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1970년대 한국의 민중사건에 충격을 받은 눈으로 본 성서의 맥(脈)이다. 그러면 이것으로 민중신학의 과제는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민중사건을 체험하게 되면서 성서를 재해석하는 것 외에 적어도 다음 세 가지 물음이 제시되었다. 그것은 첫째로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서 민중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며, 둘째로 오랜 세월에 걸쳐 두터운 지층을 형성한 그리스도교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끝으로는 성서에 나타난 민중사건과 한국에서 오늘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민중운동과 민중사건을 어떤 관련에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은 두 번째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것은 순수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미약하나마 민중신학을 형성해나가는 것 자체가 전통적 신학에 대한 반제(antithesis)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민중신학적 차원에서 어떻게 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서남동 교수는 신학자로서 한국 역사를 민중사관으로 풀이했다. 이같은 풀이는 왕조사관에 대립한 민중사관에 선 역사가들의 입장에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작업과 신학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는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열쇠를 제공했다. 그것은 '성령론적―공시적 해석'(pneumatological-synchronic interpretation)이라고 일컬어지며, 이는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통시적 해석'(christological-diachronic interpretation)과 대조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론적인 해석에서는 이미 주어진 종교적 법주에 들어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성령론적 해석에서는 지금 현실의 경험과 맥락에 맞기 때문에 적합성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론적 해석에서는 나자렛 예수가 '나를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속죄한 것이지만 성령론적 해석에서는 내가 예수를 재현하는 것이고 지금 예수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두 입장은 양자택일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상호보충적으로 생각해야 되겠지만, 민중신학은 현재 성령의 역사를 주된 핵심으로 보며, 물려받은 전통은 해석의 전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김지하의 담시인 「장일담」에서 한국의 민중 전통과 그리스도교 민중 전통의 합류를 본다.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이란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를 그 신학적 기조로 깔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역사만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주관한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도 거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하느님의 역사개입은 바로 해방의 사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민중 속에서 일어난다. 이스라엘의 민중을 해방시킨 하느님은 한국의 민중도 해방시키고 있다. 모세를 민중해방의 역군으로 내세운 하느님은 또한 한국에서 전봉준을 내세웠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중해방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중해방사건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성서의 민중해방사건을 통해서 한국의 민중해방사를 볼 수 있으며, 또 그것이 민중신학이 해야 할 일이다.
여기까지는 민중신학자들 내부에서 이론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답변을 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 민중, 이 둘이 합류를 필요로 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가 아니라, 실은 한 사건 또는 하나의 현실을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하는 언어라는 것을 밝히는 일이다. 한국 민중운동사에서도 '인내천'(人乃天)이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두 실체의 합류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사건 또는 하나의 현실을 '인'과 '천'이라는 두 언어로 표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민중신학은 한국의 민중체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한국 역사의 맥에서 민중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 그것을 이해하는 과제이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과제이다.
나는 화산맥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화산 맥은 남과 북 혹은 동과 서로 뻗어 있다. 그것이 여기저기서 공시적으로 또는 통시적으로 폭발하여 활화산을 이룬다. 해방의 의지는 화산맥처럼 지구를 꿰뚫고 잠재해 있다가 그때 그때 지각을 뚫고 분출하여 거대한 활화산을 이루듯, 민중사건도 그렇게 일어난다. 거기에 동과 서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한다. 그것은 각기 독자적인 사건으로 폭발되나 같은 맥에 속한다. 여기에서 한국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를 구분하는 것이 배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