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를 맞이하면서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19901견대는 '민족문제의 시대'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고 외세에 의한 분단의 고통을 당해 온 우리의 처지에서 민족자주화와 민족통일문제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활성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즈음 민족문제를 논의하는 사람들의 말을 찬찬히 훑어보면 퍽 낙관적인 견해가 깔려 있는 듯합니다. 1980년대말부터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주도해 온 세계적 규모의 데탕트가 독일 통일을 어느 정도 가시화시켰고, 이러한 데탕트의 영향이 한반도에 어느 형태로든 미치리라는 것이 그 논거인 듯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과 미국 그리고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서관계의 개선이 지구의 남과 북을 가르는 빈국과 부국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북관계의 모순을 격화시킬 수 있고, 이러한 모순의 격화는 한반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중한 견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문제가 단순한 체제 대결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의세와의 관련에서 인식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감안해볼 때,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은 주의 깊은 관찰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모시고 '민족문제와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지는 오늘의 상황에서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를 밝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선생님께서 민족의식이라고 할까, 민족감정이라고 할까하는 것을 어떤 계기로 갖게 되었는가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