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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이러한 민중문화의 자기전개 과정 속에서 주체적으로 그 촉매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자각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전통문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선교사들이 전해 준 그리스도교와 한국 민중 그리스도인들이 나름대로 이해하고 주체 적으로 해석한 그리스도교가 달랐다는 사실이다.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를 전할 때의 목적과 그것이 끼친 영향은 서로 달랐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그리스도교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민족사에 몇 가지 적극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우선 성서 읽기와 관련하여 전개된 한글 보급이다. 한글을 깨우침으로써 민중은 민족적 자각의 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고, 민족주의 형성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한글보급운동이 없었다면 독립신문의 한글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행정을 통해서 민주적 제도의 얼거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것은 대중운동의 횡적 체계를 가능케했으며, 나아가서 민권운동의 기초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 또한 신분과 계급을 타파할 수 있는 평등사상이 도입됨으로써 조선의 봉건적 질서의 몰락을 촉진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에 비추어볼 때, 민중은 제도적인 교회의 껍질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스도교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인의 새로운 정체를 형성해갔다고 생각된다. 그것의 집대성이 31운동이었다. 한국 그리스도교가 31운동에서 맡았던 역할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평등사상, 민주적 훈련, 교회라는 조직 없이 과연 31운동이 그렇게 전개될 수 있었겠는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아무튼 31운동을 통해 드러난 것은 선교사나 교회 지도층의 의도와는 달리 '민중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사적 맥락에서 그리스도교를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문화(특히 민중문화)에 끼친 영향 중에서 한 가지를 시론적으로 거론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헤브 라이즘이 미친 영향이 아닌가한다. 헤브라이즘의 특성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보다는 '의지'에 기초하고 있으며, 변증법적이고 투쟁적이다. 또 합리적인 것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비합리성,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역동성, 달걀로나마 바위를 깨뜨리려 드는 의지, 눈에 보이거나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계속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불굴성 등이 헤브라이즘의 특성이다. 동양문화권에서는 명시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과 같은 요소가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민중에게 활력을 준 계기는 없었을까? 이것은 동양문화권이나 한국 민중문화에 헤브라이즘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수많은 천년왕국적 민중운동, 혹은 낙원사상, 미륵불교, 후천개벽사상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헤브라이즘이라는 해석 도구를 통해 동적이고 혁명적인 것으로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헤브라이즘이 들어옴으로써 침체되거나정적인 상태에 있었던 것에 자극을 주어(31운동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구체화되고 동력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겠는가하는 생각이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역사 속에 들어옴으로써 나타난 이러한 긍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기능한 요소도 컸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우리의 민족문화와 단절되어 전개되었으며 민족 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민중의 기층문화를 왜곡하고 말살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편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민중(민족)문화를 왜곡하고 말살하려 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와 서구 문화를 구분하는 상식적인 사고조차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고 그리스도교 이외의 모든 것을 우상으로 보는 선교사들에 의한 교리적 독단을 가졌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문화의 토대는 노동과 공동체의 삶이며, 그것은 종교로 표현되기도 했다. 조령(祖靈) 경외를 중심으로 한 모든 가례와 부락제를 통해서 표현되는 모든 종교의례와 세시풍습이 서구 선교사의 눈에는 물론, 그들에게 교육받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도 우상숭배로 보였다. 가례와 부락제의 모든 제사의식과 신앙의 핵이 노동을 통해 생산된 '밥'을 매개로 하여 초월과 현실을 동전시키고, 나아가 거룩하게 된 물질(밥)이 노동에 참여한모든사람에게 공유되고 나누어짐으로써(제례 후의 음복) 노동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다지며, 축제를 통해 벽사진경(辟邪進慶)하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한 제례는 우상숭배가 아니었으며, 음복도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 자체가 공유요, 나눔이요, 문화였다. 그것 속에서 노동과 놀이는 초월적 지평으로 통전되어 갔다. 이러한 문화를 우상으로 보고 파괴한 것은 한마디로 생산공동체를 담아 나르는 기본적인 커다란 툴을 깨뜨려버린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멋, 가락, 풍속이 우상으로- 왜곡되고 금기가 되었다. 민중의 노동에 역동성을 제공했던 민요를 불러도 불경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한 몰지각성과 전투적 근본주의 신앙양태로 인해 개신교 수용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우리의 멋과 건축양 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교회 건물이 하나도 없다. 오늘 한국 찬송가의 대부분이 식민 자본주의의 점령세력에게 용기를 북돋우거나,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은폐하는 이원적 사고를 주입시키는가사와 곡조로 된 외국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런 반성과 비판 없이 그것을 직수입하여 부르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민족주의와 평등사상은 적극적인 역할을 한 면도 있지만, 바로 이 사상이 봉건적 유제라고 척결해버릴 수만은 없는, 굴종만이 아닌 귀중한 전통적인 인간관계와 우리 나름의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도 파괴해버린 역기능을 발휘하기도하였다. 물론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책임이라고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구적인 가치판단이 모든 것을 깨뜨려버린 것이다. 총체적으로 판단하면,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화의 식민주의자 역할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멸시하고 말살한 것이다(이런 면에서 개화파나 민족개조론을 주장한 자들이 저지른 잘못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적 유산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이 존경하는 현인, 성자, 위인은 모두 서구안이었다. 한국적 정신의 위대성과 위대한 인간상이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무시된 것이다(물론 그 정신의 뿌리가 대부분 유선 등 종교였고, 그것이 우상숭배의 독단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적이고 조용하지만 수도사적 수련을 통해 깊은 내면의 세계를 천착해 들어갔던 정신문화도, 공동체적 삶과 노동에 뿌리를 박고 있는 민중문화도 모두 부정되었다. 이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교의 반성은 다른 제3세계 국가들보다 늦은 것이 사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서구의 식민세력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손잡고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바로 그 때문에 식민시대의 극복과 더불어 이러한 반성을 시작한 제3세계의 자각에 오늘 우리가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적 상황과 그리스도교가 만남으로써 형성된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검토하여보기로 하자.

여러 가지 반성해야 할 과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을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형성하기도 했다. 이 긍정적인 면을 인식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한국사에서 식민 제국주의와 대결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마지막까지 사수하고 쟁취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들과 민중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리스도교는 끝까지 민족의식을 버리지 못했다. 일제하에 교회가 주로 읽은 성서 본문은 에집트의 압제와 바빌론제국에 저항한 모세와 에스델 이야기였고 요한묵시록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기도회에서 민족독립을 간구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그리스도교를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한국인의 민족적 자각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 그리스도교를 피안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 한국 그리스도인은 피안적인 데 머물 수 없었다.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그 표현은 피안적일 수도 있었겠지만 저들은 이스라엘 역사와 우리 역사를 일치시키고, 민족의 운명과 관련하여 성서적 유산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전통이 그때 이미 태동되었고, 1960~70년대의 그리스도교 운동의 뿌리도 바로 그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의 형성과 더불어, 한국 그리스도인 상의 형성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샤머니즘적 신앙양태와 반공주의(의식)이다. 샤머니즘적인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논의는 일제시대의 지식인들(이광수 등)에 의해 시작된 비판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다시 그 논의를 장황하게 전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에 몇 가지만 요약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는 샤머니즘을 배척해왔지만, 샤머니즘은 오늘날까지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살아있다.

둘째, 한국 그리스도교가 무당과 제의를 우상숭배로 부정하고(장로교가 일제하에서는 병 고치고 방언하는 것을 엄격하게 교조주의적으로 부정하고 금했음은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역설적이다) 척결하려 했지만 오히려 샤머니즘이 그리스도교적 양태를 통해 자기를 전개해왔다고 보아야 한다. 샤머니즘이 지닌 민중적 종교성은 인정 해야겠지만 비정치적이고 비역사적인 그리스도교의 형식으로 전개된 것은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교가 민중의 한을 풀며, 부락제에서 노동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다지고, 모순의 현실을 비판하고 대항하는 민중예술의 모태가 되어왔다는 오늘의 새로운 인식은 이제 한국 그리스도교에서도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반공주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경제적 차원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적성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종교적 차원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종교를 부정하고 배격한다는 형식논리 때문에 정치현장과 종교현장에서의 논의는 물론 학문적 논의와 비판조차도 금지되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와 대결해야 하는 현실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80년 동안 한국 교회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깨끗이 문을 닫아걸어 버리고 있다.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를 정면으로 문제삼고 대결해보지 못한 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마음을 열고 마르크스주의와 대면하여 그것의 장단점을 알았더라면 최소한 그리스도교가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면서 한국 역사에 공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설에 대해 그 당시 신학을 대변하던 『신학지남』은 일언반구 비판조차 없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시대부터의 반공교육과 625전쟁의 동족상잔이 결과적으로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경직화를 초래했지만, 민중사적 차원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경직화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일제는 한국의 지주충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국내 매판세력)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편성하였고, 이후에는 미국의 자본가와 군부를 등에 업은 세력이 이 땅을 지배해왔다. 한 번도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를 결정해본 역사가 없었다. 경직 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대한 대안의식이 형성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때 민족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연합하기도 했으나 그들이 분열할 때 그리스도교는 민족전영과 제휴하였고, 결국 사회주의적 사고를 가졌던 그리스도인들(이동휘, 여운형 등)은 그리스도교와 결별하고 말았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헤브라이즘의 특성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언제나 주장하는 바이지만,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헤브라이즘의 연장, 혹은 현대적 헤브라이즘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보다는 의지가 앞선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의지가 앞서고 그것에 따라서 목표가 설정되며, 그것에 따라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교가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헤브라이즘으로 새롭게 무장했으면 역사 속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마르크스주의와의 대결을 회피한 데서 그리스도교가 한국 역사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취약점을 드러냈으며, 이 취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영성훈련에 내포된 긍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형성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부정적 양태를 간략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양태는 천박할 뿐만 아니라, 심오한 영성과 내면성을 결핍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는 전통적인 종교 다원주의적 상황에서 한국의 정신문화가 간직하고 있었던 신비주의적 뿌리를 그리스도교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뿌리를 제거하고 말았다. 명상과 신앙의 신비주의적 체험을 강조하는 동방교회의 전통은 한국 교회에 거의 전달되지 못했고, '믿음으로만'이라는 서방교회의 신앙전통은 종교적 자기 수련과 연결되지 못함으로써 천박함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치닫고 말았다. 말하자면 한국 교회는 유교나 특히 불교에서 수련하고 선(禪)을 통해 득도하는 것과 같은, 깊은 차원에 침잠해 들어가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든 전통적 영성수련을 교리적인 독단에 의해 부정해버리고, 따라서 너무나 비사변적이고 비철학적인 '말'만이 무성한 천박한 그리스도인 상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믿음'이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교리를 믿는 믿음의 형식이 되어 버렸다. 참 의미의 믿음은 오히려 궁극적 실재를 향해 무아(無我), 무의식의 상태에까지 나를 방기(放棄)하고 내맡기는 것이다. 기도의 자세도 오히려 선(禪)과 같은 기도의 자세가 최고의 형태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나 노장(老莊)사상에 참 믿음의 모습이 간직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름붙일 수도, 대상화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한, 아니 대상 자체도 의식하지 않는 깊이의 차원, 무(無)와 무위(無爲)의 영역,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믿음까지도 부정하는 자기부정의 철저성, 그것이 바로 예수의 믿음과 통하는 믿음의 형식이다. 이렇게 우리 안에 객체화되고 대상화된 그리스도론적(배타적인 그리스도 중심적) 믿음의 규정을 넘어설 수 있는 전통적 뿌리와 잠재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그리스도인은 그것과 단절되어 표피적인 신앙양태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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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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