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생 연맹 주최로 고등학교 교사의 모임이 오류동 성공회 신학원에서 열렸다. 세 번에 걸친 주제 강의를 어쩔 수 없이 맡았기에 하룻밤을 지냈다. 총책임을 진 김용준 박사와 한방을 썼기에 배운 것도 많았다. 나는 내 버릇을 깨고 이례적으로 원고 없는 자유방담을 했다. 까닭은 강의보다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였다. 원래 주제는 내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요새 생각하는 문제들을 이야기해 보고 또 듣고 싶기도 했다. 세 번이기에 우선 현대를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성서를 근거로 생각해 봤다.
처음 것은 우리가 모든 일을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며 성서만은 비과학적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전제에서 과학과 동화의 세계를 한 머리에 지니고 있는 비극, 그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기형성을 문제로 하면서 성서 해석의 문제를 다루었다. 기술 시대에 대해서는 요새 읽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의 유언과도 같은 인터뷰의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이 기술 사회가 그대로 진행될 때의 미래상을 말하고 그와 동시에 그가 순진성이 있는데서만 정신ᆞ도덕ᆞ창조의 가능이 있다는 암시를 확대시킴으로 비인간화의 세계에 도전해야 할 인간의 일을 예수에게서 배우려고 했는데 특히 성서에서 '순진성'에 관한 것을 예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마지막 날을 마르크시스트인 마코비치의 글에서 얻은 것을 소개해서 오늘의 공산 사회가 변해 가고 있고 다시 그리스도교와의 대화를 기대하고 있음을 말했다. 그래서 이제 마르크시즘과의 대결을 눈앞에 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놀란 것은 이 교수들에게도 제일 문제되는 것은 성서의 권위 문제였다. 그들의 걱정은 성서의 외적 권위의 파괴였으며 성서 안의 기적 사화 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평신도일수록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이 선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중됐다. 그래서 결국 주제에 대한 대화는 안 되고 성서 해석 문제에 맴돌았다.
(197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