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의 해방운동
예수의 운동을 1차원적 세계관에 국한시켜 보아서는 안 되거니와 1차원적 인간관에서 보아서도 안 된다. 구원은 그에 있어서 통전적(統全的) 의미를 갖는 것이지, 어느 부분의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의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세계의 구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운동이 바로 이러한 동전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운동을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시야로 다 포괄할 수 없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인간현실을 결정짓는 한 부분인 물질에 기준을 두고 역사를 계급투쟁사로 보고, 어떤 계급에서 어떤 계급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인간해방이 실현된다고 보는 것은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내지 절대화하므로 통체(統體)로의 인간 현실을 왜곡하며 더욱더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 즉 복수의 악순환으로 이끌든가, 아니면 어떤 계층의 이름을 빌린 영원한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다. 그 안에 나타난 인간상은 본래의 인간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 인간개념에 의해 주조(鑄造)된 인간상이다. 예수는 그런 개념을 앞세우고 인간상을 획일화하는 이른바 의식화운동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의 해방운동은 다양하다. 구체적 역사현실에서 어떤 것에 사로잡혔느냐에 따라서 그의 해방의 형태도 다르다. 다음에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