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경험이 있는가? 그날 그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애쓴 경험이 있는가? 밥상 위의 자기 밥그릇에 밥이 줄어드는 것을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무엇인가를 의식한 경험이 있는가? 다른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듯 서성이면서 때맞추어 밥상을 함께하지 않는 어머니, 때로는 밥상을 함께했으나 언제인지 모르게 숟가락을 내려놓고 변명 같은 뒷말을 남기며 다시 부엌으로 가는 어머니를 의식한 경험이 있는가? 그 어머니는 밥 한술이라도 덜 축내 식구들에게 그만큼 더 돌아가기를 바라고 배고픔을 선택하는 것이다.
배고픔을 경험 못한 세대는 불행한 세대이다. 그 세대는 인간의 불행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를 잃어버린 세대이다. 그 세대의 사람이 도둑질하는 사람의 심정을 어떻게 추측할 수 있으며, 너에게 밥 한술이라도 더 먹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배고품을 선택하는 사람의 깊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삶의 기초이며, 삶의 모든 것은 그로부터 출발한다. 밥은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그런데도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그것은 비천한 사람에게나 벌레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이기에—그것에서 초연할 수 있는 정신세계 같은 것 따위가 있다고 자부해보려는 계층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는 수도자들이라기보다는 유교의 영향 아래서 엘리트의식을 길러온 우리나라의 사대부 또는 양반계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밥 따위를 경시하면하는 만큼 양반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므로 바천한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을 흔적도 없이 먹어치워 바닥내버리고, 곁에 있는 사람 것까지 넘보는 데 비해 양반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그릇에 반쯤은 밥을 남겨야 양반의 체면이 서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위선이다. 이런 위선으로 저들은 쌍놈들과의 신분적 차이를 시위했으며, 저들을 멸시하는 기준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금강산도 식후경 ",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느 신분, 계급에서 나온 것일까? 사람들 앞에서 위세를 부리는 양반 자신들에게서 나은 솔직한 토로인가? 그러므로 현실주의에 항복한 것인가? 아니면 저들의 위선을 꿰뚫어보는 민중이 저들의 허상을 폭로한 것인가? 체통을 지키기 위해 수염을 석 자씩이나 기르고, 농부는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똥을 주는 일로 분주한 판에 선인이나 된 듯, 속세를 떠난 듯 금강산을 찾아다니면서, 마치 일반 대중이 먹는 것과는 다른 양식을 먹고 홉족하게 사는 체하는 그 허위를 질타한 것일까?
농민들은 쌀 한 톨을 너무도 소중히 여긴다. 그들에게 쌀 한 톨은 사변의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피와 땀으로 그리고 배고품을 참으면서 얻어낸 바로 그것이다. 이 쌀 한 톨이 그의 피와 땀과 노동, 고뇌의 결정체이다. 이 쌀 한 톨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하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을 생산하는 주체가 바로 '농민인나 자신이다'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는 진정으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쌀의 생산주체인 농부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자기가 생산한 생산물에서 무슨 까닭에서인지 늘 소외된다. 내가 생산한 이 쌀이 어디로 옮겨지는가? 그것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지주들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토지소유권이 경작소유권을 눌러버리고 그 생산품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빼앗아가는 저들이 쌀 한 톨의 귀중함을 알 까닭이 없다. 배고픔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들의 밥맛이 농부들의 밥맛과 같을 까닭이 없다. 저들에게는 노동의 희열이 없다. 내가 내 손으로 피땀 흘려 장만했다는 대견함도 없다. 있다면 남의 노동의 결과를 가로겠다는 죄책 감정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주는 비록 농부의 손에서 쌀을 빼앗았으나 쌀로부터는 소외되는 것이며, 배가 부른 까닭에 밥의 진미를 맛보고 인식하는 길이 막혀 있다.
밥을 먹고 살면서도 밥을 경시하는 배부른 자들, 밥이 모자라 언제나 배를 끓으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밥을 존중하는가난한 사람들, 이 둘 사이에는 뛰어넘으려야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 그대로의 상태에서 공통의식에 도달하거나 공동의 과제를 가질 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쌀 한 톨이 하늘과 땅만한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종교들에서도 중요한 달레마를 볼 수 있다. 이른바 고상한, 고등종교이면 종교일수록 모든 것을 탈물화(脫物化)하고 정신화한다. 정신 화의 극치를 걷는 것이 불교이다. '심'(心)! 그것은 반물적(反物的)인 상징이며, 정신의 근거이다. 부처도 결국 '심' 중에 존재하는 것이지 '물'(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원칙에서 보면 절마다 안치되어 있는 불상은 자가당착이다. 심을 반역한 현상이다. 그런데 불교는 진일보한다. 아무 설명 없이 한걸음 더 내디딘다. 불상에 제물을 바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아무리 심이라고 하지만 먹는 것을 뺀 궁극적 실체란 도저히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먹는 것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존재여야 사람과 관계있는 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물을 뺀 종교란 없다.
모든 종교는, 신도 사람처럼 오장육부를 가진 존재로서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음으로써 사람과의 관계를 가능하게할 뿐만 아니라 신이 신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가시적으로는 축나지 않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제물을 바치고, 신이 몸소 그것을 받아 먹는 의식을 정중하게 거행한다.
원시종교는 물론 유다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반성전종교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습성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과사람사이의 교류가 먹는 것을 빼고 성립될 수 없듯이, 여기에 사랑의 성만찬이 새크러먼트(sacrament, 성례전)적 성격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떡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신의 현실에 동참하고 그럼으로써 한 공동체를 이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역시 부족하다. 야훼 하느님은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의 현장에 직접 개입한다. 예수는 단지 정신 적으로 어떤 궁극적인 것을 설교할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와서 함께 먹고 마셨다. 그의 고통은 정신적인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는 육적(肉的), 물적 고통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가난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을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분리해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굶주림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하도록 훈련받아왔다.
그렇다! 배고픔을 모르는 신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밥과 유리되고 무관한 상황에서는 사람과 신의 교류는 불가능하다. 참으로 밥먹는 신이 신이다. 밥 못 먹으면 죽는 신이 참 신이다. 그런 하느님 만이 진정 굶주린 자의 하느님이고 인간의 고뇌를 아는 하느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