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진이를 직접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부활한 세진이를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돌연한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그 어머니는 그저 한 어머니로서 비동하게 죽은 아들을 슬퍼하며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일반의 어머니들과 같이! 그러던 그 어머니가 참에서 깨듯 새로운 인식을 했는 데, 그것은 "내 아들의 아픔, 또 이를 당해내야 했던 나의 아픔이 결코 우리 가족들만의 고통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경험하는 아픔, 그아들의 죽음의 '연대성'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홀로'에서 '우리'에게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들의 죽음을 자기의 품에서 역사의 현장에 내놓은 것입니다. 세진이를 독점하는 어머니라는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어머니는 세진이의 죽음을 품에 안고 울기나하는 패배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그의 죽음의 의미를 역사화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자기가할 일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그 어머니에게는 세진이의 죽음 때문에 아파하는 자기를 위로 하는 소리 따위는 무의미해진 것입니다. 세진이의 죽음은 이미 그 어머니에게는 의미가 없고, 죽었다 살아난 세진이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살아난 세진이는 이미 어느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함께 경험해야 할 역사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어머니는 세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소리 따위 그리고 세진이를 미화하는 칭찬 따위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로서 그는 "세진이가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외쳐야 했던 바로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세진이 개인의 이야기만 부각시키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그 어머니의 시선은 세진이와 함께 죽은 재호에게로, 5월 20일에 같은 방법으로 죽은 이동수, 또 바로 그 달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죽은 여학생 박혜정의 죽음과 연결시켜 그 아들의 죽음의 연대성, 그 맥을 더듬게 됐습니다. 그러한 연대적 죽음에서 그 어머니는 현재 살아 움직이는 세진이를 경험한 것입니다. 부활한 세진이 말입니다. 그 어머니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나는 그간 가끔 초청을 받아 여러 모임에 참석하여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모임의 성격은 다르고 또 나에게 주는 느낌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 똑같은 것은 젊은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나는 꼭 세진이를 만나는 느낌입니다. 길거리의 가두장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이러한 교회의 집회에서, 특히 지난 4월 8일 수유리에 있는 4월혁명 기념식장에서 세진이를 보았고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여러분 하나하나에서 세진이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님은 우리에게 직접 부활하십니다.
마침내 그 어머니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러분, 고통받는 땅에서 고난받는 자에게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며, 이 땅에는 이미 부활한 많은 작은 예수님들이 감옥에서, 길거리에서, 노동현장에서, 또 이 자리에서 많은 고난받는 민중 사이에 계십니다.
그 어머니는 이미 자기 자식을 위해 우는 본능에 사로잡힌 엄마가 아니라, '너', 아니 '우리'를 위해 우는 이 땅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머니의 신학적인 견지입니다. 그 어머니가 도달한 인식은 수십 년 신학연구에 몰두한 사람들도 못 낸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