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자기 손에 처형될 예수를 사람들앞에 끌고나와 "보라, 이 사람을(ecce Homo)!"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불법적인 판결을 내려 이제 처형할 마당에 있는데도 아무런 저항할 능력이 없는 그를 왜 군중 앞에 내세워 "보라, 이 사람을!"이라고 합니까? 예수의 민중은 왜 빌라도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하게 했을까요? 비록 그를 죽이고 살릴 권한을 그 손에 장악했으면서도 그의 폭력 앞에 그렇게 무능한 그가 끝끝내 알 수 없는 산비에 싸인 존재라는 것을 고백했다는 의미입니까? 그는 비록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했지만 그 자신의 숙명적인 역할을 하소연하기 위해 "이 사람을 보라"고 군중에게 정당한 판단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판단을 세상이 하라고 말입니다.
사실상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자신은 죽은 것입니다. 로마의 법에서 죄명을 찾을 수 없으면서도 그를 처형한 것은 로마를 반역한 것이고, 자신을 사람으로서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이 사람을"이라는 말은 "보라, 그럴 수밖에 없는 처참한 내 꼴을"이라는 말 대신 한 것입니다. 하여간 그의 손에 죽은 예수는 민중에게 부활하여 세계를 정복한 데 대하여 역사에서 영원히 잊혀져도 좋을 조그만 나라의 일개 총독은 로마 전체의 죄를 뒤집어쓰고 불법적인 폭력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역사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진아를 내세워 천하에 "보라, 이 사람을"이라는 빌라도의 말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 세진이가 하나뿐입니까! 세계를 향하여 "이 사람을 보라" 하고 주목하게 해야 할 사건을 일으킨 열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은 쉬지 말고 "이 사람을 보라"고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죽인 세력들, 그 세력을 조종한 미국의 세력이 내가 세상 죄를 지은 장본인이라고 고백하고 그들 자신이 속죄의 절규처럼 저들을 세상 앞에 내세워 "보라, 이 사람을"이라고 할 때까지.
■ 이것은 1987년 김세진 사후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강연원고인데, 당국의 방해로 연금되어 발표하지 못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