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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르코의 삶의 자리

(1) 성서형성에 있어서 전승체의 삶의 자리를 중요시한 것은 양식 사학파의 큰 공헌이다. 그런데 그 '삶의 자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전제에서 사회학적 대상에 도달했는데, 놀랍게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정치경제 그리고 문화적 여건에는 거의 관심하지 않고 '종교적 이념'의 전승과정만 추구함으로써 관념철학이 그렇듯이 사실을 추상화해버리고 말았다. 삶을 '정신과 육체' 또는 '개인과 사회'로 양분하는 것은 사변의 유희이지, 삶 자체에 접근하는 길이 아니다. 특히 종교사학파들은 종교는 모든 사회 여건과 유리되어 마치 쿨만(O. Cullmann)이 일반사 속에 구속사가 마치 땅에 묻은 수도관처럼 흐르고 있는 듯이 보는 것처럼 그 고유성을 지닐 수 있다는 듯이 해석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종교사적 계승에만 관심할 수 있겠는가?2)G. Theissen의 사회학적 분석 결과 전승체가 반드시 교회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전승자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결부시켜 전승자들에 관해 연구했다(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원시기독교의 예수의 말씀 전승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고찰」, 『신학사상』 제29호, 1979년 겨울호 참조).

마르코복음 편자의 삶의 자리는―그것이 그 개인이든 그가 속한 공동체든―로마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기 땅에서 추방되어 고향도 토지도 집도 빼앗기고 아무 보장도 없는 이방 땅을 거지떼처럼 배회하는 현장이었다. 이스라엘 본토에서 저항투쟁이 일어난 A.D. 66년 그리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사실상의 멸망을 가져온 A.D. 70년 사이에 이스라엘인들의 비극은 극에 달했다.

유다, 이두매, 베레아 그리고 갈릴래아 등에서 궐기한 유다인은 로마군을 상대로 하여 처참한 혈전을 벌였다. 로마군은 갈릴래아, 베레아, 예루살렘 순으로 그들을 토벌했는데, 그때의 처참함은 다마스커스에서만 1만 8천 명이 학살되었다는 기록이 잘 말해주고 있다. 예루살렘은 5개월간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초토화되었고, 유다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다 본토만이 아니라 이방 지역에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도 봉기했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에서나 반유다인 숙청운동 이야기되었다. 유다인은 산산이 흩어졌다. 예루살렘 출입이 금지되고, 예루살렘 성전터 위에 주피터 신전을 건설하려는 계획하에 주피터 신상이 세워졌고, 예루살렘도 그 이름이 주피터 신명에 어원을 둔 Aelia Capitolina로 바뀌어서 주피터 신에게 봉납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 지역을 옛 이스라엘의 숙적인 불레셋(Philistia)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틴(Palestina)라고 명명되었다.

마르코의 삶의 자리3)마르코의 저작연대가 예루살렘 함락 이후라는 입장(안병무, 『신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1972년 초판에서의 필자의 입장을 시정한다)은 마르코 13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 서술에서 더 확실해졌다. 최근에 마르코복음 주석을 낸 J. Gnilka는 70~73년 사이로 보고 있다(Das Evangelium nach Markus, in : Euangelisch-Katholischer Kommentar Neuen Testament(EKK), Benziger/ New Kirchener Verlag, 1978).는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4)유다전쟁에 대해서는 F. Josephus의 저서 외에 다음의 책들을 참조하라. W. 르스터, 문희석 역. 『신구약중간사』, 컨콜디아사, 제9장; A. H. J. 군네벡, 문희석 역, 『이스라엘 역사』, 한국신학연구소, 292면; H. P. Kingdon, "Who were the Zealots and their Leaders, in A.D. 66", NTS 17, 68~72면(1970/ 1971); Heinz Kreissig, Die Sozialen Zusammenhänge des judäischen Krieges, Schriften zur Geschichte und Kultur der Antike II, 1970 등. A.D. 70년 이후이다. 마르코자료에서 사흘 동안이나 굶주린 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목자 잃은 양 같다"(6, 34)고 한 바로 그 '큰 무리'가 이때의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민족의 처지를 요약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2) 마르코의 삶의 자리는 바울로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불트만이 복음서를 '확대된 케리그마'라고 한 데 이어 마르크센(W. Marxen)과 그의 제자 줄(A. Suhl)은 마르코복음이 바울로의 신학 사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강조하고 있다.5)W. Marxen, Evangelist Markus, S. 85~92, 98~101; A. Suhl, Die Funktion der alttestamentliche Zitate und Anspielungen, in; MK-Evangelium, 1905, S. 180. 그러나 오히려 바울로에 의해 성립된 이른바 케리그마화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마르코복음에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과거의 '예수냐 바울로냐'의 논쟁이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한 잘못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현대의 신약학 분야에서 바울로의 편지들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사이의 차이점이 발견되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둘 간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독일 신학의 관념론에서 탈피할 때 마르코복음의 자료선택, 그와 관련된 언어선택, 그 안에 담겨진 내용 중에서 보여지는 사회전기적6)민중의 '사회전기'라는 용어는 김용복에게서 배운 것이다(「민중의 사회전기와 신학」, 『신학사상』 제24호, 1979년 봄호 참조). 예수 이야기(Erzahählung)를 바울로의 그리스도론과 병합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양자의 역사적 특이성을 묵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는 둘을 비교할 때 유다전쟁이 가져온 단절성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로의 글은 A.D. 50~60년 사이, 즉유다전쟁 훨씬 이전에 씌어졌다. 이미 유다 지방(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탈예루살렘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국한된 일이었을 뿐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울로 자신은 헬레니즘 영역에 사는 유다 지식인이며, 사회신분상으로는 로마제국의 시민권 소지자임을 보아 비록 유다인아지만 팔레스틴의 유다인들과는 정치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상황에 있던 바리사이파였다. 그의 역사적 상황을 규명하는 대신 그가 직면했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유다의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와 단절시키지 않으면서 유다교라는 게토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둘째, 헬레니즘 문화권에 이질적인 그리스도교를 토착화시키는 일이다.

셋째, 새로운 사회집단으로 구성된 교회를 이념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립해가는 일이다.

넷째, 어떤 선교전략을 펴나가야 하느냐라는 과제다.

네 번째 과제는 도시들을 우선 대상으로하고, 로마를 그 목표의 절정으로 삼아 당시에'이 땅의 끝'이라고생각한 스페인을 마지막 목표로 삼은 것이다(로마 15, 2015, 23). 이것은 로마의 정복의 길을 그대로 이용하려는 발상이다. 로마는 한 도시를 점령하고 자동적으로 그 도시에 예속된 지방을 흡수해버렸다. 바울로는 그것에서 선교전략을 찾은 듯한데 그것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전략은 비도시적이었던 농경문화적 예수전승에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의 과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고린토 교회의 경우를 보는 것으로 족히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복잡한 교회 구성원의 문제가 있었다. 그 지역은 헬레니즘 영역이었지만, 교회를 이룬 사람들은 유다계, 비유다계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 체계는 유다인 특유의 배타성 때문에 큰 난제를 유발했다. 또 하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계층이 모인 데서 야기되는 문제가 있었다. 고린토교회의 새로운 구성원은 정치(권력)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밑바닥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바울로가 '지혜 있는 자' '권력 있는 자' '가문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을 민중이라고 한다면 정치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라고 할 것이다. 바울로는 이들을 '어리석은 자'(문화), '악한 자'(정치), '멸시받는 자'(신분)라고 하며, 통칭하여 '존재 없는 자'라고 한다. 말하자면 무명의 계층이다. 그러나 중류 이상의 계층은 비록 소수이기는 했어도 존재했다(고전 1, 23~29).7)고린토교회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G. Theissen, 「고린도교회의 약자와 강자」, 『신학사상』 제24호, 1979년 봄호 참조. 그런데 바로 그 소수가 문제였다는 것은 바울로의 설득의 대상이 소수의 계층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혈연사회계층적 요소가 고린토교회에 문제로 작용했는데 저들은 각각 아폴로파, 베드로파, 바울로파 아니면 아무 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그리스도파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러한 표리부동한 파벌이 공동체생활을 방해했는데, 무엇보다 밥술이나 먹는 자들이 끼니마저 굶어야 하는 계층을 멸시하는 것 같은 횡포가 문제였다(고전 11, 17~22).

이러한 마당에서 바울로의 신학적 입장은 분명해진다. 그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분명히했다.8)안병무, 「선택받은 민중」, 『현존』 제104호, 1979년 9월호. 그러나 그는 '민중의 교회'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만인의 교회'를 지향했기에(로마 10, 12)이 여러 계층 사이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으로 극복하려고 시도했으며(고전 12, 12~20),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 자유인과 종, 유다인과 이방인이 따로 없다고 하여(갈라 3, 28) 사회적인 문제를 비역사화해버렸다. 이런 그의 입장은 필레몬서에도 뚜렷해진다(16절). 그가 "이제부터 아무도 육에 따라(κάτα σάρκα) 판단하지 않습니다"(고후 5, 16)라고 하는 경우를 보자. 이것은 사람의 평가를 신분, 권력, 재산 따위에 두지 않겠다는 것인데, 바울로는 이 말을 통하여 인간평등을 주장하려고 하지만 또한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를 비역사화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화해의 설교를 한다(특히 고후 5, 18 이하).

둘째 과제를 위해서는 당시 헬레니즘 문화권을 휩쓴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도입하여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전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영지주의는 당시의 지식층의 세계관이라는 사실이다.9)G. Theissen, op. cit., S. 48, 50f. 그것은 사변적 세계관이며 인간관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언어(세계관)를 도입한 것이 그리스도교를 비민중화하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그는 영지주의의 세계관(언어)을 빌리면서 그것을 다른 차원에서 극복하려고 했다.10)이 점에 대해서는 R. Bultmann이 누구보다 철저히 규명하고 있다(『신약신학』, 특히 「바울편」참조). 그러나 그가 히브리적 개념이 아닌 '자유'(έλυθερία 고전 9, 910, 29; 고후 3, 17; 갈라 2, 45, 1 등), '진리'(άλήθεια)(로마 3, 715, 8; 고후 7, 1412, 6) 등은 실은 진실(πίστις) 또 도움이라는 뜻을 말하려는 것이다(갈라 2, 52, 145, 7 등). 또는 '이성'(νούς)에 어원을 둔 동사를 활용하는 등11)R. Bultmann, Theologie des N.T, 1977, S. 211ff., 332 ff. 등. 헬라적 언어를 도입하는 데서 그가 그레꼬 로마 세계의 지식층을 일차적 선교의 대상으로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그의 토착화 노력의 단면인데, 이러한 그의 대상 선택이 역사의 예수의 특수성을 모호한 그리스도론으로 대치하게 했다고 본다. 까닭은 역사적 예수의 삶의 행태는 헬레니즘 영역의 엘리트에게는 납득시킬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첫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라삐 유다교의 율법체제에 도전함과 동시에 그 전통에 연결시키는 고리로서 '믿음'(πίστις)을 내세운다. 아브라함을 위시한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인물들의 원초적 종교 자세를 '믿음'이라는 안목에서 파악하여 그리스도교와의 공통분모를 찾았는데, 이 작업에도 바울로는 역시 지식층의 언어를 도입하였고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개념이다. '자유'라는 개념으로 또다시 지식층의 언어를 도입한다.

바울로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교의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며, 그 목표를 관철하기 위하여 고도의 세계 언어화를 필요로했기 때문이다.

 

(3) 마르크센이 바울로의 복음을 생동하는 현재적 힘으로 이해하면서 마르코의 복음이해도 그렇다고 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마르코의 복음이해는 어떤 특정사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태 자체를 복음으로 파악한다.12)W. Marxen, Der Evangelist Markus, 1959, S. 83 참조. 그는 "예수가 그에게는 복음의 주체요 객체"라고 한다(S. 99). 그러나 마르코는 그가 쓰는 것 전체를 복음이라고 한다(J. Gnilka, op. cit, S. 42f.; E. Haenchen, Der Weg Jesu, 1968, S. 39). 바울로와 마르코의 복음이해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개념에서 삶으로' 돌아온 것만큼이나 크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복음이 유다전쟁이라는 단말마적 사건 이후에 씌어진 글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마르코가 바울로의 신학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다거나 그와 경쟁적 위치에 있었다고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바울로의 그리스도가 적어도 그의 삶 또는 그가 자신과 일치시키려는 삶의 현장에서는 결정적 위로도 힘도 될 수 없다는 절실한 성찰과 더불어 그의 복음서를 쓴 것이라는 전제에서 마르코복음을 고찰하는 것은 결코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마르코복음서의 편자가 바로 바울로와 깊은 관계에 있었던 마르코 요한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마르코복음의 편집동기에 대한 앞의 전제는 더욱 타당성을 지니게 된다.

 

(4) 마르코에 있어서 긴급한 과제는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13)이것은 추측이다. 그런데 그 전체는 마르코가 실향민으로 유리 방황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며, 마르코복음의 편향성에서 귀납한 것이다.

첫째는 유다 전통 전반에 대한 재검토이다. 유다 전통은 저들의 전날까지의 삶의 뿌리이다. 그것은 정치(主義)만이 아니라 종교, 문화 등도 포함되는데 물론 일정한 땅과 연관된 전통이다. 마르코는 '국가'라는 주권을 상실한 이스라엘에 대한 재파악, 라삐 유다교 율법체제(바리사이파를 중심으로 해 이루어진)에 대한 재검토, 다윗왕권의 상징이며 유다교의 상징이던 예루살렘(현재는 완전 붕괴된)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이것은 의식종교에 대한 비판적 결론이 되는 것인데―를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둘째는 실향민으로 유리 방황하며 그날 그날의 실존적 불안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이미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종말사건으로 보고 현재를 구원의 때라고 하는 설명이 저들에게 어떻게 들릴 것인가? 부활사건이 시간적으로 40년이 지난오늘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교리가 저들에게 설명이 되는가? 과거의 예수나 예배의 대상이 된 그리스도가 저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가? 저들에게는 현재의 그리스도, 현재 저들과 함께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청되는 것이다.

셋째, 위와 관련해 이미 예수가 이념화(교리화)되고 교회가 제도화되어 권위를 요구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미 교리싸움이 시작되었다. 바울로가 "우리 자신이나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 8~9)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벌써 현실적으로 기동성을 잃은 폐쇄현상의 노출이다. 사도권과 예루살렘 교회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무의미하며(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없어졌으며 제도적 지도체제가 깨어졌으니까), 그것은 밑바닥에서 헤매는 민중에게 현재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넷째로, 저들은 시시각각으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 저들은 부활과 관계없는 죽음의 경지에 있으나 어떤 구원의 손도 기대하지 못하고 어떤 초월적 경험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이런 마당에 예수의 십자가사건이 그들을 과거의 죄에서 해방시켰다는 교리가 어떤 호소력이 있을까? 도대체 그 현장에서 죄를 논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십자가(죽음)의 사건이 지금의 저들이 받는 죽음의 위협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과제는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살려는 욕구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이런 가설적 전제―그것은 바로 물음이기도 하지만―를 갖고,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서 마르코복음을 보려는 것이다(아래에서는 제도화된 교회문제의 논급은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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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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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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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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