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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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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유럽은 작은 면적에 많은 나라들이 모여서 혈연으로나 문화로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민족성에 대한 경쟁의식이 두드러지게 심하며, 서로 배우면서도 헐뜯고 또 그것을 서로의 반성의 자료로 삼기도하는 풍토가 이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3자로서 백성의 우열 따위를 살피기에는 알맞는 곳이다.

그들은 지금 유럽 공동경제권을 형성하는 길잡이로 공동시장 협정을 맺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유럽을 하나의 연합국으로 묶어보자는 첫 실험단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전망 속에서도 서로가 자기 나름의 속셈과 평가를 바탕에 깔고 있다. 더욱이 지금 서로 힘을 겨룰 상대는 영국독일프랑스인데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민족성이 유럽을 주도할 역량이 있다고 자신에 넘쳐 있다. 영국 민족은 정치적인 포용력을 내세워 자기들에게 맏형의 자격이 있다고 자부하는가 하면 독일 민족이 그 자리에 있게 되면 큰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프랑스 민족은 자기들이야말로 유럽을 이끌어갈 기지와 지도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면서 마찬가지로 독일 민족을 경계한다. 이와는 반대로 독일 국민들은 꾸준함과 단결성에 바탕을 둔 실력으로 자기들이 너끈히 주도의 책임을 해낼 수 있다고 자부하는데, 더욱이 그 밑바닥에는 프랑스 국민에 대한 불신 또는 멸시 감정이 적지 않게 깔려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해묵은 앙숙의 사이였기 때문에 생긴 감정의 질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을 반드시 주관적인 편견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저마다 뚜렷한 특색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영국 국민은 다른 많은 민족들을 식민지로 다스릴 만한 성품을 가졌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포용력이며 나쁘게 말하면 교활함이다. 어쨌든 직선적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상대편과 맞부딪치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따내는 데에 소질이 있다. 이른바 '신사도'가 영국 국민들에게 가능한 것이다. 이에 견주어 프랑스 국민에게는 번갯불과 같은 창의력과 격동성이 있어서 만성병에서 탈출하여 역사에 새로운 고비를 곧잘 마련하는 데 소질이 있다. 그러므로 새벽 별같이 나타나 역사를 새롭게 돌려 바꾸는 천재들이 많으며 혁명의 기수 노릇을 자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끈기나 검질김이 약하다. 따라서 벌여놓은 일을 계승하여 전통을 세우는 데에 약하다. 이와는 반대로 독일의 민족성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말한다면 '우직하다'는 말이 가장 알맞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해보면 두드러지게 슬기로운 민족으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우직성은 오히려 미련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볼 때에는 여러 면에서 빼어난 민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군사적인 면에서도 그랬는데, 경제역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학문과 예술에서도 분야에 따라서는 홀로 그 역사를 꾸려온 듯한 화려한 이바지를 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면적인 비교나 특성을 늘어놓음으로써 어느 민족을 좋은 민족이다, 나쁜 민족이다 하고 평가를 할 수는 없겠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데에는 이미 윤리적인 평가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윤리라는 것은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것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반대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민 또는 백성이라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민족집단이요, 대내적으로는 민족체제에서의 주권자가 아니면 독재체제에서의 피지배자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는 잘하는 일이 주권자의 한 구성원으로서는 잘못하는 짓이 될 수도 있으며, 자기 민족의 실리를 중심으로 해서 보면 크게 칭찬받고 감탄스러울 일이 인류의 역사나 인도주의의 눈으로 볼 때는 악일 수도 있다. 민족이 약한 것은 민이 못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규정하고 있는 잣대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민족이 부강하여 제 나라를 지킬 뿐만 아니라 힘이 넘쳐서 다른 민족까지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 '민'이 잘났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이런 의미의 '잘난민'을 가졌던 민족들이 근세 역사를 휩쓴 제국주의의 주인공 구실을 했고, '못난민'을 가진 민족은 모두 식민지가 되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의롭지 못한 야욕 때문에 인류와 세계의 운명을 뒤흔드는 불장난에 뛰어 드는 짓이 해서는 안 될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집권자의 횡포에 휘말려 그것을 가로막기는커녕 아무 비판 없이 붙좇아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충성을 다한 '백성'이라고 보면 그들은 실은 못난 민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과 독일 국민을 생각하면 넉넉히 알 수 있다.

작은 섬나라인 일본이 세계의 최강대국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온 아시아를 주름잡을 때에 그 백성의 강함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르고 다만 '천황폐하'를 위하여 총알받이로 이슬같이 사라지는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알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분명히 '못난 백성'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독일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위에 고꾸라지지 않고 온 힘과 슬기를 모아 그렇게도 빠른 시일내에 강대국으로 자랐을 뿐만 아니라 온 유럽을 눈 깜짝할 사이에 쥐고 흔드는 실력을 발휘하게 되자, 이 백성의 저력에 덮어놓고놀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쓰레기같이 내버리는 순국정신과 단결력으로 뭉칠 수 있었던 이 백성은 분명히 살아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 미친 사나이의 광란 뒤에 숨은 뜻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것이 인류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지 못한 채 그 앞에 충성을 다하였고, 600만 명의 유태민족을 학살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죄악을 범하는 데에 무조건 가담했다는 점에서 보면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못난 백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강의 정도로 잘나고 못난 백성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두 차례의 큰 싸움이 벌어졌었다. 나는 처음의 경우는 유럽에서 보았고 나중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보았다. 이 전쟁의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에와 있던 이스라엘의 청년들과 아랍 여러 나라의 청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까닭이 곳곳에서 알려졌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청년들은 하던 일을 모두 팽개쳐버리고 자기 나라를 위한 싸움에 참여하려고 비행장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아랍 여러 나라의 청년 둘은 징집을 피해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와 있던 이스라엘의 한 기술자는 더없이 좋은 조건으로 고용된 일자리를 박차고 식구들을 데리고 귀국했는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두고 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그는 가볍게 "이 전쟁에는 아내도 아이들도 다 필요합니다"라고 대꾸했다. 이 두 가지의 태도는 이미 그 전쟁의 맨 끝장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 전쟁에 이겼거나 진 것으로 그 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결단의 자세에서 이미 결론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이스라엘 민족이 군사적으로 막강하다는 것이 그 민족의 특징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B.C. 1400년에서 1200년쯤까지 에집트에서 집단으로 탈출하여 가나안에 자리를 잡은 뒤로 에집트 민족이나 바빌론 민족 같은 외세의 끊임없는 침공을 받아오다가 남북조로 갈라진 상태에서 한쪽(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서 721년까지 에집트에, 나머지(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빌론에 완전히 먹혀버렸다. 그 뒤 B.C. 7, 80년 동안에 잠깐 자치권을 얻었다가 다시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 들어가서 속국으로 간신히 연명하다 그 뒤 A.D. 70년의 최후의 결전으로 완전히 망해버리고 나서 2천 년을 땅도 주권도 없이 떠돌이 백성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그들이 결코 군사적으로 강한 백성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동안에 그들은 결코 '못난 민족'으로 목숨을 버텨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록 영토와 주권 그리고 말까지 잃은 방랑의 나그네로 긴 유랑을 했으나 그들의 경전을 중심으로 하여 어느 곳, 어느 때에도 민족의식을 갈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증오의 대상이 되면서도 경제적인 실권을 휘어잡고, 나누어진 상태에서도 동족 사이의 띠를 단단히 조임으로써 마침내는 1천 년 묵은 고목에 꽃이 피는 기적처럼 이스라엘을 탄생시켰다. 오늘의 그들을 있게 한 것은 분명히 자랑해도 다함이 없을 민의 힘의 결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력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범에게 물려가도 죽지 않을 만한 정신의 힘을 기르고 저장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 견주어 그렇게 극적인 것은 아니면서도 특성을 지닌 것이 바로 스위스 나라를 지키는 민들이다. 역사적으로야 어찌 되었든지 스위스라는 작은 나라, 그것도 산악지대이고 프랑스, 독일, 이 탈리아의 세 민족으로 구성이 되어 세 나라의 말을 사용해야만하는 악조건을 지닌 나라의 민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민주주의체제의 길잡이가 되었으며 서로 다른 세 혈통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의 잇속을 차리는 강대국들의 싸움에 휩쓸릴 수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중립국을 지탱하면서 강력한 정권도 상비군도 없이 안으로 똘똘 뭉쳐서 남에게 짓밟히지 않고 선진국으로서 모자 람 없이 살아가고 있다. 스위스 국민들은 대통령이 대중식당에 와서 점심을 먹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감옥은 텅텅 비어 거의 365일을 줄곧 죄수가 없다는 표시를 한 깃발을 펄럭인다. 상비군은 없지만 국민 전체가 군인으로서의 정기적인 훈련을 해 외부의 침략에 대항할 준비를 늘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지만, 다스림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림으로써 평화와 번영 그리고 질서와 주권을 지킬 줄 아는 '잘난 백성'이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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