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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0, 1-8
 
1. 익명의 예언자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으므로 이스라엘민족에게 한 민족으로서 결정적인 큰 심판이 왔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전(聖殿)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바빌론 침략군은 성전 안에 있는 보물들을 전부 약탈해갔다. 왕의 궁전도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 나라의 마지막 왕인 시드키아가 예리고로 도망하다가 잡히고, 그 자손들은 체포되어 바로 이 왕 앞에서 교수형을 받았으며, 왕은 눈이 뽑힌 채 다수의 이스라엘의 엘리트들과 함께 포로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했다. '나라'라는 뿌리가 뽑힌 이스라엘, 저들은 망국(亡國)의 민족으로 바빌론에서 강제노동을 당하며 고아와 같은 슬픔으로 그 날 그 날을 보내야만 했다(열하 25, 1-12). 그들의 당시의 정황과 심경의 한 단면이 시편 137편에 있다.

우리는 바빌론 강가에서 울고 울었다.
고향이 그립고 그리워서
차마 노래를 부를 수 없어
우리의 거문고는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두었다.
어찌 우리가 이방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르리.
설령 강포한 자들의 강요가 자심하기로니
예루살렘아, 내가 어찌 너를 잊으랴!
차라리 내 오른 손이 시들어 버리리라.
예루살렘아. 내 어찌 너를 잊으랴!
차라리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편 137, 1-6).

이제는 이스라엘에는 국권을 상징하는 왕도 없으며 그 뒤를 이을 왕족도 다 없다. 나라를 지킬만한 어떤 무기도 없다. 극도로 황폐해진 국토를 재생시킬 아무런 힘도 없다. 바빌론은 이제 거대한 세계 국가이다. 그것은 우뚝서서 세계를 영원히 지배할 바위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결국 이스라엘 안에도 내분이 생겨났다. 영원할 것 같은 바빌론 제국의 힘에 굴복하여 노예처럼이라도 생존하는 것이 옳다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이러한 절망 속에 사는 이스라엘 속에 한 익명의 하느님의 사람이 있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본문은 셋으로 나뉜다. 1-2절, 3-5절, 6-8절이 그것이다.

2. 위로의 소리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너희는 예루살렘의 가슴 속에 외치라.
그의 강제노동의 때는 끝났고.
그의 죄값은 다 감했다고 하라(이사 40.1-2).

이런 소리를 전하는 이 익명의 예언자는 정치권의 한 책임있는 자리에 있거나 미래를 투시할 수 있는 어떤 현인(賢人)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한 종교가적 환상에 놀아나서 이같은 선언을 했을 리는 없다. 그는 세계의 기상도를 예의주시한 사람으로써 확실한 정치-군사적 판단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바빌론 현장에서 안으로 굶고 썩어가는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했을 수도 있으며 새로 일어난 페르시아가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을 읽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종교가는 '지식기능인'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류의 사람은 세상에 눈이 어두워야 한다는 일반적인 관념은 큰 오판을 가져온다. '예언자'라는 특수부류는 이스라엘 왕조 건립 이래로 나타난 특수한 현상이다. 저들은 어떤 의미로나 전문가가 아니었다. 저들은 전략적 차원에서 세상을 볼 줄 모르며 또 그럴 능력도 없다. 저들은 정권의 편에 서지 않는다. 따라서 '어용'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민중의 인기를 의식하여 무조건 저들의 대변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저들은 고독한 군상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저들의 위치가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선악을 정확히 판별할 능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저들이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판별력을 과시하여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저들은 역사의 주체는 하느님 한 분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저들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전망과 판단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정권은 저들의 비판을 싫어 경계하면서도 저들의 판단을 청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들의 판단이 적중하는 것은 정권이나 어느 계층에 예속되지 않았기에 냉철하고 객관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자신들의 선언을 자신들의 판단력이나 권위를 내세워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는 반복하여 "하느님이 그렇다고 하신다"고 할 뿐이다. 그는 근거없이 이같은 선언을 했을 까닭이 없다. 그는 하늘만 쳐다본 것이 아니라 땅위의 역사적 지평을 예의 주시했음에 틀림없다.

주전 539년에 사실상 기적과도 같은 사실이 일어났다. 급작히 나타난 신흥국가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불의에 기습했고, 영원한 바위와도 같은 바빌론이 썩은 고목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그것만이 우연이 아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바빌론을 점령하자 이스라엘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성전에서 바빌론이 훔친 보물들을 내어 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다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종용했다.

이런 사실을 이 예언자가 짐작했을 리 없다. 그건 정말 하느님이 한 행위이다. 하느님의 행위를 앞당겨 아는 길은 믿음밖에 없다. 이 위로는 '희망 속에서 위로받으라!'는 것이다. 그 희망은 하느님을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절망 속에서 위로의 소리!

3. 한국 그리스도교에는 예언자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라는 특수한 군(群)이 그 나라의 정치적 운명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들은 그 민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민중의 편에 서서 정신사를 꾸민 것은 틀림없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한 민족으로서 역사 속에서 특유한 역할을 해온다.

한국의 역사에서 이런 예언자에 해당하는 인맥(人脈)을 우리는 가지지 못했다. 이 작은 나라는 긴 역사에서 풍전등화의 운명을 지속해 왔는데 그럴 때마다 목숨을 걸고 정도(正道)를 제시한 인물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관료이거나 관료출신으로서 정견차이 또는 어떤 정파를 대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들이 디디고 선 권위는 한결같이 왕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저항운동도 있었다. 그런데 저들을 이끈 자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분자로서 불만에 가득 찬 민중을 선동 규합하여 '복수'를 한 것이 그런 운동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예언자의 계열에 서야 할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어떠했나?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을 앞에 두고 저들은 무엇을 했나? 예언자의 맥(脈)을 받은 인상은 전혀 없었다. 개인도 집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때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그런데 상당한 조직과 양적으로도 큰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일제하에서도 '예언자'는 출현하지 않았다. 당시의 그리스도교회는 봉기했다가 패한 후 몰려든 우국의 민중을 수용할 능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안에 일제 40년 동안 이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은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세력에 아부하고 친일하고 순종함으로 속으로 곯은 흔적만이 뚜렷할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희망은 없나? 만약 그렇다고 우리가 긍정한다면 우리는 이 예언자의 위로를 거부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정말 성탄을 통해 내가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성탄이 "내 강제노동의 때는 지나고 내 죄를 청산하는" 새 기원이라고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망 속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탄은 반드시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약속이 사실로써 증거된 사건이다. 이 성탄이 있어서 우리는 새 미래를 믿게 됐다.

4.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느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라!(이사 40, 3-4)

사막(광야)에 그 길을 내라! 바빌론과 예루살렘 사이에는 사막이 있다. 사막은 절망의 상징이다. 끝없는 사막, 발자욱은 모래에 곧 덮여서 길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먼 길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여기 지름길을 내라고 한다.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니까 포기한다. 체념 속에서 내버려둔다. 그러나 거기 낮고 높은 곳 험한 곳을 평탄케 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막이 없다. 그러나 실은 내 마음은 사막같을 수밖에 없다. 희망이 없이 체념된 마음은 사막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 굴곡이 있다. 낮은 골짜기, 비관(悲觀)의 골짜기가 우리의 마음을 골지게 한다. 또 우리에게는 높은 산도 있다. 교만, 자족의 마음은 우리에게 있는 높은 산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그 길을 바로 그 사막, 그 절망 속에 예비하라고 한다. 평탄케 하라고 한다.

여기서 Indikativ(지시)는 Imperaiv(명령)이 되었다. 하느님을 오게 할 자는 없다. 그러나 오시는 하느님에 대해 마음 문을 닫고 거부할 수는 있다.

성탄을 앞둔 우리는 체념에서 일어나서 내 차단된 마음, 절망상태, 교만상태, 엉클어진 상태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손에 삽을 잡아야 한다. 절망 속에서 문을 열라! 난 더 달라질 게 없다는 상태에서 새 가능성이 온다고 믿고 문을 열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리라.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이사 40, 6-8).

여기서 이 예언자의 말의 방향이 달라지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뜻이 관련되어 있다. 첫째, 바빌론이 망한다. 둘째, 하느님은 영원하다. 셋째, 네 슬픔도, 기쁨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절망은 없다. 모두 상대적이다. 포악한 바빌론, 영원한 거성같은 바빌론도 한낱 풀과 꽃에 불과하다. 사막에 열풍이 일면 순식간에 풀과 꽃은 시든다. 우리 눈 앞에 꽉 막힌듯한 문제도 종당에는 시간과 더불어 소멸된다. 우리는 눈 앞에 닥친 일에 너무 절망하거나 흥분한다. 그러나 약간 긴 안목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그 때는 절망적이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에 내 가진 것도 지나간다. 아무리 잡고 늘어져도 지나간다. 우리는 졌다, 이겼다, 손해봤다, 벌었다, 억울하다, 인기 있다, 가난하다, 급하다의 지금의 상태를 너무 절대화한다. 10년, 20년만 지나봐라 아주 뒤집혀진다. 울던 자는 웃고, 울던 자들은 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무상을 노래하자는 것이 아니다. 위로의 말씀이다. "네 지금의 처지에서 체념하지 말라. 왜? 하느님의 말씀은 영영 네 편에 있다. 그러니 문을 열고 기다려라. 반드시 하느님이 네게 왕으로 오시리라!"는 증거다.


List of Articles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판권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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