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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1) 이스라엘 민족은 B.C. 722년에 북부 이스라엘이, B.C. 586년에 남부유다가 외세에 의해서 망국의 비운을 맞은 이래로 하스몬왕가라는 자주적 정부를 가진 짧은 기간을 빼고는 계속적으로 외세의 강점 아래 시달려야 했다. 예수 당시는 로마제국에 강점되어 있었고 혈연상으로 반(半)유다계인 헤로데가(家)가 로마의 앞잡이로 민족의 정기마저 흐리게 하는 정책을 쓰는 기간이었으므로 뜻있는 사람 둘의 기도나 염원은 단적으로 '해방'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이해방에 대한 갈망은 수난의 역사를 거듭해 온 과거에 특히 '예언자군(群)'의 해방에 대한 절규의 전통과 그 맥락을 같이함으로써 역사를 잇는 혈맥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해방'은 일차적으로 외세에서의 해방을 뜻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에서 온 절규만이 아니었다. 저들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분노하고 절규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참 통치자는 야훼 한 분뿐이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외세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세의 통치에 굴복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통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 해방의 영원은 정치적 차원을 넘은 것이요, 그만큼 더 근원적인 것이었다.

이같이 단순한 해방의 염원이 시세에 따라 점차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 안에 어용세력이 등장함으로써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민족내의 균열이 생기는 데서 비롯되었다.

셀류커스제국의 통치, 특히 안티오쿠스 4세(일명 Epiphanes)가 10년(B.C. 175~164년) 동안 이스라엘 탄압과 동시에 야훼종교 말 살정책을 쓸 때 하시딤(Chasidim)이란 신앙의 동지들이 있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마카베오봉기 때 이들이 전적으로 이 싸움에 가담해서 외세를 쫓고 자기들의 왕조(하스몬)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마카베오 가가 이 승리에 도취해 대사제직과 통수권을 남용하고, 자기들의 권력확보를 위해서는 어떤 이방 세력과의 야합도 불사하는 데 분개해서 첫 탈예루살렘(체제)의 선봉이 되었다. 그 뒤에 나타난 에쎄네파, 세례자 요한파, 젤롯당 등도 그 계보에 속하며 이들의 염원은 궁극적으로 외세에서의 해방이었으나, 일차적인 대상으로는 바로 그 외세와 야합하여 앞잡이 노릇을 함으로 민족정신의 바탕을 더럽히고 주변계층을 착취, 혹사하는 것을 권리로 아는 외세를 등에 업은 특권층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로마보다 더 미운 것이 헤로데이고, 헤로데보다 더 미운 것이 예루살렘에 자리잡은 같은 민족의 어용세력이었다. 그러므로 에쎄네파나 젤롯당은 그 방법은 차이가 있었으나 예루살렘을 저 더러운 것들의 손에서 해방시키는 것(에쎄네파는 사제계열이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의 해방에 더 역점을 두었지만)이었다. 이중에서 바리사이파의 위치는 독특 하다. 복음서에서 이들의 행태가 예수운동과 정면대결의 상징처럼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운동의 실상을 아는 것은 예수운동을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 될 것이다.

(2) 바리사이파의 민중운동 : 바리사이파도 하시딤과 같이 민족적 위기 앞에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 결속한 동지들이다. 저들의 정신적 계보는 에쎄네파와 마찬가지로 하시딤에 두고 있다. 에쎄네파는 하시딤처럼 더러워진 세상을 떠나 광야에 나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때를 기다리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있은 데 반하여 바리사이파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민족정신을 확고히 수호하는 운동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혼비(魂碑)인 토라의 생활화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참여의 자세가 에쎄네파보다는 적극적이었고, 무모한 무력대결을 꾀한 젤롯당보다 현실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리사이파는 그런 목적에서 토라 연구를 거듭 함으로써 점차토라해석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토라학자라는 비신분적 전문가의 자격으로 그 발언권이 강해졌을 뿐 아니라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생활규율은 613개항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며 관여하는 영역은 세밀하고 포괄적이었다.

어떤 이는 이들의 운동을 민중운동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이유로 저들의 영향이 상류계층뿐 아니라 수공업자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든다. 분명히 그들이 민족정신을 생활화하고 외세에 동화되지 않는 주체성을 성숙시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 더욱이 저들의 최초의 동기가 로마에서의 해방이라는 색채가 있었던 것은 젤롯당을 유발한 지도층 중에 바리사이파에 속했거나 그 영향 밀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독(Zadok)이나 가말라의 유다가 그런 인물인 것을 요세푸스가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는 반민중적 요소가 뚜렷할 뿐 아니라 점차 그것은 구조화됐다. 우선 저들의 이름인 바리사이(Pearschim)가 아람어 Per’schajja로서 구별된다는 뜻인데, 엘리트의식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어떻게 이같은 특수계층적 의식집단이 참 민중의 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보다도 치명적인 약점은 저들이 만든 생활규율에서 노출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저들이 주동이 되어 만든 생활 규율은 최소한의 생활상의 기반을 갖춘 계층까지만 안중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규율은 병자나 그날 그날의 끼니를 걱정하는 층, 집없는 떠돌이 그리고 직업적으로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계층에게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들 수 있다. 후자는 원래 사제계층에게만 적용하 던 것을 일반화한 것이 많다. 떠돌이나 병자(그들은 집에서 버림받은 자가 많았다) 그리고 특히 더러운 직업―가령 가죽을 만드는 자, 동(銅)을 굽는 자 등―을 가진 자들은 몸에 밴 냄새 때문에 성전에 대한 제 임무들을 수행할 수 없었으며, 식사 때마다 규정된 몸 씻는 일 같은 것들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부정병(나병, 혈루병 등)으로 규정된 자들은 자동적으로 소외된다. 그리고 안식일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규정해버려 적어도 이틀분의 양식을 장만할 능력을 가졌거나 안식일에는 하던 일을 쉬어도 되는 직업을 갖지 않는 한 그날을 법대로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의 생활화는 자동적으로 소외자군을 만든 셈이 된다.

바리사이파는 처음에는 하나의 평신도의 신앙운동체로서 출발했다.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므로 하스몬왕가의 알렉산더 얀내우스(A. Jannäus, B.C. 103~76년 재위) 때는 충돌을 일으켜 6년간의 폭력 대결사태로 피바다를 이루는 상황에까지 갔다(J. Jeremias). 이때까지는 그래도 저들은 민중의 편에서 있었기에 반민중적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 얀나이가 죽을 때 그의 왕위를 계승받은 알렉산드라(Alexandra, B.C. 76~67년) 여왕에게 바리사이파와의 타협을 유언함으로써 바리사이파는 급전, 여권에 들어서서(B.C. 75년) 하나의 세력권을 구축하였다. 이후 그들은 산헤드린을 좌우하고, 저들이 만든 법 질서를 민중에게 강요함으로써 반민화되어간 것이다.

저들에 와서 이른바 '암 하 아레츠'(Ám hā´ āres)라는 개념과 '죄인'이라는 개념이 하나로 되고, 동시에 '죄인'이란 개념도 달라졌다. 그 기준은 이미 '하느님 앞에서'가 아니라 저들이 만든 체제가 됐다. 말하자면 체제내에서 그 임무를 다하고 복종하면 '의인'이고,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층은 '암 하 아레츠', 즉 '죄인'으로 전락하게 됐다. 그로부터 안식일법의 본래 뜻은 역전된 셈이다. 안식일제도는 인류역사상 회귀한 것으로서 실은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게 부여된 '복지사회'의 첫 주춧돌인데, 바리사이체제에 와서는 그 법이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큰 짐이 되고 정죄의 함정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짐을 지우면서도 저들은 종교가 지닌 낡은 관념이나 제도에서 저들을 풀려는 이른바 개혁운동을 한 것은 없으니, 결국 짐만 가중시킨 것이 되었다. 여권세력(예루살렘파)이 됨으로써 죄인을 색출하고 정죄하는 일에 몰두하고 현실주의적이 됨으로 이스라엘 정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느님의 직접통치사상이나 묵시문학파에 의해서 큰 영향을 민중에게 끼친 메시아, 그리고 종말사상 등은 교리상으로는 그 자리가 있었으나 사실상 비종말적이고 비메시아적이었다. 까닭은 저들이 기존체제(Status quo)의 수호자로 자처했으니까.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운동의 적대자로 명기된 것은 사제계층, 서기관, 헤로데당 그리고 바리사이파인데 그중 바리사이파가 뚜렷하게 표면화된다.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저들의 성격은 다양하게 노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저들이 예수가 민중과 무차별 교류하는 것을 정죄하는 장본인으로 등장하는데, 예수의 공생애의 처음부터 나타난다(마르 2, 16). 그들은 자기들이 체제중심적이며 그 체제수호가 그들의 중심임무라는 굳은 관념에 사로잡혀 인간을 볼 눈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 안식에서 극적으로- 집약된다(마르 2, 243, 2 재언급). 저들에게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질서만 보인다. 정결법논쟁(마르 7, 1~2)에서도 이같은 저들의 질서수호자 의식이 노정되는데, 결과적으로 민중의 적대자가 된 것이다. 부정한 손으로 음식 먹는 자를 '암 하 아레츠'라고 한다면(J. Jeremias) 결국 저들은 민중의 고충은 상관하지 않는 고발자가 되는 셈이다.

바리사이파는 마르코복음에서만도 예수의 적대자로서 10여회나 언급되는데, 대부분 '교리적' 문제를 놓고 시비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저들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자들"이라고 명기함으로써 저들이 예루살렘을 상징한 것을 표시한다. 그뿐 아니라 더욱 주목되는 것은 저들이 헤로데당과 야합했다는 것이 세 번이나 언급(마르 3, 68, 15; 12, 13) 되는데, 이것은 저들이 어용세력이라는 뚜렷한 표시이다. 그러한 것이 역사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면 저들이 얼마나 타락했느냐를 뜻하고, 그것이 편집자들이 의도적으로 성격화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예수운동은 그와 상반된 것이라는 간접적 암시가 된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보면 예수 민족운동의 가장 치열한 대결자는 바리사이파운동이었던 것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저들에 대한 비판이 더 노골적이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 많다. 저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자부하는 지배이념의 수호자요, 말만하고 민중을 압박하여 온갖 무거운 짐을 지우나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하지 않는 자'들이며, 위선자들로서 남에게 자기 시위나 일삼고 민중을 틀어잡고 지도권을 행사하나 실질적으로는 저들의 길을 막고 오도하는 맹인들이며,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며,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 못하는 자들이고, 언제나 참 예언자는 없애버리고 나서 비석을 세우는, 독선과 허위를 일삼는 자들임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마태 23장). 루가는 이에 더해서 저들의 죄로서 "과부의 집을 삼킨다"(루가 20, 47)고 했는 데, 이것은 저들이 반민중적이었음을 구체적으로 폭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바리사이파에 대한 공격은 반드시 바리사이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라삐 유다교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서 당시 유다교의 경직성을 노출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과의 충돌은 예수운동의 성격의 한 면을 제시하고 있다. 부언할 것은 이른바 엘리트의식을 갖고 민중의 지도층으로 자부한 저들에 대한 비판이나 언급은 거듭되나 당시의 탈예루살렘 계열인 에쎄네파나 세례자 요한파나 젤롯당의 운동에 대해서는 일체의 비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중 에쎄네파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웬일인가?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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