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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사와 교회사

나는 한국 교회사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자료나 그 해석에 전문성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내가 보려고 하는 점은 그리스도교와 민족사의 관계, 다음으로민중사와의 관계, 끝으로성서의 메시지와의 관계이다. 그러나 민족사와 민중사는 필요한 경우에만 구분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총괄적으로 다룰 것이다.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우리의 근대사를 특정짓는다면 민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한 경우를 살펴보자. 홍경래란이 일어나기 전 1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역사에 기록된 민란만 다섯 차례 있었다. 이러한 민심의 소재를 안 홍경래는 몰락한 양반으로서 민중을 규합, 봉기하여 정주 무혈입성을 위시하여 여러 고을들을 점거했는데, 가담자 수는 10만여 명을 헤아린다. 저들이 패배했을 때 홍경래와 더불어 2천 명이나 한꺼번에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봉기한 사람의 수를 입증해 준다.

다음은 진주민란이다. 역시 양반 출신인 유계춘(柳桂春)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중봉기는 경상도 지방에서 단성을 위시한 15개 고을, 전라도 지방에서 함평을 위시한 9개 고을, 충청도에서 공주 등 9개 고을 그리고 함경도, 경기도, 황해도까지 휩쓸었는데, 궐기할 때마다 수천 수만 명씩 동원되었다고 하니, 봉기한 사람의 수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민중운동을 가끔 화산맥과 비교하기를 즐겨하는데, 이런 활화산의 맥은 이른바 동학농민혁명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동학농민운동! 이 운동은 전봉준이 그의 친구들인 손화중, 김개남 등과 더불어 일으켰는데 전봉준 자신의 말대로 저들은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는 몰락한 지식층이었다. 이 봉기운동은 흔히 세 단계로 나눠지는데, 그 첫 단계로 보는 1894년 음력 1월 10일의 고부민란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 때문에 우연히 일어난 사건처럼 보는 이도 있으나, 나는 이것을 터질 수밖에 없는 활화산의 시발이라고 본다.

저들은 처음에 정부의 감언이설로 자진철수했으나 그것으로 끝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다시 반란군을 일으켜 마침내 전주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때 참여한 자들이 1만 3천 명이라는 기록이 있다. 저들은 승승장구 전진하여 그 주변 고을들을 전부 접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에서 온 관군과 접전, 대파하고 전주로 귀환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자산들의 승리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점령한 지역에 성급히 안주하려 하였다. 그것은 위장술책일 뿐인 관의 제의를 받아들여 관군과 화약을 맺고 저들이 접수한 전라도 53주를 개혁하는 데 착수했던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관은 청국과 일본에 원병을 청하였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민군(民軍)은 그때에 10여만으로 악전고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의 열세로 무참히 참패하고 말았다.

저들은 누구였으며 무엇을 원했는가? 홍경래란 이래로 동학봉기의 구성원은 한결같이 농민들이었다. 당시로 말하면 농민들이 곧 민중이었다. 저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대상이었다. 농민혁명 때에 전봉준 등이 선포한 창의문(倡文)은 저들뿐만 아니라 민란을 일으킨 농민들의 이유를 포괄한 것이라고 보겠다.

민(民)은 국가의 근본이다. 근본이 쇠삭(衰削)하면 국가는 잔약(殘弱)해지는 것이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제(鄕第)를 베풀어 오직 홀로 온전할 방책만 꾀하고 헛되 이 국록을 없애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우리들은 비록 재야의 유민이나 군토(君土)를 먹고 군의(君衣)를 입고 있으니, 국가의 위망을 앉아서 볼 수는 없다. 팔로(八路)가 동심(同心)하고 억조(億兆)가 순의(拘議)하여 이제 의기(義旗)를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서로 삼는다. 금일의 광경이 비록 놀라운 일에 속하나 결코 공동(恐動)하지 마라. 각기 민업을 평안히하고 승평한 세월을 함께 축(祝)하며 성화(聖化)를 모두 누리게 되면 천만행심일까한다.

1907년 일본은 강제로 한국군을 해산하였다. 이에 항거하는 의병 봉기가 일어났다. 의병의 봉기는 단순히 군사적 저항에 그친 것이 아니라 가난에 허덕이는 민중을 자극하여 일본과 그에 뇌동하는 반역 자들을 적으로 삼는 민중봉기로 화했다. 저 유명한 활빈당(1900년)은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의적운동이었다. 저들은 13개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그 골자는 토지분배와 반봉건운동이었다. 이것은 민족적 의분이 사회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한 구체적 증거이다. 이 뒤를 이어 독립협회, 개화운동 등이 함께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첫째, 이 많은 민중, 더군다나 반란에 의해 완전히 설 땅을 잃어버렸을 민중, 자기 고향에 발 딛고 살 수 없었을 이 민중, 저들이 어디로 갔겠는가하는 것이다. 둘째, 내가 위에서 지적한 대로 민중운동은 폭발된 활화산이라고 했는데, 그 화산맥은 어디에서 끝나버렸을까?

우리는 역대의 민중봉기사에서 이른바 지도층과 현장에서 싸우는 농군들 사이에 언제나 갈등과 긴장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홍경래란이 그랬으며 진주민란도 그러하였다. 무엇보다도 농민혁명 때 그 갈등은 극에 이르렀다. 전봉준이 난을 일으켰을 때에 이른바 동학 지도부가 "도(道)로써 난(亂)을 지음은 불가(不可)한 일이다" 하고 전봉준 등 혁명군의 지도자를 국가의 역적이라 하여 이를 공격할 것을 명령한 때도 있었다. 사실상 동학 지도부는 농민혁명을 반대했으며, 후기에 시세를 탔다고 생각한 동학 지도부가 그 패배 후 홀로 일본으로 망명하여 "호사함이 마치 왕후와도 같았다"고 한다. 그후 그들은 천도교로 둔갑하여 안전지대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 던 민중은 그럴 처지에 있지 못했다. 농민군이 10만여 명이었다면 저들에 딸린 식구는 최소한 100만이 넘었을 것이다. 그밖에 그들과 연류된 자들을 계산하면 그 수를 헤아릴 길이 없다. 저들은 물론 그들의 고향땅에 그대로 머무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국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그 어디에서나 전전긍긍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민중 속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왔다.

한국의 선교부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이른바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채택했는지 모르나, 저들이 상류사회가 아니라 부녀자를 포함한 하류계층을 일차적 선교대상으로 한 것은 적중하였다. 결국 홍경래란 이래 농민봉기를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민중이 그리스도교회로 잠적했던 것이다.

그러면 저들의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그들의 피신처로 찾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회는 불안에 떨고 있는 저들을 책임진 셈이다. 둘째는, 저들이 지금까지 끝끝내 이루지 못한 소원(恨)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기대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끝없는 착취를 당하고, 정치적으로 철저히 비인간화된 저들에게 사랑과 자유, 평등을 내세운 그리스도교는 마른 숲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셋째는 민족적인 소원이다. 특히 동학란에서 무참히도 외세에 의해 목전 꿈이 무산된 경험을 가진 저들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제국주의 세력이 아닌 어쩌면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같이 보이는 미국이 신천지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 당시의 민중은 민족적 소원, 민중적 한, 생존적 불안, 이런 모든 것을 안고 교회에 몰려왔던 것이다. 그때의 교인증가 통계는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1895년에는 1만 2,052명이던 것이 1907년, 즉 12년 사이에 3만 6,508명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The Korea Review, 1906) 평양 인구의 삼분의 일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참석했다는 기록도 있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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