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사학자(樣式史學者)들은 모두 예수의 말씀들의 뜻 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케리그마(kerygma)를 드러내는 틀로서밖에 보려고 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말씀이나 케리그마적 진술만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제거해버릴 것으로만 봄으로써 결국 중요한 일면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르코복음에는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군중'에 대한 서술이다. 마르코복음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예수를 둘러싼 군중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마르코복음 1장 22절에서 벌써 그 군중이 언급되어 줄곧 반영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람들' 또는 삼인칭 복수인 '모두' 같은 추상 명사 또는 형용사를 씀으로써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지만, 저들의 정체는 밝히지 않는다(1, 22ᆞ30ᆞ32ᆞ33ᆞ37ᆞ44ᆞ45:2, 2). 이런 서술법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사회적 성분에 관심을 가지게 하며, 마침내 '그 많은 사람'(πολλοί)의 성분을 표시하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클로스'(ὄχλος)이다(2, 4). 마르코는 오클로스를 지칭하는 지시대명사를 빼고도 무려 36회나 이 단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마르코의 오클로스의 사용이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이런 현상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용어의 빈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아도 그렇다. 우선 오클로스와 유사한 뜻을 갖고 있고 그때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된 용어 중에 '라오스'(laos)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70인역 성서(LXX)에서 무려 2천여 회나 사용되는데, 그것은 압도적으로 민족의 일원 특히 이스라엘 사람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뜻에서 사용한다(Strathmann, Kittel). 그런데 마르코는 인용문(7, 6)과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의 입으로 한 말(14, 2) 외에는 이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수' 등 형용사적으로 사용된 무성격한 표현인 '플레토스'(πλήθος)도 한 번만 사용할 뿐이다(3, 8).
신약에서 마르코가 처음으로 오클로스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오클로스라는 용어가 마르코 이전의 신약문서에서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마르코 이후에 씌어진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이르러서야 이 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르코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편 오클로스는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을 때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에 세 번(7, 9ᆞ19, 1ᆞ19, 6) 나온다.
이에 대해서 특히 마르코 이전에 씌어진 바울로의 서신에는 단 한 번도 오클로스가 등장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오클로스에 대한 마르코의 용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우선 마르코의 오클로스의 뜻을 살펴보기 위해 바울로서신과 마르코복음을 비교해보자.
첫째, 바울로서신은 모두 마르코보다 10년 이상 앞선 A.D. 50~60년 사이에 씌어진 것들이다.
둘째, 바울로의 글은 이방선교를 뚜렷한 목적으로 한 것으로 그리스도론, 구원론에 집중하는데, 언제나 변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셋째, 그는 역사의 예수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역사의 예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고후 5, 16).
이에 대해서 마르코복음을 보자.
첫째, 마르코복음은 유다전쟁이 이미 시작되었거나 예루살렘마저 함락됨으로써 유다인이 모조리 유다 땅에서 추방되는 무렵인 A.D. 70년 이후에 씌어졌다(본인은 후설을 지지).
둘째, 마르코는 바울로와는 반대로 역사의 예수 전승에 총집중하는데, 그 내용에는 이른바 확대된 케리그마(R. 불트만)로 볼 수 없는 재료들이 많이 담겨 있다.
셋째, 그는 바울로처럼 변증적이며 관념적으로 추상화한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을 전개하지 않고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민담적 서술법을 쓰고 있다.
이상의 비교에서 우리 주제와 관련하여 지적할 것이 하나 있다. 즉 마르코는 바울로와는 다른 사회적 상황에 있으므로 바울로에 있어서 총집약된 케리그마적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에 있을 뿐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것과 거리를 두었다고 보인다. 마르코의 그런 입장은 역사의 예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정 밑에서 볼 때 그에 의해 부각된 오클로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르코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을 위시한 온 유다인들은 그 본 토에서 추방되어 목자 없는 양떼처럼 흩어져 유랑길에 나서야 했다. 마르코가 '오클로스'를 사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즉 마르코에서의 오클로스의 사용은 이러한 마르코의 역사적 상황에서 요청된 결과이다.