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우리 모두는 서구 신학을 배웠으며, 그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에서, 몇 사람은 유럽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력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서구 신학적인 오리엔데이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사상은 저개발상태에 있을 때가 많았으며, 우리는 기껏 수동적인 자세로 배우기만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용적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논쟁을 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표현하고 비판을 표명하는 데 필요한 어떤 언어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의 논리와 문제 제기에 매여 있었으며, 우리의 문제에 대한 답변도 서구에서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자신의 현존이 전면에 부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소화할 수 없는 것을 제쳐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신학의 '학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매우 광범위한 영역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들만을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학문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선입견이 없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분석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해되는 학문은 '순수이성'을 전제하며, 그 자체가 '이성활동'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에서 '학'(한자어 '學問')은 결코 주관과 객관을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학'은 지적인 활동일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도야활동입니다. 지적인 인식은 그것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총체적 의미의 인간형성입니다. 가치판단은 언제나 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객관성이 목표가 아닙니다.

현영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국어에서 '회개'(metanoia)는 순윤리적이거나 순도덕적인 것을 뜻하지 않고, 인식행위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해에 따르면, '회개'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행위를 동시에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인식은 실천과 연관되어 있고, 언어로 표현되는 논리적 인식은 지식인들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단순한 사람들에게도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논리가 결여되어 있을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지식인은 결론을 얻고 그 결론을 고정시킴으로써 독단주의나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떠한 결론에도 이르지 않고, 어떤 고정된 결론도 갖지 않으며, 부정의 방법에 따라 끊임없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학문만이 진리로 이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독단적인 주장입니다. 단순한 사람들에게도 진리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김용복 박사는 서구적 사유는 동일성을 강조하지 않고 차이를 강조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긍정적으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고, 분석적인 사유양식은 꼭 필요한 조화(연대)를 손상시킬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컨대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평화나 세계 경제질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공통점을 찾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입니다. 그리하여 서구의 학문은 연대적인 행위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주어는 객어를 '배열'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차이가 표시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치판단이 우리들에게 언제나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에게는 '객관적인 진리', 곧 사변적인 진리가 없습니다. 인식의 내용은 상황에 매여 있습니다. 학문은 실천을 목표로 하며, 행위의 근거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관'이 아닙니다.

서구 신학은 뿌리 깊이 이원론에 의해 규정되어 있습니다. 일상적인 경험과 종교적인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서구 교회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만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며, 그 때문에 세속화를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역사와 구원사, 국가와 교회, 하느님의 백성과 민중은 무조건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분리요구는 본능의 강제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질 정도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방식은 창조신앙과 하느님의 총체성과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이원론은 작위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통일성을 추구하지, 차이를 찾지는 않습니다. 분석이 사건을 갈가리 찢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분석을 통하여 사방팔방으로 뻗은 연관과 상호작용과 계속적인 발전과정이 파악되어야 합니다. 공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것도 해석되어야 합니다(공시적―종합적 해석). 우리 자신은 오랫동안 서구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이제 우리는 이원론적인 구별을 단호히 배척하고 있습니다. 현영 학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 '은혜' '성령'―이런 말 들은 모두 교회의 언어들인데, 이 용어들이 일상생활에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언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힘을 다 쏟아부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가페'―그것은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되는가? 아니, 그것은 공동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일상적인 경험(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공동체를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현 교수는 말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가르친 교훈의 실제 내용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되는 것이 바로 종교간의 대화영역입니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를 다른 모든 종교들과 구별지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적 제국주의의 잔재를 봅니다. 서구 신학은 학문적임을 자처하고 다른 종교들의 가치를 낮추어보고 차이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자비'를 가르쳤고, 공자는 '인'을 가르쳤습니다. 뉘앙스는 각각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아가페'와 '자비'와 '인'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니그렌(Anders Nygren, Agape and Eros, trans. Philp S. Wastson, London, S.P.C.K, 1953)은 아가페와 에로스를 구별합니다. 우리는 이러한구별이 현실적인 것도 유용한 것도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신학들은 불교나 유교를 종교로 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는 '신앙'이 없고, 신앙의 대상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석적인,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사유의 결과입니다. 공통점들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또 다른 학문적 결론들이 얻어졌을 것입니다. 궁극적 목표로서의 니르바나(nirvana, 열반초탈)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공'(空)이나 '무위'(無爲)나 '무의식'(無意識)은 이 종교의 최고 수준을 가리키는 개념들이지만, 서구인들은 이 개념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 종교들에서는 주객 분열이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표현할 수 없는 것, 인식할 수 없는 것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언(無言)이 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더 큰 참재력을 지닌 신앙인 것 같습니다. 유교에는 명확한 신앙의 대상(上帝)이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은 신앙과 신앙의 대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서구 신학은 언제나 그리스도교의 절대성만을 강조합니다.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는 비종교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고(바르트), 다른 종교들을 전이해의 영역에 놓고 그 가치를 절하하기도 합니다(불트만).

아래에서 우리는 대강 여러분들이 말한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의 질문들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 그만큼 여러분들이 던진 질문의 동기를 다루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