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1. 성서를 보는 눈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예수의 가르침'이란 본래 어떤 것이었을까에 대해서 크게 관심한다.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는 두 가지 전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가장 순수한 본래의 것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건 어느 때까지 유지되었는가하는 점이다. 본래의 것은 보통 변증을 필요로하지 않는 단계까지 지속된다. 어떤 주장이 나오면, 자연 거기에 이론이 따르고 반론이 제기된다. 그러는 동안 그 주장은 이론화되어, 본래의 그 모습을 달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론화하기 이전의 순수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원점으로' 돌아가 본래의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둘째로,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욕구가 있어서 어떤 문제를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려드는 버릇이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에게 알맞게, 자기생활을 깔고서 풀이하려 한다. 심지어 설교자까지도, 이 말은 꼭하고 싶은데, "제 주제에 무슨 소리냐!"는 핀잔이 예상되면 금방 그 말을 피하게 된다. 이러한 버릇이 성경해석에 작용해서,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것도 괜히 비꼬아 보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쪽에서도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 자신의 조건과 형편에 맞는 것만 골라 듣는다. 그래서 말씀에 변질이 일어난다.

이런 사정은 형성될 때 이미 있었다. 이제부터 이 문제를 밝히려고 한다. 나의 체험이지만, 내가 처음 성서를 읽고서 느낀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면 아무래도 "살기 힘들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독일에 가서 10년 가까이 성서를 공부해 보니, "예수는 점점 모르겠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귀국해서 이렇게 속인으로 살다보니까, 성서를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신학이란 그러한 경향에서 움직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신학자라면 고급관리로서, 풍요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데, 그런 생활조건에서 형성된 신학은 아무래도 사변적이고 기교적인 것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서에 대한 해석도 송곳같이 날카로운 것이 솜방망이 같은 무딘 것으로 바꿔지게 된다. 나 자신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 근경에 와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자적인 생활에서는 자기 은폐가 가능하지만, 어떤 면에서 수난자가 되니까, 성서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살고 있는 생활 조건 특히 경제적 생활, 이를테면 집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생활은 성서의 배경과 다르기 때문에, 성서를 바로 보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다. 참으로 덜 쨌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생활조건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전제로하고 과감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예수의 가르침의 본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대한 몇가지 대표적인 모습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2. 말씀을 전한 사람들

예수는 우선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남긴 말은 그가 세상을 뜬 다음 최소한 40년 동안 구전되어 왔다. 이를 구전 시대라고 하는데, 직접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구전이란 설교자가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예수의 말을 전하는데, 그런 때 청중들은 '예'든 '아니오'든, 어떤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린다. 그래서 구전이란 굉장한 힘을 갖는다. 설교란 원래 직접 말로 하는 것이지 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브룬너(E. Brunner)는 설교집을 하나 써내고는 "이걸 내는 게 아닌데" 하고 후회하는 글을 썼다.

설교란, 직접 말하고 그 말에 응답을 촉구한다. 예수 당시, 제자들과의 관계가 그랬을 것이고, 또 초대교회 때 그 목격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한 40년 이어오다가 그 긴장성이 약화될 무렵 복음서가 글로 씌어진 것이다. 이렇게 글로 남겨져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읽고 설교하고 또 듣는다. 이처럼 읽고 듣고 하지만, 지나쳐버리는 게 있다. 그건 자기의 생활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인데 게다가 그 '말씀'에 신학자란 자들이 교묘한 설명을 붙여 솜방망이로 만들어놓아서 우리가 아무리 얻어 맞아도 까딱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합리'에 감염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뛰쳐 나와서, 변증 이전, 합리적 해석 이전으로 돌아가 본래의 순수한 그 말을 듣고 어떻게할 것인가에 먼저 관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말들이 어떻게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 올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가 듣기 힘든, 행하기 어려운 이 말들을 40년의 구전시대를 거쳐 누가 전해주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다.

그 말씀을 전해준 것은 공동체, 곧 복음공동체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루가복음 14장 26절에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를 버려야 한다. 또 자기 목숨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두 버리라는 것이다. 자기 목숨까지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누가 이 말을 따를 수 있는가? 과연 실천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면 이 말은 이미 없어졌을 건데, 어떻게 40년간이나 계속 전해져 왔을까? 목에 걸릴 이 말이 어떻게 보존되어 왔을까?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와 비슷한 것으로 마태오복음 8장 22절에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한다. 자기의 부모의 장례까지도 버리고 따르라는 것이다.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가? 또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고자 된 사람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결혼한 사람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한마디로, 비가정적이고 비윤리적인 말이라 할 수 있다. 신학자들은 이 말들을 '종말론적'인 언어라고 해서 글자 그대로 받지 않으려 한다. 예수는 그때를 너무 다급하게 생각해서 곧 종말이 온다고 믿었을 거라고 해석해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40년 동안이나 그 말을 전해준 전달자는 단순히 사변의 유회를 일삼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말을 그대로 지키면서 전했다는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 시대상에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끝끝내 보존하면서 전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적어도 가정생활을 포기한 탈가정(脫家庭)한 그룹에 의해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탈가정을 했는가? 복음서에 보면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고 가정을 극찬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대개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축사하는 사람들이 '요한복음'을 내세우지만 그건 결혼을 축하한 게 아니다. 그것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한 것이지 딴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도 복음서에는가정을 파괴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가 있다. 가령 루가복음 12장 53절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는 말이 있다. 마르코복음 3장 53절에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고 한 말이 있다. 이건 물론 혈통적인 가정관은 아니지만 이런 말들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도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마르코복음에는 이혼을 못하게 경고한 말이 전해져 있다. 사람은 하느님이 짝지워준 것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부부관계를 일단 존중했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그 투로 보아 예수의 말로 받을 수 있다. 이건 예수가 창세기 자료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남자 쪽을 욕한 말인데, 얼마나 악했으면 모세가 그들에게 안 살겠으면 이혼 증서라도 써주어서 여자를 자유롭게 하라고 했겠는가고 하면서, 예수는 결국 모세를 상대화하고서 네가 무엇인데 한 몸을 두 개로 나누느냐고 나무랐다. 이것은 계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에 와서는 마르코복음의 전승을 그대로 받지 않았다. 그대신 "아내가 간통하지 않으면"이라고 이혼의 도피구를 제시했다. 이건 생활 조건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받을 수 없게 된 구체적인 예이다. 개신교는 "간음한 연고 외에는"을 채택하고, 가톨릭은 마르코복음을 채택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건 생활조건과의 관계에서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쨌든 위에서 열거한 탈가정적인 말은 누가 전승했을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가졌고, '소유'를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것을 그대로 전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왜? 그들에게는 가시와 같은 말들이었으니까, 그러니 전달자가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출가했던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해서, 이른바 떠돌이 설교자들(Wanderprediger)의 그룹이 그것이다. 가정을 버리고 집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예수의 말을 전했던 무리들이란 말이다. 이런 무리들이 장장 40년 동안이나 그 말들을 보존해왔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그룹들이 또 있다. 이들은 부(富)와 소유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돈에 대해 극평을 한다. 오늘의 사람들과 크게 충돌하는 말들이다.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고 명령하는 말이 있다. 여기에 대하여 성서학자들은 변명하기를, 이 말은 특별한 경우에 한정된 변명말이니 보편화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런 구석이 없다. 만일 돈 가진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그 말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했을 것이고, 40년 동안 지내오면서 벌써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또 "땅에 보화를 쌓아두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재산에 대한 경고이다. 이것은 적어도 재산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에게는 거슬리는 소리니까, 전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때 집이나 재산이 허용되어 있었다. 불과 50년경만 해도 상당한 재산가가 예수를 믿었다. 더구나 마태오복음 6장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까? 지금도 교회에 부자가 한둘만 있어도 이 말은 설교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40년이나 전해져 왔을까?

또,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한 날 걱정은 그날에 족하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 말들은 오늘에 와서 몹시 공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말들은 어떻게 보존되어 왔을까? 누구에 의해서?

적어도, 초대 교회에서 가정을 가지고 재산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유재산 같은 건 포기하고, 그날그날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무리들에 의해서 보존되어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떠돌이 설교자들'이었다. 이들 떠돌이 설교자들은 주후 2세기 무렵까지 이어져 왔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으로, 세번째 그룹이 있다. 예수가 제자들을 파견할 때 한 말로서 루가복음 9장 3절에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이런 생활이 현대의 사회구조에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학자들은 그것의 합리적인 해석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순전히 글자 그대로이다. 이건 열 두 제자에게 뿐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에게 한 말이라 믿고 그렇게 살면서, 구전으로 전해준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누구였겠는가? '소유'없이 그처럼 살아갔던 사람들이라고 할 밖에 없다. 이들이야말로 문전걸식하면서 말을 전하고 다녔던 무리들이었는데, 위에서 열거한 말들은 그들 생활모습의 일면을 나타낸 데 지나지 않는다. 욕먹고 박해받으면서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는 기록도 이들 모습의 단면이다. 바로 이들에 의해서 '말씀'이 전해진 것이다.

이들 떠돌이 설교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출가, 무소유, 방랑 이외에 그 활동무대가 주로 시골이었다는 사실이다. '반도시적인 것'이 그들의 특징인데 이건 성서에 많이 나타나 있다. 우선 예수가 든 비유만 보더라도 거기에 등장한 소재들은 거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 농민들, 소작인들, 목자들, 포도원, 추수, 땅, 고기잡이 따위가 다 그것을 말한다. 여기에 반해, "화 있을진저!" 한 것은 거의 도시를 향해서이다. 그 저주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극단화된 것도 그 까닭이다. 왜 반도시적 어군(語群)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건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의 상황 곧 그들의 생활조건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그 대상은 농민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회계층으로 보면, 농민들이 제일 하층이었고, 그 위가 수공업자들이었다. 한 가지 기술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살기가 괜찮았다. 바리사이 사람들 가운데 기술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바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특히 사제족들도 수공업을 익혔는데, 그건 이들이 아니면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부러 기술훈련을 많이 받았다. 이와는 달리 떠돌이 설교자들은 농민의 무리였는데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다시 원점으로

이상에서 우리는 말씀의 전승자들의 삶의 조건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전승자 자신들은 그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최소한 그 말씀을 전해도, 자기에게 걸리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들이 그 말씀을 진실하게 붙들고 전해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말들이 이 사람들에게서 나왔느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그들은 다만 전승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라디컬한' 말들은 결국 예수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에서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왜? 초대교회의 생활양식이 그런 라디컬한 말을 만들어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설혹 에쎄네파들처럼 한 공동체로서 집단생활을 했다면 모르지만, 초대교회는 그렇지가 않았다.

예수는 떠돌이 설교자들과 같은 모습의 생활을 했다. 가정도, 고향도 떠났고 소유라곤 전혀 없는 그야말로 '무소유자'였다. 따라서 가정에 대한 책임도 없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냐?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어야지" 했던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말일 수 있었다. 하나도 억지거나 극언이 아니었다. 그의 생활과 일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자연스러운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접촉했던 사람은 거의 농촌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말의 소재를 분석해 보면, 하충계급인 농민들의 일상생활과 관계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른바 '테오리'(이론)를 전개한 것은 한 곳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헬레니즘의 지배권에 있었는 데도 예수는 그 영향을 조금도 받은 흔적이 없다. 이 점은 성서학자들 사이에 일치한 견해인데 그가 무식해서였든 의식적이었든간에, 그의 사고는 철저하게 팔레스틴적이었고 그의 언어 또한 조금도 전개적이 아닌 단순한 아람적인 표현 그대로였다.

그리스도교는 소유를 버리고 집과 고향을 버리고 떠돌아다녔던 예수에게서, 그리고 그의 삶을 그대로 따라살았던 떠돌이 설교자들에 의해서 전승된 그 말씀에 기초해서 형성된 것이다. 이는 문화, 경제, 권력할 것 없이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리스도교는 철두철미 하층계급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바울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울은 도시에서 도시로 다니면서 선교를 했다. 교회를 도시에 세웠지 농촌에 세운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었다. 그건 그가 이미 헬레니즘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바울에게 와서 도시적 종교로 되어간 것이다.

그 내용도 달라졌다. 변증적인 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반론과 대결하여 이론화되었다. 교리는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다. 예수의 말은 결코 교리가 아니었다. 교리는 그리스도교가 도시인의 종교가 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예수는 팔레스틴 농민들이 사용한 아람말을 썼는데, '신약'은 도시인들이 사용했던 그리스말로 바꿔 씌어진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의 정착을 보았다. 따라서 교회도 생겼다. 거기에 따라 계층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자연히 안정과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 맞게 말씀을 이해하려다보니까 이론이 생겨나고, 교리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고린도교회만 보더라도 교회가 처음 생겼을 때와는 달리 지혜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 가문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자연 이들을 변호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본래의 예수의 말과는 거리가 먼 데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생활조건에 따라 복음을 이해하는 것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변증이 요청되었고, 교리화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이론이 우선해졌고 행동은 뒤로 나앉게 된 것이다. 예수가 신성이니 인성이니 하는 논의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요한복음이 이미 그랬다. 마태오복음에서도, 교회가 굳어지니까 거기에 맞게 예수의 말을 변질시켰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본말에다 '마음'이라는 것을 앞에 두어, '가난의 사실'을 정신화시켜 버린다. 예수의 라디컬한 말을 보편화한 것이다. 그러니 순수한 말이 달라질 수밖에.

루가복음은 마태오복음에 비해 보다 더 순수하다. 루가복음은 예수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를 갈라놓고 그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이렇다는 투로 구별한다. 그래서 루가복음 22장에 나타난 대로 "너희들을 보낼 때 돈주머니와 자루를 가지지 말라고 했을 때 부족한 것이 있더냐" 하고 반문하고서 "없었습니다"고 대답하니까, "이제는 돈주머니 있는 자는가지고 가라.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라"고 한다. 전혀 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다. 이 말을 예수시대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활조건에 따라서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말이라도 자기의 생활과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정당화를 하려는 것이다. 그래 야평안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백이지만, 내가 수난당하기 전에도 성경이 현재처럼 보였던가고 반문해본다. 역시 그렇지 않았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관서만 연구했는데도 아까 말한 그 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박해받는 입장에 서니까 그 점이 보였고, 그 말씀들이 그처럼 중요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자신이 그 입장에 서야 성서를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을 체험한 셈이다.

예수를 따르던 떠돌이 설교자들이 외친 그 생생한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어떤 지식이나 이론이 소용되는 게 아니다. 오늘날 가난한 근로자들이나 농민들이 사실 조금만 눈을 뜨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성경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지식인들이란 이미 마음이 오염되고 생활조건이 달라져서 그 자리에 가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어버렸다. 수세식 변기에 안 앉으면 변이 안 나올 정도로 이질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과 같이 다니라면, "저 무식한 것들은 밥먹을 때 손도 안 씻고 먹는다"고 경멸할 우리이다.

이제 우리가 무기력하고 나태해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 원점에 비추어 자신을 고발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원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변증교리 이전의 순수한 말씀의 자리이다. 우리는 교리화 이론화되기 이전의 순수한 말씀의 자리에로 돌아가 자신을 철저하게 고발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보시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고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고백할 수 있을 때, 참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ist of Articles
표지
역사의 담지자
   
제1부 민중의실체
   
민족ᆞ민중ᆞ·교회
    1. 민중이 없었던 역사
    2. 그리스도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3. 한국 그리스도교의 기본자세
민중과 더불어 I
    1. 가치의 붕괴
    2. 가치의 기준
    3. 이웃이 누구인가
    4. 민중과 예수
    5. 예수와 어린이
    6. 혼동의 현장
풀과 씨알과 돌
    1. 민의 두 얼굴
    2. '기적'을 일으키는 민중
    3. 소리를 지르는 돌이 되는 민중
민중언어와 그리스도교
    1. 민중언어
    2. 한국 혼의 전승자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4. 한국 교회와 민중언어
민중의 힘
    1. 성서 안의 민중운동의 맥
    2. 민중운동의 태
    3. 민중운동의 태동
고난하는 한국의 민중 : 독일 신학계에 하는 말
    1. 독일 신학의 피할 수 없는 함정
    2. 육의 자기초월
    3. 반(反) 두 나라설
    4.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
   
제2부 민중, 역사의 주체
   
민중신학은 무엇인가
    1. 민중신학의 주제들
    2. 질문과 대답—성서해석의 시각
    3. 민중신학의 축
민중적 신앙고백
    1. 우리의 현장
    2. 우리 교회사적 반성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민중과 교회
    1. 민중신학과 교회론
    2. 고린토교회의 문제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4. 교회론이 없는 마르코복음
    5. 루가의 교회론
    6. 맺는 말
새 역사의 주인
    1. 역사의 담지자
        1) 예수의 경우
        2) 가난한 자의 공동체(바울로)
        3) 야고보의 경우
    2. '가난한 자'가 주인 되는 때
    3. 맺는 말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통일
    1. 분단상태의 성격
    2. 민족통일을 위한 움직임
    3. 민족통일운동의 거점
    4. 통일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예수와 민중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2. 예수와 민중
    3. 그리스도론의 핵심으로서의 예수의 고난
예수와 해방
    1. 머리말
    2. 예수시대의 민족해방의 노력들
    3. 예수의 해방운동
        1) 병에서의 해방
        2) 체제에서 해방
        3) 증오, 복수에서의 해방
    4. 결론(마리아 찬가)
   
제3부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민중사전 속의 그리스도
    1. 충격
    2. 신학적 문제 정리
    3.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1. 속죄양
    2. 세진이의 부활을 경험한 어머니
    3. 예수와 석가의 만남
    4. 보라, 이 사람을
민중과 더불어 II
    1. 거울이 유죄?
    2. 허상과 실상
    3. 논어를 읽으며
    4. 역사적 시점
    5. 민중과 더불어
민중사와 교회사
    1. 그리스도교회로 몰려든 자들의 사회적 성분
    2. 교회는 저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1. 민중운동에서 민중신학으로
    2.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성서
        1) 민중신학 이전의 신학
        2) 구약은 민중해방의 사건이다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3. 한국 역사 속에서 민중신학의 과제
    4. 민중운동의 그리스도적 의미
   
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1. 민심이 곧 천심
    2. 잘난 백성 못난 백성
    3. 산 백성으로 서는 길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1. 배고픔
    2. 그날 그날 먹을 양식을!
    3. 우리에게 그날 그날의 배고픔을 주소서
민중은 '환생'한 예수
    1. 예수는 '영웅'이 아닙니다
    2. 왜 마르코는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붓울 놓는가
    3. 민중으로 환생한 예수?
    4. 오늘도 이어지는 '환생' 사건
민중적 민족주의 : 한완상 『민중과 지식인』 서평
    1. 개복(開腹)된 병상
    2. 민중은 누구인가
    3. 민중에게 의한 민족 세우기
   
제5부 민중과 예복
   
민중과 예복
    1. 객이 주인 되는 이야기
    2. 폭력으로 기득권 수호
    3. 수호자에 대한 심판
한국적 그리스도인상의 모색
    1. 문제 제기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4.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유산의 합류
    5. 근대화의 모순과 민족통일의 과제 앞에서
    6. 한국적 그리스도상의 맹아
민족문제와 민중신학
    1. 민족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2. 오늘의 민족문제를 보면서
    3. 민중적 민족
    4.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5.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선 자리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7. 민주에 대한 영원
탈서구신학과 민중신학 : 독일신학자들과의 논쟁
    1. 여러분들이 제기한 질문의 전반적인 구조
    2.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판권
표지
 
제1부 부활의 아침
어느 부활절 아침 (요한 21, 1)
오늘의 부활현장 (사도 2, 22-24)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 현장 (사도 2, 22-24)
받은 것을 땅에 묻어두지 말라 (마태 25, 14-20)
사람을 낚는 어부 (마르 1,16-20)
부활 신앙 (고전 13, 12)
공포에서의 해방 (마태 10, 26-33)
"와서 보라" (요한 1, 35-39)
민중은 '환생'한 예수? (마르 6, 14-16)
 
제2부 하느님과 우상
두 질서 (마태 20, 1-16)
빛의 아들들 이 세대의 아들들 (루가 16, 1-8)
악에서의 구원 (마태 6, 13)
성서의 구원론 (요한 17, 13-16)
민중의 설교자 (루가 9, 3)
우상과 하느님 (고전 8, 1-6)
뱀처럼 들리운 예수 (요한 3, 14-16)
누가 네 이웃인가? (루가 10, 29-37)
믿음과 결단 (마태 4, 1-1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 7, 7-11)
기도 (마태 14, 22-23)
저항과 복종 (마태 21, 28)
단(斷)! (마르 9, 42-48)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 투쟁이다 (요한 1, 4; 6, 53)
 
제3부 새 세계의 건설자
자유에의 길 (갈라 4, 1-10)
일어나라 (사도 3, 1-10)
새 세계의 건설자 (에페 2, 11-22)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 (로마 8, 38-39)
바울의 인간관 (로마 8, 18-30)
바울의 현존 이해 (필립 3, 1-14)
문(門) (요한 10, 7-16)
나를 따르라 (루가 9, 57-62)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현실 (갈라 3, 26-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고전 12, 12-27)
자유에의 길과 그리스도 (루가 4, 18-19)
표지
 
제1부 구걸하는 초월자
앎의 두 면 (고전 8, 1-13)
져야 할 십자가 (마르 8, 3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