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민중운동과 그 사건을 그리스도적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언급함으로써 나의 이야기를 끝마치려 한다.
한국의 민중운동은 줄기차게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광주항쟁으로 수천의 민중이 학살되었으며, 그 이후로 수천의 민중이 투옥되었고 수십의 학생ᆞ노동자들이 분신자살을 함으로써 독재정권에 항거했다. 밀고 밀리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이는 마치 모세의 민중과 파라오의 대결을 방불케한다. 나는 여기서 최근 일어난 민중봉기사건의 계기를 마련한 박종철군의 피살사건의 성격을 그리스도론적 입장에서 풀이해보고자 한다.
박종철군은 학생으로 민주전선에 가담하여 경찰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던 그가 아무도 모르게 경찰에 납치되어 무서운 고문으로 피살되었다. 이것으로 박종철군의 저항운동은 끝난 것이다. 그의 투쟁은 너무도 맥없이 끝났다. 그는 분명히 투쟁했다. 그러나 그의 투쟁과 피살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투쟁이 피살에 이를 만큼 격렬한 것이었다면 그는 영웅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그는 영웅이 아니다. 만일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면 그것은 이제까지 흔히 있어왔던 일로서 듣는 사람을 오히려 담담하게 만들었을 수도있다.
그러나 민중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으나 입에서 입으로 그는 무서운 고문을 받아 죽었을 것이라고 전해나갔다. 그런데 그의 죽음의 현장에 불려갔던 한 의사가 그의 죽음은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증언함으로써 이 사건은 활화산이 되고 민중운동으로 번져나갔다. 분노한 민중의 함성이 정부 당국으로 하여금 연거푸 거짓말을 하게 했고, 마침내 일부 책임자들이 물러나야하는 사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로써 폭발된 활화산은 진화되는 듯했다. 그런데 가톨릭 사제단 쪽에서, '발표된 내용은 거짓'이라고 증언하자 제2의 민중폭발적인 사건으로 번졌다. 이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죽은 한 학생이 계속 민중봉기를 일으키고 있다. 바로 그는 민중봉기 속에서 부활한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박종철이라는 학생이 위대해서 홀로 일으킨 사건인가? 아니, 민중이 일으킨 사건이다. 민중은 박종철군의 죽음에서 자신들의 죽음을 보고 있고, 이들의 일어남에서 죽은 박종철군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박종철과 민중은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이다. '우리'가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하나? 박종철군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따라서 그의 사건이 교회내의 일은 아니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바로 이 사건에서 그리스도사건을 경험한다. 이 사건에 관여되지 않은 그리스도 라면 그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박종철군의 사건에서 '익명의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것이다.
예수의 사건이 원형(archetype)적인 활화산이라면 박종철군사건을 통해 오늘 민중사건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사건은 민중해방사건이며, 박종철군사건도 민중해방사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중운동에서 그리스도사건을 보고,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민중신학이다.
끝으로 성서 한 구절을 읽겠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민중을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가 당한 수치를 걸머지고 영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갑시다(히브 13,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