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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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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 의식

▶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볼까요. 민족적인 것에 대해 예수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요?

'민족' 개념을 강조한 신학자는 고가르텐(F. Gogarten) 이지요. 그는 이 개념을 히틀러시대에 사용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민족'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트노스'(ἔθνος)거든요. 이 낱말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지요. 그것이야 어떻든 예수가 보고 있는 궁극적인 세계에서는 민족주의니 뭐니 하는 것이 다 해소되지요. 그러나 예수는 선 자리에 대한 책임의식이 굉장히 강했어요. 저는 예수야말로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은 분이라고 봐요. 이스라엘 민족은 특수한 민중적 민족이 아닙니까? 예수는 일차적으로 민중적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태어났다는 것과 그 민족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어요. 예수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마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마태 10, 5~6)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이 먼저라는 것을 강력하게 말한 것이지요. "잃어버린"이라는 말도 민중적 민족을 표현하는 상당히 중요한 어구라고 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아라, 그래서 하늘나라가 임박했다고 전하라고 한 예수의 말에서 민족주의를 읽자는 것이 아니고,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수난당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실한 책임의식을 읽자는 것이지요.

저는 눈앞에 있는 것을 떠나서 세계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봐요. 이 점에서는 바울로도 마찬가지예요. 바울로는 이방인 선교에 전념했으면서도,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로마 9, 3)라고 말합니다. 바울로의 말은 이른바 구속사적 의미에서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에는 자신이 태어난 민족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죠. 이것은 예언자들에게도 뿌리 깊은 사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민족을 도의시하고 세계주의로 넘어갔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그러나 장차 올 그때는 '민족'이라는 것도 달리 해석되겠지요. 마태오복음 8장 11절에는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나라에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고"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가장 오래된 전승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수가 직접 한 말로 볼 수 있어요. 이 말은 예수의 관심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음을 말해주지요. 복음서들도 예수의 생애를 보도할 때에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만, 부활한 이후에는 온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놓고 있어요. 마태오복음 28장 20절에도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하는 말이 나오지요.

아무튼 예수는 그의 현장인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이 강했는데, 그것이 민족주의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관심은 "지금 먼저 여기"라는 현장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어요. 철저한 수난을 당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장, 그리고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민중성이 가장 강한 사람들의 염원에 호응해서 먼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고 했다고 봐요. 그것은 민중적 민족에 대한 관심의 발로였는데,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할 거예요.

한 가지, 요한복음 4장은 이러한 해석에 약간의 걸림돌이 되기는 해요. 요한복음은 가장 보편적인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데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는 "구원이 유다인에게서 온다"고 하거든요. 문제는 문제인데, 고난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고난받는 이스라엘 민중을 통해서 세계구원이 온다고 예수가 말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고 봐요.

▶ 선생님께서는 선 자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책임의식을 잘 보여주는 민중적 표현이 있을까요?

지난번 어느 곳에선가 '환생'을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에 두려워했지요. 예수를 보고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 엘리야가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죠. 저는 이 모티프를 중시해서 한 맺힌 사람은 다시 둔갑을 해서라도 한이 풀릴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환생'이라는 말이 적절한 언어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라"고 말하곤 하죠. 엘리야가 다 풀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내가 엘리야로 환생했다고 말이에요. 그것은 정말 무서운 민중성이라고 봐요. 저는 생명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생각은 수난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상식과 같은 것이었어요. 마카베오시대 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그들이 묻힌 바로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 그 한을 풀 것이라는 생각이 유다교 묵시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 프로 자리잡기도 했었지요. 루가복음 12장 9절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는 말이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나"와 뒤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은 서로 다른 실체예요. 나를 죽이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둔갑을 해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이 그 말에는 담겨 있어요. 생명은 그런 겁니다.

전태일이 죽었지만, 전태일은 무엇으로 태어나든 다시 태어나 활동하고 있어요. 흔히 전태일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정신적 계승이라는 말은 피하고 싶어요. 전태일은 죽지 않고 되살아 났어요. 생명은 그런 겁니다. 안 죽는 것이 생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도 죽지 않았어요. 그를 죽였는데, 그는 죽지 않았어요. 앞에서 저는 예수를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고 민중의 전형적인 예로 본다고 했는데, 마르코복음의 서술에서 죽은 다음의 예수, 부활한예수의 모습은 왜 그려지지 않았을까? 참 바른 해석을 했다고 보았어요. 마르코는 마태오나 루가처럼 떠돌아다니는 예수를 보여주려는 동기를 상당히 약화시켰는데, 그것은 예수가 환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가 그냥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마르코는 그 말을 아예하지 않고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것으로 그치고 말거든요. 그러면 그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냐? 그것은 죽었던 민중이 일어났다, 환생했다, 예수는 민중으로, 집단적 민중으로 환생했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예수는 오늘 우리 한국에서도 환생하고 있어요. 저는 이 모티프를 서 있는 현장에 대한 책임의식과 연결시키고 싶어요. 예수가 갈릴래아의 민중으로 환생했듯이, 예수는 오늘 한국에서도 환생하고 있어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인가의 환생으로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야 해요. 죽어도 이루어야 해요. 한국 민중이 품고 죽은 한을 풀기 위해서 민중은 오늘 나와 너, 우리의 모습으로 환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선 자리에 대한 책임의식의 뿌리라고 봐요.

▶ 선생님께서 선 자리에 대한 책임의식과 환생의 모티프를 연결시킨 것을 흥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민중이 민중성을 실현하고 민중의 생명력을 실현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시사해주셨는데, 민족문제도 그런 안목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즈음 민족자주화와 민족통일, 사회민주화 등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활발한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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