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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화와 서구화
1. 그리스도교는 서양 종교?

어릴 때 교회에 나가는 것을 금하는 아버지는 "왜 하필이면 서양놈들의 종교냐?"했다. 그러나 그때는 '서양놈'의 종교를 믿는 게 오히려 자랑스러웠기에 욕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성서에 본격적으로 접근하면서부터 기독교의 교리와 제도는 성서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느꼈고, 서구에서 형성된 교리만이 성서이해나 신앙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개화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모든 사가들이 말할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흐뭇했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미군정에 진출하여 정계에 나가고, 교회는 미국에서 쏟아들어 오는 잡다한 요소에 조종되어 명분없는 분열을 거듭할 때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한국 교회의 기적을 운운한 것은 실은 기독교화의 기적이 아니라 미국 문화의 식민지화의 기적이 아니었나 의심하게 됐다.

그 의심은 한국의 그리스도교회가 성서를 그렇게 내세우면서도 성서이해가 초기 선교사들이 교수한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수는 늘었으나 생활화는 안 되는 것을 볼 때 더욱 굳어졌다. 벌써 100년의 역사가 흘렀는데 그리스도교는 한국에 토착화되지 못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에서 어떤 사물에 대한 기독교화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신학은 한국인으로서의 신학함의 흔적이 나타나지 못했다. 여기 성서 자체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서구에서 만들어진 안경을 쓴 데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할 이유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그리스도교 후기 시대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것은 서구인들의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피선교 상태에 있는 나라의 신학자들도 꼭 같은 소리를 한다. 그 말의 뜻이 구조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Christentun)인지 아니면 성서마저도 포함시키는지에 대한 분명한 구별도 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비기독교화가 세계 구원이라도 되는 듯 열심이나 정말 그리스도교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원인이 바로 그렇게 말하는 서구인의 역사에 있지 않았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왜 서구적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진리가 운명을 같이 해야만하는가? 기독교가 그레꼬-로마의 세계를 거쳐 서구인의 손에서 형성되지 않고 팔레스틴에서 중동, 인도를 거쳐 아시아에서 형성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그 모습은 오늘의 기독교와는 다른 것이 됐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는 소급할 수 없다. 행이든 불행이든 우리는 서구를 거쳐 해석 형성된 것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전파되는 데 서구적 전통을 무조건 묵살해 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더욱이 오늘날까지 수혜의 과정에 있었으므로 과거를 시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젖먹는 시절은 아니고 자주적 반성을 할 때가 왔으며 또 반성할 만한 자체의 전통도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승과 정을 살피고 그것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가려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우리의 기독교 전승의 특징과 더불어 성서이해에 대한 기본적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2. 변질된 그리스도교
1) 서구 그리스도교사에서

팔레스틴은 로마 식민지로 헬레니즘의 문화가 휩쓸 때이나 예수 자신에게서는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정견(定見)이다. 그러나 젊은 교회가 로마의 판도를 타고 파국될 때 일면 그 시대의 아들 됨의 필요성에서 또 한편 토착화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에서 헬레니즘의 개념, 세계관들을 차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크게 볼 때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것은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교화라는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던 외적 조건으로서 특기해야 할 것은 처음 교회는 이방적 상황에서 어떤 공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언제나 상호 긴장관계에서 뚜렷한 자기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0년경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그리스도교가 공적인 종교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외적으로는 그 승리를 뜻했으나 기실은 그리스도교의 서구화라는 숙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후 천년, 중세기는 물론 근세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는 명실공히 서구 사회의 유일한 공적 종교로서 자리잡게 됐다. 이로써 서구의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권력과 불가분의 공동운명체가 됐으며, 그리스도교의 진출과 서구의 정치 문화의 진출은 동시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서구의 그리스도교의 특징은 그 자체의 필연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 앞섰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에의 전향은 정치적 결정에서 도매금으로 된 것이다. 그 제도, 나가서는 교회까지도 집권자의 정치적 동기와 불가분의 관계에서 형성됐다. 이것은 중세기만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루터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내세운 것은 그리스도교의 주체성을 위한 중대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상 피차 불간섭이라는 소극성에 머무름으로써 정치권력에 역사의 추세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 이양함으로 그 횡포를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까닭은 정치, 사회 문제를 국가 권력자에 이양함으로 그리스도교 자체는 필연적으로 내면회(또는 피안화)의 길을 택했는 데, 교회기구 자체는 비대한 그대로였으므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개개인의 신앙적 결단보다는 정치권력의 결정에서 대중의 운명이 결정됐다. 그것은 오늘의 유럽의 가톨릭과 신교의 판도가 그 지역의 봉건주의 정치적인 타산에 의한 종파에의 결정에 유래된 그대로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입증된다.

국가권력과의 불가분의 연대관계는 서구 제국의 식민지 확대와 더불어 그 체질이 그대로 밖으로 노정됐다. 서구의 국가 세력이나 군대가 진출하는 곳마다 기독교는 따랐고 거기서 선교사들은 곧 서구 침략세력을 후광으로 한 강한 상전으로 군림했으며, 식민지 토민의 기독교 전향은 곧 점령세력에의 가담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강자의 특혜의 진로요, 패스포드의 역할을 했다. 이래서 기독교화란 서구화이며 그것은 바로 강자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종교라는 인상을 주었고, 동시에 지배세력과의 관계에서 그 아이덴티티를 찾아야하는 종교로 됐다. 그러므로 식민지인들 중의 참 식민지화 또는 서구화의 앞잡이 또는 협조자라는 인상을 주어 적대의 대상이 돼야만 했다.

2) 한국의 경우

한국과 같은 경우는 위와 좀 다르다. 한국은 서구가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나라인 일본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지배세력의 원호를 받으며 진출한 것이 아니라 점령세력과의 긴장 속에서 민중 속으로 침투했다. 그러므로 점령세력에의 저항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러므로 민족 의식과의 제휴의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리스도교회와 서구화의 구별이 불투명하게 됐다. 점령세력인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은 서구적인 것을 하나의 새로운 저항의 거점으로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에의 성향과 서구적인 것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초래했다. 그런데 그 서구인들의 선교가 순수 그리스도교를 전하려는 것이었느냐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선교정책은 한국 교회의 성향이 반영하고 있다. 그 성향을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열거할 수 있다.

(1) 영과 육의 소박한 이원론을 전제하고 육적인 것에 대해 체념과 영적 구원 즉 피안성만을 강조했다. 이것은 설교, 찬송가의 내용, 그리고 전도의 구호 따위가 말해 주고 있다. (2) 조상숭배를 우상숭배와 직결시킴으로 신경질적으로 배척했다. (3) 한국의 얼을 형성한 정신적 유산이나 인습 따위를 무시하게 함으로 불교, 유교에 대한 적대감정은 물론 한국의 사적 인물도 무시하게 했다. (4) 한국의 그리스도교 지도자의 질적 향상을 의식적으로 저지했다. 그러므로 신학을 가르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에 전향하면 곧 전도인이 될 수 있게 극히 단순한 성서의 지식을 제공해서 일선에 내보냈다. 그것은 장교훈련이 아니라 사병훈련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러한 것들만 예거하느냐고 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의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직접 관련 없는 다른 동기가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의 정치 협상에서 한국을 일본에 내어주기로 밀약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마당에 영적인 피안적 구원만 강조하고 조상을 생각하거나 민족적 유산들을 적대시하게 하고 자립적인 그리스도교적 사고의 길을 억제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정치는 일본에, 민족적 유산은 지사(志士)에,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주권은 선교사에게라는 우민정책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의 대한 정책과 상통하는 데가 있는 것은 우연일까? 사람들 중에는 31운동과 같은 예를 들어서 기독교가 민족의식과 그 운동에 큰 공이 있었다고 찬양한다. 그러나 그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가 길러낸 인물들이었나? 아니면 그리스도교에 전향한 한국의 자연인이었는가? 나는 주저없이 후자의 경우라고 본다. 까닭은 당시의 한국 그리스도교의 설교의 내용으로 봐서 저들의 행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민족적 저항을 정당화하는 신학적인 이론을 만들어 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교사들의 피안적 기독교는 민족의식을 말살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영적'인 데서는 피안적이고 '육적'인 면에서는 민족적이었기에 이들은 아무런 상호관련 없는 평행선을 긋게 했다.

선교사에게서 전수된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엄밀히 말해서 서구화가 아니라 선교정책화였다. 선교사들은 서구의 신학을 그대로 전승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정책적으로 알맞는 그리스도교'를 끌어들였다. 해방과 더불어 서구 신학을 직접 접할 수 있는 문호가 열렸다. 이 때에(물론 그 전에도 일부 서구 유학생들이 있었지만) 비로소 한국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왜곡된 그리스도교에 갇혀 있었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한국 신학자들에게서 그리스도교 서구화의 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의 신학자란 바로 서구 신학의 풍조를 빨리 소개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알았기에 그 일에 앞을 다투었다. 이것은 비선교정책 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주체성의 발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기실은 서구화의 운동이 된 것이다.

서구의 신학적 사조는 어디까지나 서구인이 처한 역사적 조건에서 던진 물음과 대답이다. 그런데 아주 다른 역사적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저들의 물음과 대답을 그대로 끌어들여 바로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는 듯 이식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병주고 약주는 행위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 나라의 모든 분야에 걸친 현상이었으며 또 그러한 과정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는 한 스스로의 성장은 없고 자기 코를 남의 손에 쥐 어주고 끌려다니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 또는 그리스도교의 비서구화란 논의가 대두된다.

3. 비서구(非西歐)의 길

비서구화의 운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흔히 그것 자체에 대한 반성에서보다 민족적 열등의식에서 생기는 감정적 저항이기 쉽다. 그것은 서구의 식민지였던 나라 들에서 그 소리가 높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비서구화는 동시에 비그리스도교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비서구화란 참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진리되게 하자는 자세여야 한다.

그런데 진리란 추상적이 아니라 역사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비서구화란 다음의 두 전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교의 세계사적 사명의식이다. 그리스도교는 서구를 통해서 절대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시에 많은 약점을 가졌고 과오를 범했기에 지금 궁지에 빠져 있다. 이런 마당에서 서구인들에게서 바톤을 받아서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교를 역사에서 산 진리가 되게 하자는 사명의식에 서야 한다. 둘째는, 이 날까지의 의존적인 데서 내 문제는 내가 묻자는 책임의식이다. 따라서 이것은 배타적어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공동적 연대의식 속에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흔히 신학의 비서구화 하면 곧 동양화 또는 한국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그리로 직행한다. 그런데 그런 작업은 흔히 서구에서 해석 형성된 교리를 동양적인 개념 또는 이런 사고의 틀에 옮겨놓은 것으로 다 한 줄 안다. 그런 한 그것은 서구 신학의 번역작업 영역을 넘지 못한다. 비서구화란 무엇보다도 성서로 돌아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라는 따위의 주장을 말함이 아니라 성서가 전하는 내용을 밝히는 일이다. 이것은 성서를 서구의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된 교리에서 풀어놓는 일이다. 그런데 서구에서 발달된 성서의 역사비평학적 연구에서 발달된 성서의 역사비평학적 연구는 이미 지금까지의 이천년 해석사에서 성서를 해방시켜 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비평학적인 연구에 의해서 드러난 성서 자체 그대로는 침묵하는 한 소재와도 같은 것에 불과하다. 묻는 자에 의해서 그 대답이 결정된다. '소재'로서의 성서는 같으나 어떤 관심에서 어떤 물음이 서구인들의 물음을 그대로 끌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 자리, 즉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에 선 실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물음은 대답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성서연구에서 드러난 성서와 우리의 역사적 상황에서의 실존적 성실성이 마주서는 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교가 형성될 것이다.

(『기독교사상』, 1971. 12)


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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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미 (마르 15, 27-39)
어머니 (마르 7, 24-30)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제2부 신, 당신은 누구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 8, 27)
모순과 은혜 (로마 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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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인간, 너는 누구냐?
삶의 좌표 (빌립 2, 12-18)
바울의 실존 (빌립 3장)
소명에서 산다 (빌립 1, 18-26)
복음의 생명력 (마가 1, 15)
바리새 사람과 세리 (누가 18, 9-14)
어떤 아버지와 두 아들 (누가 15, 11-32)
부모와 자녀들 (누가 15, 11-32)
두 인간형 (누가 18, 9-14)
보물이 담긴 질그릇 (고후 4, 7-18)
사람으로서의 삶 (마태 6, 25-34)
 
제4부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사건을 통한 구원 (고후 11, 23-33)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누가 19, 37-41)
이 성전을 헐라 (요한 2, 13-22)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놈들 (마태 23, 16-26)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 5, 11-12)
무대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와 무대 뒤에 숨은 주인 (마태 6, 1-8)
 
제5부 나를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라서(imitatio Christi) (고전 11, 1)
역경과 복음의 전진 (빌립 1, 12-17)
그리스도의 공동체 (로마 12, 1-8)
복권(復權) (마르 1, 40-41)
제가 무엇인데 감히 (출애 3, 1-12)
소명 (사도 7, 23-35)
하느님의 선교 (마르 1, 40-45)
예수의 낙인 (갈라 6, 11-17)
그리스도를 본받아 (빌립 2,1-11)
무위와 신앙 (마태 6, 24-34)
 
제6부 영원한 현재
하느님 나라 (마태 13, 44)
휴식에의 초대 (마가 6, 31)
영원한 현재 (계시 21, 6-8)
전야 (계시 22, 10-16)
오늘의 성탄 (누가 2, 1-7)
바울 사도의 기도
새 세계에의 초대 (누가 14, 16-24)
단 둘 (요한 8, 1-11)
결단은 수난의 각오다 (마르 3, 1-6)
성 윤리의 기준 (요한 8, 1-11)
갈릴리 교회는 왜 세워졌나? (마태 4, 12-25)
표지
 
재1부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이천 년 동안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는 저 사나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수난
베일에 싸인 십자가
화려한 십자가
부활은 십자가의 표면
부활의 뜻
부활절 새벽
부활절 아침에 드리는 기도
4월과 부활절
부활과 4ᆞ19
부활을 믿느냐?
부활절의 십자가
Advent
생명을 잉태한 여인
오늘의 성탄절
구유에 누운 아기
영원한 평화
그는 흥해야 하고
누가 내 이웃이냐!
예수는 정치범?
수난의 각오
종말사상의 힘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사건화하는 손
 
재2부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가 사람을 죽여?
성서
두 가지 물음
성서 절대주의
성서를 찾는 마음과 눈
그리스도는 우주인인가
이미 늦었다
우상화
삶의 모순율
자유와 예속
무상과 영원
살인과 분노
죽음에 이르는 병
어린이 같지 않으면!
보물을 담은 질그릇
휴식에의 초대
편리라는 유혹
기술사회의 도전
전체주의와의 투쟁
현대의 욥
자다가 깰 때
 
제3부 축제
축제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
이 때는 잠에서 깰 때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물질은 하느님의 것
봄의 찬가
고백
증인
의식은 죽음인가?
사랑의 저항
민주주의 제일장
거짓증거
양심
은어
해결해
탈우상화
반복
시간과 영원
휴머니즘의 한계
죄란 무엇인가?
정치적?
계룡산
'상도'(常道)
현존의 의미
야도(夜禱)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회개의 의미
고난의 의미
오 주여!
성문 밖으로
 
제4부 남은자의 윤리
종교적 창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상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오늘의 그리스도론
정치신학
평등추구의 기독교사
기성교회의 꼴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날(?)
한국 교회의 암?
한국의 교회
종은 누구를 위해 우나!
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수도원을 찾아서
학문의 자유
'우리 신학' 추구
현대와 그리스도교
교회일치운동
교회 분화론
그리스도 교회의 진통
그리스도교적 교육
남은 자의 윤리
목사 후보생들에 준 말
젊은 목사에게
신학의 길
인간은 관념의 노예?
하느님의 동역자
역사의 핏줄을 만드는 마술사
그리스도교의 목표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표지
 
표지
 
표지
 
제1부 혁명과 예수
역사적 예수와 신앙상의 그리스도
무신론과 기독교 신앙
무신론자의 예수
자유와 예수
혁명과 예수
 
제2부 서구신학을 넘어서
신학한다는 일
성서와 대결 못하는 신학
기독교화와 서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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