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칼에 비기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있으면, 한완상(韓完相)의 글들을 읽었으면 한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책 『민중과 지식인』을 다 읽고 난 소감을 종합적으로 말하면 병든 거인(巨人)을 전신수술하는 집도실에 들어갔다 나은 기분이다.
한완상의 집도로 개복(開腹)된 그 몸은 형편없는 병에 걸렸다. 어느 한 부분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고 어느 하나도 정상으로 성장한 것이 없다. 만신창이이다. 심장인 '민중'이 중심에서 밖으로 밀려나 있고, 에너지를 공급해야 할 의무를 가진 똥집이 그 자리를 차지한 채 호령하고 있다. 젊은 세대, 기성세대, 지식인, 지배층 엘리트, 억눌린 자, 가정에서부터 경제체제나 정치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렇게 뒤틀렸다.
병 든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것이 심한 병에 걸린 것은 그의 숨소리, 얼굴색, 그의 발작에서 누구나 짐작한 것이고, 또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의사란 기상천외의 마술사가 아니라 사람이 짐작한 것, 즉 상식의 지평에 선 기술자이다.
한완상의 글 역시 상식인이면 으레 알아야 할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누구나 수술을 집도 할 수 없듯이 누구나 그의 분석을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흩어진 상식의 조각들을 가느다란 실로 하나 하나 꿰듯이 차곡차곡 정리하여 분석ᆞ배열해서 '네가 보고 들어 알고 있는 정체가 바로 이것'이라고 전체를 들어 제시한다. 그의 분석에는 냉혹함이 있다. 이러한 냉혹함이 없이 수술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지식기사'가 아니다. '지식기사'라면 그저 해부만 하면 된다. 해부했다가 수술로 낫게할 가망이 없으면 도로 덮어버리는 것이 기사적(技士的)이다. 그러나 한완상은 이 몰골이 되도록 방임한 데 대해서 날카롭게 고발한다.
지식기사는 대체로 분석과 관찰에 그치고 만다. 특히 인간과 사회를 대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때도 그 관찰대상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그러기에 지식기사로부터 악과 맞싸우는 힘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사실(fact)을 말하되 진실(truth)은 증언할 생각이 없다(18면).
고발은 '대상의 아픔'을 아파하는 마음이할 수 있다. 그의 더불어의 아픔은 고발로써 나타나는, 특히 「분단상황의 지식인」이라는 글은 분단된 이 민족의 비극성을 폭로하면서 이를 구출하기 위한 애타는 마음이 읽는 이의 공감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