. 이것은 '가난함'이 반드시 물질적 빈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박해를 받거나 힘없는 자를 포함한다는 것을 뜻한다. 슬피 우는 것은 배가 고파서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계층이 왜 이렇게 가난한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명이 루가복음 6장 22절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본 자기 해명일 수 있다.

미움받고 배척받고 욕먹고 누명을 쓰되, 어쩔 수 없는 계층! 이것은 한마디로 그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가난한 자들을, 예수가 위하고 또 예수를 따르 던 갈릴래아의 민중에게서 본다. 그들은 이른바 '죄인들'로 낙인 찍 힌 소외자들이다. 예수는 이 '죄인'들을 그대로 영접했고, 모든 것을 무조건 개방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편에 섰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들은 바로 그런 내용의 것들이다. 한 아버지의 비유(당자의 비유, 루가 15, 11~32), 큰 잔치의 비유(루가 14, 15~24), 최후심판의 비유(마태 25, 31~46) 등을 위시해서, 그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왔다는 선언은 복음서 안에 산재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예수의 갈릴래아의 민중이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와 다른 점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이 민중은 유다교에서 말하는 '암 하 아레츠'(Ám hā´ āres)이다(Billerbeck, R. Meyer, Percy, Dupont, Goppelt). 저들은 기존 질서를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 없는 계층으로서 '가난 때문에' 소외됐고, 따라서 파계자들로서 학대를 받은 것이다.

예수는 이런 계층에게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라고 한다. 이 약속(선언)은 예수 당시의 지배층에게는 혁명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까닭은 예수의 이 약속은 율법으로 된 정부체제를 영원히 지속하리라고 믿는 바리사이적 유다 사회에 대해서 그들이 소외배제시킨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현실로서의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교에서도 이스라엘의 구별된 남은 자, 또는 에쎄네파와 같이 가난한 정결(율법의 측면에서)을 연결시킴으로써, 다가올 새 세계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라삐적 전통에서도 자신들을 '가난한 자'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가난은 그들의 경건과 결부된 개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가난한 자'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이라고 한다. 소유격을 사용한다. 이 말은 격려일 수는 있어도 위로가 될 수는 없다. 이 말은 장인이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된다는 유다 격언처럼 새 세계의 주인공이 바로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선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가 역사적 현실이라면 예수의 이 약속은 저들이 바로 역사를 짊어질 배턴을 받은 계층이라는 선언이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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