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像)의 모색'이다. 이 주제는 일견 단순한 듯하면서도, 그리스도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 한국 그리스도교가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한국 사회와 역사 현실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가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한국 그리스도교가 오늘의 한국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다루는 것인 만큼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자각과 주체적 현실인식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서 신학하는 방법의 혁명적 전환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해결책이 올바르게 모색될 수 있다. 오늘날 민중의 눈으로 세계와 역사를 보고, 더 나아가 성서를 보는 해석학적 관점이 형성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은 한국 역사 내지 한국의 정치ᆞ문화 전통과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동적 관계를 살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그러한 관점에서 주어진 주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오늘날 흔히 '한국적' 신학, '한국적' 그리스도교,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심성 등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으나, '한국적'이란 한정사는 쓰이는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은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학뿐 아니라 일반 인문ᆞ사회 과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인문ᆞ사회 과학과 신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적'이란 한정사가 어떤 정치ᆞ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그 다음에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본범주가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나는 그러한 기본범주를 '문화'라고 본다. 그래서 문화의 실질적 주체와 문화의 존재방식 문제를 검토하고, 한국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와 '유기적 공존'을 주체적으로 이룩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자각과 해석학적 관점에 도달해야 하는가를 검토하려고 한다. 그 다음, 한국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정치ᆞ문화 전통에 접목됨으로써 한국인의 정체(Identity)를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그 긍정적인 측면으로부터 부정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비판적으로 분석해보고, 또한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리스도교가 어떠한 특수한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러한 한국 그리스도교에 대한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반성은 근대화, 서구화, 종속화의 거센 소용돌이에 빠져 있고 여기서 파생된 모순들이 분단구조의 고착화로 인해 극대화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위치를 날카롭게 인식하게 하고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한국 그리스도교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이념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과 한국 그리스도교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이념을 밝히고, 이러한 이념적이고 실천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갱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가를 다루어보려고 한다. 그러면 먼저 '한국적'이란 한 정사가 어떤 정치ᆞ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