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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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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해방이란 말은 벌써 싸워야 할 대상을 전제한다. 그 대상은 악한과 구조적 의지이다. 싸움은 증오를 동력으로 하며, 증오심은 복수심을 부채질하게 마련이다. 인류역사는 이러한 길을 걸어 왔으며 민족간의 전쟁이 당연시되었는데, 그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것이 황금률처럼 뒷받침함으로 가능했다. 이것을 이론과 실천으로 무장한 것이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는 해방운동이란 것도 바로 이러한 방법을 의식화하는 데서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 예수의 경우는 어떤가?

예수는 분명히 해방자이며 따라서, 해방을 위한 싸움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한걸음 나아가서 어느 편에 선 것은 틀림없으나, 증오나 복수심을 그 동력으로 삼은 흔적은 전혀 없다. 그보다 오히려 그런 싸움이 결과적으로 악순환의 연속임을 의식하여 "옛사람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고 했으나 나는"이라 하며 원수를 갚지 말 뿐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서 사랑하라고 했다(마태 5, 38~39). 사랑과 싸움의 관계가 이렇게 성립되나? 만일 예수의 행태에서 '투쟁'의 성격을 간과하면 니체의 말대로 그는 노예의 도덕을 설교한 것이 될 것이며, 이 철저한 사랑의 명령을 빼면 젤롯당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이 두 상극 사이에서 행동의 좌표를 찾아낸 것이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다. 모름지기 예수의 기본입장을 사변으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의 길을 찾은 경우는 간디 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의 사랑의 명령이 포물선을 그은 것이 아님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투쟁하는 그의 의지를 찾는 데 혼선이 생긴다. 예수운동의 전승을 양식사학파들처럼 분해해버리면 그 투쟁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예를 든 안식일논쟁의 경우만 해도 그것을 아포프테그마(Apophthegma, 상황언어)로 보고, 그 중심은 그 말씀 한마디에 있고, 그 상황은 그 말씀을 담은 틀에 불과하다는 결론에서 사실상 제거해버리면 가르치는 이는 드러나나 행동하는 자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편집사적 관찰이 훨씬 다이내믹한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보아야 해방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러나 다만 편집사적 방법은 사회사적 고찰을 보완할 때에 더욱 확실한 거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배고픈 자, 배고품의 문제나 병자로서 소외된 자나 그 상태가 기존체제와의 관계에서 크게 부각되겠기 때문이다. 전승사적 관찰에서 왕왕 전승양식에 비중을 크게 둠으로 그 양식이 담은 내용을 소홀히하는 경향이 있어 형식에 대한 관찰이 문학적 심미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써 내용을 경시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가령 예수의 해방의 대상으로 가난한 자, 맹인, 절름발이 그리고 포로된 자 등이 자주 비슷한 순서로 열거되는데(특히 루가 4, 187, 21~7 22b14, 1314, 21b 등), 비록 유다 문헌에 유사한 용법이 있다고 해도 단순하그것을 수사구처럼 전승했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은 경솔한 자세이다. 나열된 군상이 바로 그 사회의 비참함의 상징이요, 현실이었기 때문에 비록 인용문이라고 해도 현재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그렇게 볼 때 저들을 구속하고 있는 대상이 뚜렷해진다. 저같은 군상은 라삐 유다 사회에서는 하나같이 비인간화된 대상인 것이다. 그것은 비단 물질상태에서 뿐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기준이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해방운동은 저들을 그런 상태에 억류한 지배층과의 투쟁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예수 전승이 유다 민족의 지도층, 특히 바리사이파를 계속 적대자로 부각시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예수가 저들을 타도해야 할 원수로 치부해버리고 있지 않고(특히 루가복음에는 예수와 바리사이파의 교류가 여러 차례 보도된다), 또 언제나 민중을 해방함으로 비판을 받는 수세적 입장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Q자료(마태 23)로서 바리사이파를 공격한 데가 있으나 그 내용은 저들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것으로 바로 민중을 정죄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바리사이파를 향한 민중봉기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1차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예수의 수난사이다. 예수가 성전을 숙청한 것은 젤롯당의 정신적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투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증오의 폭발이며, 민중의 승리를 노린 행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우리가 브랜던(S. G. F. Brandon) 등이 가설로 내세운, 한 집단을 이끌고 격투했다는 사실을 접고 볼 때, 그 많은 성전지기가 있는 현장에서 홀로 그런 행태를 취했다고 하면 그것은 힘(violence)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겨누고 있는 적진 앞에 홀로 빈 주먹으로 맞서서 정의를 절규하는 사람과도 같다. 그것은 죽음으로써 이기리라는 전제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이다. 사실상C 마르코 편자는 이 행위가 예수 죽음의 결정적 근원이라고 한다(11, 18). 성전숙청의 이유로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드리는 집이라야 한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버렸다"(11, 17)고 하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어용자들의 부패의 핵심을 찌른 것이다. 저들은 사실상 성전을 절대화하고 신마저 독점하여 민중 수탈의 최대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은 '칼은 칼로'라는 순환이 불가능한 공격이다. 즉 그는 칼을 쓴 것이 아니라 정의로 맞섰으며, 적대자들은 그것에 대답할 말이 없으니 칼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십자가의 죽음의 수수께끼의 한 면은 틀리는 셈이다. 그것은 의로운 무지가 불의의 칼에 죽음으로 악을 '단'(斷)함으로써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을 종식하자는 결행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마태 26, 52)고 한 말씀과 관련하여 이해하면 억측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되리라.

수난사의 또 하나 특징은 예수를 죽일 음모는 사람들에 의해 진행 되는데, 게쎄마니의 기도나 십자가상의 절규 등이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고 하느님께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복수구의 악순환을 영원히 '단'(斷)할 수 있는 오직 한 길인 것이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증오나 보복을 극복함으로써, 불의를 영원히 매도함으로써 인간을 악순환의 역사에서 해방하려는 의지의 최후적 관철이라고 보고 싶다.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은 결국 해방투쟁의 도피가 아니라 궁극적 해방의 길을 지평(地平)을 넘은 데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이것은 악한 세력을 방치해두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지닌 힘을 영원히 빼앗자는 것이다.

예수의 추종자들의 행태는 이러한 이해를 가능케한다. 그들이 생명을 걸고 따른 이가 그렇게 억울한 최후를 당하는데, 부활이라는 체험으로 죽음을 딛고 일어난 저들이 증오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흔적은 전혀 없고, 역사에 새 장이 열린 것을 현실적으로 실감한 사람들처럼 오직 앞을 향해 매진할 뿐이었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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