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달이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인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수난사와 부활사건이 일어난 달이다. 이와 더불어 이 달에 4ᆞ19혁명이 일어났다. 이 땅의 많은 학생 들의 죽음과 그 죽음에 의한 민주주의 승리라는 경험을 한 달이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어야 한다."
잔인한 말씀이다. 이것은 숙명론적 법칙을 말하는 것인가? 이렇게 가르친 예수는 남에게 권하기 전에 스스로 이 길을 걸었다. 예수는 그의 최후의 순간에 자신에 대한 생명의 위협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유다 민족 지도층과 로마제국의 야합에 의하여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이렇게 보면 그는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죽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진했는가? 그렇게 한 것은 그가 죽음의 신비적 효능을 믿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죽음의 결과로 야기될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냉철하게 계산했기 때문인가? 그러한 흔적은 전혀 없다. 복음서에는 왜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했는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 대신 예루살렘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와 죽음을 거부하는 처절한 갈등에서 고투하고 있는 그를 묘사할 따름이다. 이것은 죽으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보다 적극적인 것을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다. 성전, 그곳은 도적떼의 소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유다 민족의 마음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윗 왕조 이래의 '예루살렘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었다. 참신한 양심세력들은 탈예루살렘하여 더러운 자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해방 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예수는 반드시 예루살렘을 그의 대결의 장, 대결의 대상으로 삼았음이 틀림이 없다. 이러한 불의와의 대결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 예수, 처절하게 죽은 그 예수가 살아났다는 부활 경험 위에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이 없이 삶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죽어야 산다는 이 진리가 다른 차원인 4ᆞ19혁명에서도 입증되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빨아먹으며 자라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잔인한 현실을 말해 준다. 우리 민족사에서의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 그렇게 고귀한 젊은 피들이 바쳐져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적인 독재 및 부정부패와 싸운 것이다. 그 경로가 저들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이상에서 공통된 진리는 하나이다. 그것은 의로운 싸움은 생명을 내걸 때에만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도 불사할 때, 죽어도 살며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4ᆞ19가 일어날 때까지 이 같은 진리를 가진 자답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4ᆞ19를 그저 부끄러움으로 맞이했을 따름이다. 우리가 전선에 서서 싸워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도피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4ᆞ19처럼 지금도 역사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