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의 편집자는 헬라어를 구사하며,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익숙하고, 유다교 계율과 유다인들의 관습을 익히 아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이다.12)정양모, 앞의 책, 7~8면; H. ConzelmannᆞA. Lindemann, Arbeitsbuch zum neuen Testament, 1976, S. 256. 우리들에게 전해진 마태오복음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된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 쓰여진 'Q자료'와 '마태오복음'을 기초자료로 하여 헬라어로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세비우스의 '직제자 마태오 저작설'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한편 마태오복음을 쓴 장소는 팔레스틴 밖이라는 것은 이미 정설로 되어 있다.13)정양모, 앞의 책, 11면; W. G. Kümmel, op. cit., S. 70. 접경지대인 시리아, 그중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시발점이자 중심지이면서 바울로의 활동에서도 큰 역할을 한 안안티오키아티오키이라는 주장14)H. C. Kee, op. cit., pp. 188; W. G. Kümmel, op. cit.도 있으나 정확한 지역을 지적할 수는 없다.
마태오복음의 저작시기에 대한 견해는 예루살렘 함락 후(A.D. 70년) 90~110년 정도를 넘나든다. 그리고 루가와 더불어 마르코를 대본으로 한 것으로 보아 마르코복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코복음서와는 달리, 마태오가 사도들의 위상승격, 교회 질서의 진전, 라삐 유다교의 번영과 그것과의 관계 조정에 그만큼 확실한 입장을 설정한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마르코보다 20~30년 후에 저작되었음을 짐작케한다. 그러므로 90~100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15)큄멜은 80~100년으로 보고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을 열거한다(op. cit., S.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