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침공을 목전에 두고도 제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을 때, 실랄한 책망과 더불어 종교보다 더 급한 것은 '정의'라고 말하면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부정부패를 막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정의의 수호자들이 될 때만 살 길이 있음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듣지 않았으며, 그가 내다본대로 그 나라를 앗시리아에게 점령당함으로써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의 예언은 적중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반쪽인 유대왕국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북국(北國)을 점령한 이 침략의 세력은 남국(南國) 유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왕국의 운명도 풍전등화입니다.
이 때 유대왕국에 이사야라는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모스와는 달리 예루살렘의 귀족의 후예이고, 상류층 출신으로서 왕을 위시한 위정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모스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없어지는 바람과 같은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긴 세월을 그 민족의 삶의 현실 한복판에 묻혀서 저들과 웃고 울면서 긴박한 사회적, 국제적 정황 속에서 자기 민족의 정치사회적 타락의 탁류를 거슬러서 끝끝내 저들을 구하려고 애를 쓴 예언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어느 예언자보다도 현실적이며, 그가 전한 말씀은 다이나믹합니다.
그에게 두 선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북국의 위기 때에 부르짖은 아모스이고, 다른 하나는 호세아입니다. 아모스는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했고, 호세아는 하느님의 자비를 설교했습니다. 그랬기에 이사야는 심판의 하느님과 동시에 자비의 하느님의 뜻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했기에 그는 이제 남은 반쪽인 자기 민족의 운명을 볼 때, 아모스의 외침이 더 절실했습니다.
유대왕국의 상태도 아모스의 책망을 받는 이스라엘의 사회상과 꼭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외침은 아모스의 외침과 참 비슷합니다.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인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특히 지도층은 이기적인 욕심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산을 굵어모으고 투기사업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사야는 "집을 사고 또 사고 밭을 사고 또 사므로 … 이 땅 가운데 홀로 거하려 하는 이들은 화 있으리라"(이사 5, 8)라고 예언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권력가나 재벌의 하는 짓과 거의 같습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앗시리아군이 불시에 수도를 쳐들어올 것을 예언합니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으로 황무하였고,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아있도다(이사 1, 7-8).
그런데 귀족과 부자는 이런 민족적인 위기 속에서도 "도적과 짝하고, 뇌물에 취하고, 사례물을 강요하며 가난한 자를 학대했다"(이사 1, 23). 그러면서 일면으로는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왕국처럼 종교적 행사는 화려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시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슨 행사를 그렇게 많이 하고, 무슨 상(賞)은 그렇게 많은지, 거리마다 축제 기분을 내려고 야단들입니다. 동상(銅像)은 자꾸 세워지고, 충무공을 우상화하고, 도대체 하루속히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판에 이것은 무슨 이유인지. 역시 이것은 종교 없는 국가에서 그런 기분을 대신하려는 일종의 쇼입니다. 이러한 쇼에 대해서 이사야는 아모스와 거의 꼭 같은 비판을 합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이사 1, 11-20).
이러한 것은 모든 위정자들이 민중의 눈을 흐리게 하는 정책의 하나입니다. 정말 내적으로 곯아가고 있는 것과 외적으로 오는 위기를 은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정말 내적인 수술을 하고 허리를 졸라매면서 제 힘을 기를 생각보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서 현재의 자기들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자는 생각 뿐이고 전체에 파급되는 근본 문제는 생각지 않고 임시적인 미봉책으로 잔꾀만 부린다는 것입니다. 그 때 아하스 왕은 부정부패는 그대로 조장하면서 비굴한 외교에 의존하며, 잔꾀로써 자기의 영화를 수호하는 데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지금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도대체 1970년 위기설을 내세우며 그토록 야단한게 누구였나? 왜 그랬나? 헌법을 개정하려고 할 때 위기설을 퍼뜨리려고 모든 매스컴을 다 동원한 것이 정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위기설을 내세움으로써 민심을 흐리게 해서 위정자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아하스 왕 시대에도 앗시리아의 침공을 구실삼아 폭정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자기들의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을 흐리게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위정자의 간교에 대해서 두 면에서 맞섰습니다. 하나는 이 나라는 앗시리아의 손에 함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 때 정세에 대한 판단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이사 7, 14) 이것이 이사야의 외침이며 신념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목전에 있는 위기 의식에서 오히려 눈이 흐려지고, 단말마적인 이기심에서 스스로 속고 있는데서 돌이켜서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게 하고, 위정자의 농간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위기라면, 또 그것이 급한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위정자는 오히려 민중을 안심시키고 내적으로 힘을 강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이고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거나 비록 사실이더라도 정말 나라의 위기 때문이 아니고 딴 동기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 특히 왕과 위정자들에게 한 민족의 흥망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너희가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리라"(이사 7, 9)고 합니다.
한 민족의 성쇠는 일시적인 평화나 경제적 진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예루살렘은 하루 아침에 완전히 붕괴되고, 사람들이 그러쥐었다는 것, 소위 건설했던 것이 순식간에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무얼 믿으라는 말인가? 그것은 이 민족의 운명은 하느님의 인도 아래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존재한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으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니, 자기를 팔면서 존속하는 것은 이스라엘로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 하느님은 이 민족의 머리요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힘에 의해서 존재할 때에 만이 정말 이스라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정치'와 '신앙'을 완전히 분리했습니다. 그는 신앙은 소위 종교행위요, 정치는 힘의 균형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의 아하스 왕은 정치에 신앙을 운운함은 오히려 정치를 약화하는 것이고, 그로써 민족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정치인, 위정자들이 갖는 상식이기도 합니다. 비록 종교국가라 해도 정치하는 데 하느님의 돌연한 개입을 계산에 넣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정치는 추상적인 현실이 아닙니다. 정치를 해 나가려면 내적으로 인구의 몇 할을 그 손에 넣느냐, 저들을 어떤 방법으로 손 안에 넣느냐 하는 것이 화급한 문제가 됩니다.
외세에 대해서는 적의 비행기 몇 대에 대해서 이 쪽에서 얼마만큼의 비행기를 준비해두며, 그 비행기의 성능까지 비교해서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경제능력과 직결된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는 국제적 힘의 균형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말 국권이 유지될까? 아랍의 아유칸은 10여년 간 집권하면서 국가의 경제력을 눈부시게 상승시켰습니다. 그러나 결국 민중이 봉기해서 그는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 경제력은 단 두 사람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상승을 아무리 해도 위정자들의 양심이 썩었다면 그게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 경제부흥만 되면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경제제일주의가 한국 문제를 정말 해결할까? 우리나라의 민심을 볼 때, 그들의 마음의 어느 구석에 우리나라를 지켜야 하겠다는 염원으로 집결됐는가?
경제제일주의의 독소(毒素)에 우리는 이미 희생되고 있으며, 민족의 심리는 응결이 아니라 오히려 사분오열이 되게 됐다. 이제는 '애국'이란 말 자체가 협잡하는 말로 들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소위 제2경제란 말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윤리가 썩고 물질경제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도 쏙 들어갔습니다. 왜? 그것은 아무런 머리, 아무런 뿌리도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무력이나 경제전보다는 사상전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무력은 무력에 의해 저지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고를 뺏는 일입니다. 좋은 무기가 아니라 그 무기를 든 그 사람을 사상적으로 내 편이 되게 하는 것이 싸움의 양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사야는 "네 하느님 여호와께 한 장소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이사 7, 11)라고 합니다. 즉 눈 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 잠깐 흥하고 쇠하는 것에서 초조하고 안도할 것이 아니라 정말 깊고 높은 차원에서 그 보장을 구하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은 앗시리아의 손에 함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에 초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도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앗시리아의 위협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심판이요, 부름입니다. 네가 정말 하느님의 궁극적인 구원을 믿느냐? 안믿으면 죽은 것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인 구원이 보다 높은, 깊은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것이다(이사 7, 14).
이것은 역사의 궁극적인 구원을 뜻합니다(메시아 사상). 이 역사의 궁극적인 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역사에 목적이 있음을 믿는 일입니다. 무얼 위해서 이 역사가 계속되는지 모르고, 한 민족의 갈 길을 알 길이 없습니다. 제 나갈 목표가 없는 민족에게 부흥은 타락의 요인 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오히려 전쟁을 찬양해서 전쟁의 위기가 없으면 한 민족, 한 국가는 더 구원의 여지없이 스스로 썩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정치적 권력체로서의 이스라엘이 비록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할 지 모르나 멀지 않아 무너질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온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하느님께로 돌아 올 것입니다. 하느님은 저들을 통해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이사 10, 20 이하).
여기서 이사야의 역사철학의 싹이 텄습니다. 하느님은 지극히 적은 무리를 통해서도 반드시 그의 목적을 이루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큰 물결같습니다. 그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거슬리는 물거품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그는 비판과 예언만 했는가? 그는 '이 적은 남은 무리'를 위해서 엘리트 양성을 위한 선지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로써 "거룩한 씨"(6, 13)를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스라엘 사상이 축소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한 이의 뜻은 성취되고야 만다는 강력한 그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