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의 십자가가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그리스도 케리그마에서 그것은 비역사화되고 하나의 종교적 상징, 달리 말하면 예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우위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의미만을 묻는 데 관심했다. 가령 구속사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사건을 고린토전서 15장 3절 이하에서처럼 하느님의 뜻의 성취라는 의미나("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의 제물로 집약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의미를 근간으로 한 바울로의 그리스도론에 젖어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교회의 권위에 의해 뒷받침되는 교리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로에게서도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 이상의 말이 엄존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바울로는 단순히 예수의 죽음을 말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십자가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십자가가 '처형되다'를 뜻한다면,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죽임 그리고 죽임을 당한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자체는 분명히 역사적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바울로는 언제, 어떻게, 누가, 어디서라는 역사적 물음에는 침묵하고 있는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교회는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내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십자가는 종교적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교회적인 이해를 그대로 반복하는 역할만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예수의 수난사건이 이른바 '사도적 복음'(apostolik Evangelium)으로 개념화되어 십자가가 교리를 판정하는 척도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론에서도 이 십자가는 하나의 교리로서 그리스도론의 중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십자가의 사건은 오늘의 고난의 현장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교회의 권좌에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십자가는 시멘트화된 것이다. 이 시멘트화된 십자가는 오늘날 우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묻고 심판하는 교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2) 그러면 마르코의 수난사는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가.먼저, 그것에도 그리스도 케리그마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수난이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표현의 전제가 된 점이다.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기도나 재판과정 그리고 십자가상에서의 최후의 절규 등은 로마나 유다 지도층이 아니라 마치 하느님이 그를 처형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분에 해당할 뿐, 결코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
불트만은 수난사가 수난예고에 근거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은 사건보다는 케리그마의 우위성을 주장하려는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첫째, 수난예고는 예수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사제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난사에는 유다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이 책임이 있는 위치에서 그를 처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엄연히 로마의 세력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당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무리들, 심지어는 제자들마저 그를 버리는 일에 가담했다.
둘째,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수난예고에는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하는 것이 대전제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수난사 그 어디에도 부활을 전제한 흔적이 없다. 그외에도 수난사는 철두철미하게 불의가 지배하는 암흑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현장이다. 그리고 암흑의 힘에 의해서 예수가 처형되는 현장에는 하느님마저도 개입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철저한 신 부재의 현실이다(「수난사에서 본 마르코의 신학」, 『신학사상』 제3집, 1973).
수난사에는 그리스도론에서 언제나 강조되는 초인적인 요소가 없다. 예수는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리적 제한을 가진 나약한 자로서 강력한 구조악에 의해 죽임을 당할 뿐이다. 마치 오늘의 힘없고 이름없는 민중의 수난과 마찬가지로.
이 수난사에는 인간의 죄 일반을 물은 흔적이 없다(최후만찬의 장면을 괄호에 넣는다면). 그러한 인간의 죄 일반의 노출이 없는 대신 예수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그를 죽이는 자들의 불의와 죄가 폭로되고 있을 따름이다.
(3) 이제 결론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이러한 수난사가 전승되었는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수난사의 근저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갈릴래아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수난사가 문서화되기까지의 과정에 신학적인 사고가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학적인 사고, 엄밀히 말해서 케리그마 신학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사건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이 먼저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수난의 과정이 그토록 비종교적이며, 그토록 인간적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름 아닌 너무도 인간적으로 고통당하는 예수의 모습이 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론을 깨부수고 있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나약한 인간 예수, 그럼으로써 권력 밑에 꼼짝없이 처형되는 십자가의 사건에 관심하고 그것을 전승했을까?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또는 '예수는 세상을 이진 구원자이다'라고 하는 교리를 옹호하려는 위치에 선 계층이라면 수난사를 이렇게 서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수난사의 원형에는 그러한 교리적인 요소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교회의 질서나 교리 또는 변증적인(apologetik) 관심 따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삶의 문제로 고뇌하는 계층들이 그 수난에 관심하고 전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수난사 전승의 모체는 예수를 따르던 자들 중에서도 교회를 이끌어나가고 그리스도교를 변명해야 할 책임을 느꼈던 지도층이 아니라 이름없고 나약한 민중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수난사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바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수난의 사건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의 동일 성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사건을으로써 자신을 울며, 예수의 사건을 일으킨 불의의 세력을 폭로함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항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승된 민중의 증언을 마르코 기자는 이미 보편화된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론과 대결 또는 조화시키는가운데서 수난사를 문서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이미 케리그마화된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금관이 벗겨집으로써 말없는 그리스도가 말하는 예수로 되었으며, 그에게 씌워졌던 시멘트의 일부가 민중에 의해 벗겨짐으로써 교리 속에 갇힌 예수가 민중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 『신학사상』 제50집(1985년)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