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야 어쨌든 7ᆞ4 공동성명의 3대 전제는 통일논의에서 결정적인 발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천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원칙들에 대해서 거의 예의없이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이같은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는 절대로 정권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결정한 정권들은 애당초 자신들이 이 원칙을 실천하는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증거로는 북한측이 이러한 협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 8월 14일에 발표한 남북한 연합체제안을 계속 반복하는가 하면 박 정권은 이 성명이 발표된 3일 후인 7월 7일에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반공교육의 계속 강화를 지시했다는 것 등이 두 정권 모두에게 통일의사가 전혀 없음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상 정권 차원에서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원칙도 시행될 수 없다.
오늘과 같이 정권이 국제적으로 상호의존 내지 예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외세의존 없이 뜻을 관철할 수 있으며, 무력으로 시작되고 뒷 받침된 정권에 그외의 어떤 다른 수단이 있을 것이며, 안보논리를 정권유지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삼고 있는 정권이 어떻게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3원칙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민(民)이 주도할 때만일 것이다.
국제적 강대세력에 예속되지 않은 민, 무기행사권을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려는 어떤 가능성도 생각할 수 없는 민, 사상이나 제도보다 정과 피에 얽혀 있는 민, 이 민만이 기존의 모든 담을 헐 수 있는 본질적이며 실존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작성한 장본인들은 잠깐 정권의 차원을 떠나 민의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북은 물론 이남에서 공동성명 이후에까지 일체 민이하는 통일문제 논의를 허용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 정권 차원의 제시나 협상에 허(虛)가 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통일의 의사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민족화합을 궁극적 거점으로 삼았음에도 민의 통일운동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정부의 대표가 직접 만나자는 제의가 자주 발표되는데, 거기에는 정부의 대표가 곧 민의 대표일 수 있다는 허구의 전제가 깃들여 있다. 또한 어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단체가 어떻게 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남북 정권이 제시한 모든 제안들은 한마디로 하면 민을 무시한 횡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러면 어떻게할 것인가?
우리는 이 이상 더 외세에 대한 기대는 물론 정권에 통일문제를 내맡기거나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러한 민의 운동을 저해하는 요소를 막아주는 역할 이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신념 위에서 그리스도교회는 통일운동을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